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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주의 역사적 아픔과 개발의 진통을 이야기하는 연극 '초혼'

김혜령 기자 승인 2017.05.02 10:25 의견 0

연극 '초혼', 연희단거리패-굿과 연극 시리즈 3부작 대단원이 막을 내린다

 

이윤택 연출의 굿과 연극 시리즈 마지막 작품, ‘초혼’이 4월 22일부터 무대에 올랐다.

 

‘초혼’은 제주가 품은 역사적 아픔과 오늘날 진통을 앓는 제주를 개인의 삶과 결부시킨 연극이다.

 

앞서 공연된 굿과 연극 시리즈 두 작품이 개인의 삶에 비중을 맞추었다면, ‘초혼’은 한국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제주라는 지역이 지닌 역사적 아픔과 현재의 제주가 안고 있는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었다. ‘오구’와 ‘씻금’이 개인의 삶 속에 묻어있는 희노애락을 표현하기 위해 극의 중간에 흥겨운 요소들을 숨겨둔 반면, 이번 작품 ‘초혼’은 제주도가 현재 직면한 문제들을 극의 곳곳에 숨겨두어 전작들과 뚜렷한 대비를 보여준다.

 

한 많은 제주 여인의 삶을 그린 연극 '초혼' <p class=(연희단거리패 제공)" width="550" height="367" /> 한 많은 제주 여인의 삶을 그린 연극 '초혼' (연희단거리패 제공)

 

무대의 한편에서는 쉼없이 굿이 계속되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극이 전개되는 특이한 구조를 보여준다. 그러나자칫 산만할 수 있는 구성이지만 음향의 밸런스와 조명의 변화로 극의 집중도를 이끌어내고, 굿의 진행 또한 스토리의 전개와 조화를 이루며 강약과 완급을 조절한다.

 

제주에서 60년을 살아온 주인공 ‘석출어멈’은 마을의 부녀회장을 맡고 있다.매해 해녀들의 무사안녕을 비는 ‘요왕맞이 굿’을 준비하던 어느 날, 마을에서 운영하는 양식장의 폐수 때문에 바다의 전복이 죽어 다른 마을과 시비가 붙는다. 또 인근의 또 다른 마을 사람들은 주인공에게 땅을 팔라고 한다. 주인공의 땅이 중국인들이 호텔을 짓기에 좋은 노른자 땅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공장에 다니다가 손을 잘리고 내려온 딸은 임신한 아이를 사산해 마음에 상처를 이기지 못해 바위에서 뛰어내리고, 아들은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며 불을 질러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주인공의 기구한 삶은 과거에서부터 이어진다. 시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불온사상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고, 남편은 4.3사건 때 빨치산으로 몰려 옥고를 치르다 폐병으로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얼핏 제주에 살고 있는 한 많은 여인의 삶을 표현한 것 같지만, 이를 통해 제주가 가진 시대적 아픔, 그리고 현재 제주가 직면한 문제를 마주할 수 있게 만든다.

 

무대 한 쪽에서 굿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고, 다른 한 쪽에서는 극이 진행되는 특이한 구조의 연극이다 <p class=(연희단거리패 제공)" width="550" height="369" /> 무대 한 쪽에서 굿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고, 다른 한 쪽에서는 극이 진행되는 특이한 구조의 연극이다 (연희단거리패 제공)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는 숨을 쉬는 것 조차 극의 몰입에 방해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객을 극 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특히 무대를 떠나 객석 중간까지 들어와 살려달라고 외치는 배우의 연기는 역사의 현장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우리의 모습을 더욱 처절히 느끼게 했다. 극이 다루는 묵직한 주제들과 배우들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한다.

 

한편, 아들이 대나무 숲에 불을 지르면서 다 태워버리겠다고 하는 마지막 장면은 제주의 아픈 역사를 다 불사르고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로도 다가왔다. 대나무 숲의 불길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땅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린 원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김혜령 기자 / windschuh@si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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