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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_이야기(11)] 왕비를 위한 공간 교태전과 아미산

시사-N 승인 2018.02.28 13:21 의견 0
교태전은 왕비의 침실로 중궁(中宮) 또는 중전(中殿)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교태전의 이름은 주역에서 따온 것으로 ‘하늘과 땅의 기운이 조화롭게 화합해 만물이 생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경복궁이 처음 세워질 당시에는 없었던 건물로 세종대왕 때 세워진 것으로 추측합니다. 1553년 명종 때 일어난 화재로 불타버려 1555년에 교태전을 다시 지었지만 임진왜란 때 또 불타 없어졌습니다.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새로 지었지만 화재로 창덕궁 내전이 불타자 경복궁 교태전을 헐어 창덕궁을 보수하는데 사용했습니다. 지금 볼 수 있는 교태전은 은 1990년에 복원한 모습입니다.

 

교태전의 모습

(사진출처 : 경복궁사이트)

 

교태전 뒤뜰에는 아미산이라는 후원이 있습니다. 아미산은 경회루의 연못을 파면서 나온 흙을 쌓아 만든 동산이라 알려져 있으며 꽃과 나무를 많이 심어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아미산은 중국에 있는 불교 4대 명산 중 하나로 중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하다고 알려져 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교태전 뒤뜰의 아미산 이름은 불교신자였던 어느 왕비와 관련되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이 있습니다.

 

교태전에서 나온 연기가 빠져나갈 수 있게 굴뚝을 세웠는데 붉은색 벽돌을 쌓고 기와로 지붕을 만들어 작은 한옥을 생각나게 합니다. 벽에는 갖가지 풀과 나무, 동물 등으로 장식해 아미산의 꽃과 나무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합니다. 보물 811호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습니다.

 

교태전의 아미산 굴뚝

(사진출처 : 문화재청)

교태전 : 후사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공간교태전을 지도에서 살펴보면 경복궁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어 중궁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광화문에서부터 흥례문,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이 일직선으로 이어진 끝자락이 교태전인데, 임금이 계시는 강녕전 바로 뒤 교태전을 둔 것은 이곳이 그만큼 중요한 곳이라는 의미입니다.그 중요한 일은 바로 왕자를 생산하고 왕실의 대를 잇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태전 출입문의 이름도 양의문(兩儀門)으로 음양의 조화를 상징합니다.

 

아미산은 백두대간의 이어지는 줄기를 따라 경복궁 안에 만든 인공산이기도 합니다. 백두대간의 정기가 경복궁과 교태전까지 뻗기를 기원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교태전은 여성들의 업무공간이기도 해서 비빈궁녀들을 포함하는 내명부를 다스리고 궁궐 내 여성이 하는 일을 총괄했습니다.

 

또, 여성의 공간이라 화려함이 극에 달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조경은 마당에 화원을 꾸미지 않아 후원이 발달했는데, 뒷뜰 아미산 굴뚝의 벽사, 심장생, 사군자, 만자문 등의 아름다움은 글로 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아미산에는 연꽃잎을 조각한 작은 돌 연못이 있는데, 그 윗면 안쪽에 두꺼비 네 마리를 새겨 장식했습니다.전설에 따르면 월궁은 아름다운 선녀 ‘항하’가 사는 궁전으로 ‘항하’는 남편을 버린 죄로 두꺼비가 되어 평생 월궁에 갖혀 혼자 외롭게 살았다고 합니다.두꺼비 조각이라는 상징으로 이 연못을 월궁이라 표현했던 선조의 멋과 운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tip후원에도 음양의 어우러짐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있습니다. 노을과 달을 상징하는 두 개의 석함을 찾아보세요.

 

[이재권 / 한누리역사문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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