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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박진도 이사장] “친환경·가족농이 우리 농업의 나아갈 길”

3.11 동시조합장선거 특집

주동식 객원편집위원 승인 2015.02.07 20:32 | 최종 수정 2019.07.04 02:47 의견 0

3.11 전국 동시조합장 선거가 말 그대로 코 앞으로 다가왔다. 2월 24일과 25일 이틀간 후보 등록을 마친 뒤 26일부터 정식 선거전에 돌입하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어떤 선거운동도 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각 지방에서는 누가 선거에 출마하는지 거의 알려져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물밑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좋은 농협 만들기 정책선거실천 전국운동본부’를 이끌어온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을 만나서 전국 동시조합장 선거의 의미와 선거 이후 농협의 변화 방향 등을 들었다. 


 

- 동시 조합장 선거를 둘러싼 각 지역의 분위기가 궁금합니다. 정책선거 실천을 목표로 활동해온 입장에서 선거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시나요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밑바닥의 관심은 뜨겁습니다. 농촌 지역에서 농협의 역할 그리고 그 대표자인 조합장의 역할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농민들은 농협 없이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돈을 빌리고 농작물을 파는 것, 생활 자재나 비료 등을 구입하며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거나 심지어 노래교실을 이용하거나 장례식을 치르는 일까지도 농협과 관련이 있습니다. 꼭 농협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준조합원 제도를 이용해서 가입비를 내고 비과세 혜택을 받습니다.후보 7명까지 출마하는 지역도

 

특히 조합원들은 농산물의 판매나 자재 구입 외에 영농자금이나 정책자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농협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대출이자가 심한 경우 7.5% 정도로 시중은행에 비해 비싼 편인데도 불구하고 사용합니다. 그만큼 농협이 농민들의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며, 이런 점에서 각 지역 농협을 장악하는 조합장의 거취는 매우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죠. 후보가 7명까지 나오는 지역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 위탁선거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이 많습니다만,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 일반 공직자 선거도 60일 전에 예비후보 등록이 가능한데 조합장 선거에서는 그게 금지돼 있습니다. 겨우 13일 동안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해놓고, 그 기간에도 합동토론회 등 실제로 조합원들이 후보를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 차단하고 있습니다. 선거에 대한 관심이나 요구가 뜨거워도 이를 합법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거죠. 결국 남는 건 돈봉투 주고받는 것밖에 없습니다. 각 지역에서는 누가 후보인지 다 압니다. 이런 상황에서 드러나지 않게 돈봉투 주고받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법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부정선거, 돈 선거 막는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농협중앙회의 고위 임원이 개인적으로 “과열선거를 막기 위해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더군요. 결국 위탁선거법의 내용이 이렇게 왜곡된 것에 농협중앙회의 입김이 개입됐다는 것을 인정한 셈입니다. 전국 1130개의 농·축협 조합마다 평균 3명의 후보가 나오면 3천여 명이 됩니다. 이들이 각자 60일간 매일 한 건씩만 공격해도 선거 기간 동안 18만 건의 폭로가 이루어진다는 얘기에요. 농협중앙회로서는 그런 상황만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을 겁니다. 명함 돌리고 이메일을 보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못하게 막아놓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 정책 선거 실천 즉 매니페스토 운동을 추진하셨습니다만, 그 성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매니페스토 운동 자체는 일단 좌초된 셈이지요. 애초 의도대로 60일 동안 농협과 중앙회의 문제를 폭로하고 공격했다면 성과를 거둘 수 있었겠지만 현재는 모든 게 불법 아닙니까 원래 계획으로는 후보와의 관계 속에서 선거운동이나 정책에 관한 서약도 하고 논의를 거쳐 후보자들끼리 정책 협약도 만들어 농협 변혁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한편 변화의 주체 역량을 세워나간다는 구상이었죠. 이제 다 발이 묶였습니다.

