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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부모님의 유골을 찾기위한 준길의 험난한 여정 - 연극 '뼈의 기행'

김혜령 기자 승인 2019.06.10 13:24 | 최종 수정 2019.07.17 11:22 의견 0

사각사각. 암전된 무대 가득 무언가 기록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때는 2004년. 부모님의 유골을 모시고 오기 위해 벌어진 일주일간의 여정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한 노인. 대체 어떤 이유로 노인은 뼈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일까?

▲ 기차에서 만난 중국동포 심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준길 ⓒ 국립극단


주인공은 백준길이라는 백발의 노인이다. 준길은 아픈 동생 때문에 홀로 남한으로 내려가 식구들이 돌아오길 평생 바랐지만, 돌아오지 않은 식구들만 기다리다가 노인이 되어버렸다. 늙어버린 자신이 할 수 있는 효도는 돌아오고 싶어 했던 자신의 부모님 유골을 남한으로 모시는 것뿐이었다. 준길은 아들 학종과 중국 다롄으로 넘어가 유골 귀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준길의 여정은 경상도 금릉에서 인천을 거쳐 다롄으로, 다롄에서 하얼빈을 거쳐 다시 한국으로 향한다. 기록한 여정의 메모는 아주 간략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한 노인의 인생 속에 비춰진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단편이다. 처음엔 익살스럽게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따라 웃던 관객들도 점점 준길의 여정을 따라가며 눈물을 훔치게 된다.

게다가 준길은 섬망증을 앓고 있다. 계속 헛것을 보면서도 어린 시절 부모님의 모습, 동생의 모습 등을 본다.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아이로 돌아가는 모습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장치로 작동하며 이산의 아픔을 여실히 드러낸다.

▲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골을 한국으로 가져가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는 준길. ⓒ 국립극단


극의 중간에 중국에서 오랜 시간 이방인으로 살아왔던 동생 순영과 만나는 장면은 무언가 외면하며 살아온 듯한 마음에 큰 돌을 던진다. 순영은 오빠를 위해 노래방을 빌려 성대한 잔치를 열어준다.

준길은 순영이를 위해 약간의 돈과 선물을 준비해가지만, 순영과 순영의 가족들은 남한으로 갈 수 있도록 ‘초청장’을 보내달라는 이야기만 계속한다. 자신이 힘들게 살아왔던 것을 이야기하며 왜 이제야 왔냐고 원망하는 순영에게 아무 말 하지 못하는 준길을 보며 아들 학종은 ‘조선족’을 비하하는 발언으로 모처럼의 분위기를 흩어 놓는다.

이번 연극 <뼈의 기행>은 2017년 국립극단이 진행한 <한민족 디아스포라>展의 맥을 잇고 있다. 일제강점 시기 일제를 피해 만주로 넘어갔던 사람들이 해방 이후 한반도로 돌아오지 못한 채 그곳에서 터전을 잡고 살고 있다. 일본 패망 이후 75년. 그러나 중국의 동포들은 중국 사회의 일원으로 완전히 편입되지 못한 채 ‘조선족’이라는 명칭의 소수민족으로 분류되고 있다.

▲ 자신의 오빠를 만난 기념으로 성대한 잔치를 여는 순영. ⓒ 국립극단


극 속에서 ‘동포’란 말이 아닌 “‘조선족’은 자신들이 중국인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질감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도 나타나지만, 동시에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초청장’에 집착하는 동포들의 모습도 비춰주며 디아스포라의 고통을 묘사한다. 한국과 중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우주의 운석처럼 어딘가를 맴도는 그들의 삶을 보고 있자면 눈물이 핑 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역시 배우들의 힘이 컸다. 박상종 배우는 부모를 그리워하며 유골이라도 모시고 가겠다고 결심했던 준길의 모습을 대단히 잘 묘사했다. 50주년을 맞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에스트라공이 어디로 갔나 했더니, 이번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학종 역으로 박상종 배우와 합을 맞추었던 이준영 배우 역시 탄탄한 연기력으로 극을 끌고 가는 데 큰 힘을 보탠다.

연극 <뼈의 기행>이 막을 내리는 시간 6월 16일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준길과 함께 뼈를 찾는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면 주저 없이 예매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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