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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우리는 아직도 고도를 기다린다"

김혜령 기자 승인 2017.04.24 23:50 의견 0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지난 4월 7일부터 산울림 소극장에서 또 한 번의 막을 올렸다.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임영웅 연출이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을 각색한 것으로 1969년 초연이래 지금까지 47년간 계속해서 공연되고 있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부조리극으로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는 일반 극과는 달리, 앙상한 나무 한 그루를 배경으로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계속해서 고도가 오기를 기다리는 일정한 흐름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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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에스트라공(고고) 박상종, 블라디미르(디디) 한명구 배우
(산울림소극장 제공)

극중 디디와 고고라는 애칭으로 서로를 부르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고도를 기다리기 위해서 매일 나무 밑에서 만나 많은 시간들을 보내지만, 고도는 오지 않는다.해가 질 무렵 심부름하는 소년을 보내 그 다음날 온다고 전해달라는 이야기만 남길 뿐이다.

스토리 자체도 고도를 기다리며 디디와 고고의 시덥잖은 농담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175분의 긴 공연시간은 연극 2편에 해당하는 분량이라 자칫 지루하다 여길 수 있지만, 엽기적인 인물 포조와 럭키의 등장으로 생기는 다양한 해프닝은 무대 위에 파란을 일으킨다.블라디미르 역의 한명구와 에스트라공의 박상종의 연기는 밋밋할 수 있는 극 속에 다채로운 색채를 입히고 익살스러운 유머를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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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산울림소극장 제공)

한편 이 극은 우리에게 영원한 기다림에 대해 질문한다.실제 무대에서 “50년 동안 기다렸는데...”라는 대사가 장난스럽게 스쳐지나가지만 디디와 고고의 기다림에는 즐거움보다는 극한의 고통이 숨어있다.이들은 서로의 무의미한 말을 흉내내기도 하고, 온갖 장난과 수다로 소일한다. 심지어 해가 질 무렵에는 기다림의 괴로움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기도 한다.그러나 밤이 오며 체념한 둘은 기다림을 택한 채 각자의 길로 돌아가고 다음날 또 고도를 기다리는 장소인 나무 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극 속의 디디와 고고와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는 인생을 살아가며 바라는 무언가를 기약없이 기다린다.하지만 그 기다림을 위한 노력은 혼자서는 어렵다.디디와 고고처럼 누군가와 끊임없는 관계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기다림을 이겨내게 되는 것이다.

관극하는 175분의 시간을 보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지금껏 고도를 50년이나 기다렸는데, 올 해 한 번 더 기다린들 어떠리이미 혼자가 아니니 우리는 올해도 고도를 계속해서 기다릴 것이다.

[김혜령 기자 / windschuh@sisa-n.com]

고도를기다리며_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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