 

하지만 애초부터 매니페스토 운동을 통해서 선거판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농촌에서는 다들 안면이 통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선거에서 조직과 돈의 위력이 절대적입니다. 특히 연로하신 분들에게는 정책이 별로 중요한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매니페스토 운동은 지역 농협과 중앙회 개혁에 동의하시는 분들 100여 명을 당선시킬 가능성을 찾고, 그를 통해서 개혁의 중심 세력을 세운다는 의도였죠. 100명이 아니라 50명만 당선되더라도 농협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고 봤습니다.

 

그동안 농협개혁의 방향은 중앙회의 개혁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현지 농민과 지역 농협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 점에서 각 지역 농협에서 개혁의 주도세력이 세워지지 않으면 농협의 변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 겁니다. 순서를 바꿔서, 지역 농협 조합장의 힘으로 중앙회를 바꾸자는 구상입니다.

 

- 위탁선거법으로 인해 큰 제약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정책 선거의 정신을 담은 여러가지 노력은 가능하지 않나요

 

= 지역 농협조합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개인적인 평판 등 인물 검증은 필요합니다. 공약안을 만들어서 제시하고 동의 여부를 질의하는 등의 방식으로 후보의 성향이나 정책적 지향점 등을 파악하고 협약 대상 여부를 공개할 수 있습니다. 26일부터 이런 후보들과 협약식을 맺고 공표하는 방식의 실천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운동본부 차원의 선거 캠페인에 나설 계획입니다. 지역농협과 농협중앙회 개혁을 위한 19개 과제를 신문광고 등으로 알리고, 정책 권고안을 공약안 형태로 제시하는 활동도 추진합니다.

 

후보들과 협약식, 선거 캠페인 등 추진

 

이런 활동을 위해 전국 농협의 출마자 명단을 확보해 접촉하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만 쉬운 작업은 아닙니다. 선관위나 중앙회는 이런 정보를 다 갖고 있죠. 농협의 정보력은 삼성그룹을 능가한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능한 선에서 계속 노력하려고 합니다.

 

- 농협이 변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합니다. 농협의 변화를 요구하는 요인이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 이번 동시 조합장 선거는 사람의 측면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농협의 문제는 사람의 문제와 함께 구조 및 제도의 문제가 함께 얽혀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현재 지역 농협은 종합농협체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신용, 경제, 이용(시설 및 후생 복리 포함), 공제, 지도 등이 결합된 시스템이라는 겁니다. 정부가 만들어준 것이기는 합니다만 과거에는 이런 체제가 나름 현실성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농민들이 대부분 벼농사를 짓고 거기에 소를 한두 마리 키우는 식으로 영농 규모가 영세했고 작목의 동질성이 높았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같은 조합 안에서도 농민들의 이질성이 매우 큽니다. 영농 규모도 다양해졌고 농사의 종류나 작목 등도 복잡해졌습니다. 무엇보다 농민들이 고령화하면서 영농 자체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졌습니다. 농협 조합원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현상이 생긴 겁니다.

 

현재 농협 사업에서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갈등 및 분리의 문제가 제기된 배경에도 이런 점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신용사업은 농민과 비농민의 구분이 필요치 않고 농민들 사이의 차이라는 것도 별 의미가 없거든요. 반면 경제사업은 농산물 판매나 농자재 구입에서 영농 규모 등에 따라 같은 조합원 사이에서도 이해관계의 차이가 큽니다. 결국 현재 농협의 문제는 종합농협체제의 한계에서 발생하는 겁니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현재 농협의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 종합농협체제에서는 신용사업을 중심으로 규모를 확대해 왔습니다. 하지만 농협의 원래 영역은 생산물의 가공 판매를 활성화시키는 경제사업입니다. 나머지는 부차적인 영역이라고 봐야죠. 지금 체제는 농업인의 협동조합이 아니라 지역의 협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지역 농협의 장기적인 과제입니다만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규모의 경제를 갖추기 위해 영세조합들의 합병도 거론됩니다만, 실제로 성공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규모가 커지면 수지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종합농협체제의 문제점도 그대로 커집니다. 신용사업 규모가 커지고 임직원은 줄어들어 합리성을 높일 수 있겠지만 조합원들의 이질성도 그만큼 확대됩니다. 일본에서도 지역조합들이 대대적으로 합병했지만 문제의 해결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신용과 경제사업 그리고 생활물자 공동구매 등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기존의 지역 신협까지 포괄하는 지역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해서 기존 농협의 영역 외에 중소기업 등 지역 기반의 산업을 지원하는 신용사업을 전담하도록 하고 농산물 등은 품목별로 모여서 별도의 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생활 물자는 생협을 발전시켜서 서비스하도록 하구요. 이미 품목별 조합도 생기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추세를 적극적으로 살려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중앙회는 조합의 이익 증진이 원래 목표

