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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오구' - "또 다른 삶을 향하는 여유"

김혜령 기자 승인 2017.03.25 19:03 의견 0
연희단 거리패의 연극 <오구>는 풍자와 해학으로 우리에게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죽음’의 이미지에 자연스러움을 더해 준다. 삶과 죽음으로 단절되는 이분법적 생각을 이승과 저승이라는 공간의 연결을 통해 또 다른 삶을 향하는 여유를 갖게 한다.

 

1막은 ‘복례’가 자신의 극락왕생을 위해 굿판을 벌인다는 내용이며, 2막은 모친 ‘복례’의 상을 치르는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의 해프닝이라는 단순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지만, 의외로 ‘복례’의 무거운 가족사와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신나는 장단과 가락으로 담아내고 있다.

 

연극 '복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굿이 펼쳐지고 있다. <p class=(연희단거리패 제공)" width="565" height="376" /> 연극 <오구> 중. '복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굿이 펼쳐지고 있다. (연희단거리패 제공)

 

평범한 일상의 단면에서 시작하는 1막. 어느 오후 낮잠을 자던 노모 ‘복례’가 죽음을 예고하는 꿈을 꾸고 큰 아들에게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오구 굿’을 열어 달라며 무당 ‘석출’을 부른다. 석출과 무녀들은 신명나는 굿판을 벌이고 굿판이 끝날 무렵 ‘복례’는 “나 갈랜다”라는 말을 남기며 죽음을 맞이한다.

 

이어 2막은 ‘복례’의 초상을 치르는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염습, 곡, 시골 넓은 마당 평상에서 벌어지는 문상객의 풍경 등 옛 상가집에서나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모습 하나하나를 재현한다. 우여곡절 끝에 시끌벅적한 초상집의 시간이 지나가고 상여가 출발하며 ‘복례’는 저승을 향한 먼 길을 떠나며 극을 마무리 짓는다.

 

연극 중. 복례의 상가집을 찾은 저승사자들이 저승가는 노자도늘 세는 장면. <p class=(연희단거리패 제공)" width="565" height="376" /> 연극 <오구> 중. 복례의 상가집을 찾은 저승사자들이 저승가는 노자도늘 세는 장면. (연희단거리패 제공)

 

2시간 내내 극을 끌어가는 배우들의 에너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1막에서만 15명의 배우들이 한꺼번에 등장해 혼신을 다하며 신명나는 굿판을 재현하는 것은 흥미로운 볼거리 이기도 하다.

 

특히 노모 ‘복례’ 역의 남미정과 무당 ‘석출’ 역의 김미숙 두 배우의 호흡이 인상적이었다. 남미정은 일제의 강제징병에 남편을 떠나보낸 한 맺힌 여인, 시장바닥에서 떡을 팔아 두 아들을 키워낸 억척어멈의 모습을 유쾌하고 매력있게 표현한다. 김미정 배우 역시 1막에서는 해학이 넘치는 굿판을 이끌고, 2막에선 산만해질 수도 있는 극에 집중력을 불러온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느끼게 하는 섬세한 조명 연출도 감상 포인트다. 조명의 변화를 통해 이승과 저승을 상하의 느낌이 아닌 평면적 공간감으로 연출해 서로 떨어져 있는 세계가 아니라 연결된 세계라는 느낌을 들게 해 산 자의 육체와 망자의 영혼이 공존하는 공간을 창조한다.

 

연극 커튼콜 중. 왼쪽부터 '소리무녀' 역 김소희, '복례' 역 남미정, '석출' 역 김미숙 배우. <p class=(사진: 윤준식 기자) " width="550" height="413" /> 연극 <오구> 커튼콜 중. 왼쪽부터 '소리무녀' 역 김소희, '복례' 역 남미정, '석출' 역 김미숙 배우. (사진: 윤준식 기자)

 

감상을 마치고 나서도 한참동안 연극 ‘오구’는 굿이 일상에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무당 ‘석출’이 굿을 통해 ‘복례’에게 죽음을 준비하게 하는 과정은 익살스러우면서도 정성스럽다. 이 과정에서 ‘복례’는 이승에 맺힌 한을 풀고 저승으로 떠날 마음의 준비를 마친다. 한편 ‘복례’의 상을 치르는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도 죽은 자의 영혼을 보내는 예를 갖추며 갈등을 해소해 간다. 영혼을 보내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산 자를 위한 굿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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