 

중앙회의 역할도 바뀌어야 합니다. 중앙회가 직접 자기 사업을 하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전세계에서 유일합니다. 중앙회는 비사업조합으로 회원 지도의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농협법에도 중앙회는 회원 조합의 이익 증진을 위해 존재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중앙회가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 농협 문제는 결국 우리나라 농업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농협 정상화까지 포함하는 농업 살리기에 이렇게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농업 살리기 운동을 해오신 입장에서 이런 비판을 어떻게 보시나요

 

= 문민정부 시절에도 농어촌발전위원회에 소속되긴 했습니다만 정책적으로 개입한 것은 국민의정부 농협개혁위원회에 참여할 때부터였습니다. 제 뜻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당시 활동은 농협과 축협의 통합이라는 개악으로 귀결되고 말아서 개인적으로 무척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노무현정권은 2017년에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이명박정권 들어서서 다시 지주회사를 추진하게 됐습니다. 금융지주회사와 경제지주회사를 만든다고 정부가 5조원을 지원했습니다만 농협의 문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정부가 농업에 투입하는 예산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농업에 투입하는 예산의 명목을 바꾸고 가공해서 언론 플레이를 하는 성격이 강해요.

 

돈을 투입해도 농업이 살아나지 못했다는 비판은 일면 타당성이 있지만 그런 식의 논리라면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 분야에는 농업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큰 예산이 투입되지만 지금 우리나라 교육이 정상화됐다고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요 결국 얼마나 돈을 썼느냐 하는 문제보다 그 돈을 제대로 썼느냐 하는 데에 논의를 집중해야 합니다.

 

농협이 비판을 받지만 정부와의 관계에서는 사실 할 말도 많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떠맡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Agricultural Products Processing Center)나 미곡종합처리장(RPC, Rice Processing Complex) 등이 대표적이죠. APC 하나 짓는 데 보통 50억원 이상이 소요됩니다. 건축업자만 돈을 버는 구조이고, 시설자금 등이 이런 식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개혁 과제가 절실하게 대두되는 겁니다.

 

로컬푸드와 가족농으로 ‘친환경’ 지향해야

 

우리나라 농업의 성패를 국제 경쟁력 기준으로 바라보면 답이 없습니다. 그런 기준으로 농업을 살리려다 보니 온갖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축산만 해도 국제 경쟁력을 고려해서 공장형 축산을 육성했지만 결과적으로 공해 문제나 구제역 발생 등의 부작용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시설자금이나 농자재 지원 등을 통해 건축업자나 공급업자의 배만 불리는 구조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나라 농업은 유기농업, 로컬푸드(local food), 중소기업형 가족농, 친환경 농업을 지향해야 합니다.

 

어떤 사업을 추천하고, 농민들이 실제로 그 사업을 실행했을 때 사후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농자재부터 지원하고 거기에 맞춰 사업을 하라는 방식이 많습니다. 농기계 반값 보급도 마찬가지구요. 이런 문제부터 개선해가면서 우리나라 농업의 한계를 거론하는 게 올바른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약력> 현재 (재)지역재단 이사장.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학사/석사, 일본 도쿄대학 경제학박사. 충남대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충남발전연구원장, 한국농업정책학회장, 한국사회경제학회 회장, 한국농업경제학회 편집위원장 및 상임이사, 한국경제학회 이사 역임. 현재 한국협동조합학회 이사, 한일경상학회 상임이사, 충청남도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환경재단 136포럼 회원. 단독 저서로 <순환과 공생의 지역 만들기> <그래도 농촌이 희망이다> <한국자본주의와 농업구조> 역서로 <식량대란> <가트와 농업>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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