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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누가 '동의'했는가? - 연극 '콘센트-동의'

김혜령 기자 승인 2019.06.28 17:59 | 최종 수정 2019.07.04 14:32 의견 0

연극 <콘셉트-동의>는 2가지의 이야기가 각각 흐르다 어느 한 지점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독특한 스토리텔링의 극이다.

이제 막 아이를 출산한 키티와 에드워드 부부는 친구 부부인 레이첼과 제이크를 초대해 집들이 겸 출산 파티를 연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던 것처럼 보이던 레이첼과 제이크 부부 사이는 제이크의 외도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파티가 끝난 후, 키티와 에드워드는 친구 부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만 둘은 극명하게 의견이 엇갈린다. 에드워드는 제이크를 편들며 갈라서면 안된다고 이야기하지만, 키티는 레이첼의 행복을 위해 함께 살면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 순탄한 결혼생활을 할 줄 알았던 제이크와 레이첼 부부는 제이크의 외도가 드러나면서 갈등을 겪는다. ⓒ 국립극단

동시에 변호인이었던 에드워드의 활약으로 재판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패소하는 사건이 진행된다. 성폭력 피해자는 피의자의 이전 전적과 진술서에 쓰지 못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지만, 에드워드는 이번 사건과 이전 사건을 연관 지을 수 없다고 변호한다.

이 두 이야기는 에드워드 키티 부부, 제이크와 레이첼 부부가 참석한 크리스마스 파티에 성폭력 피해자가 등장하며 하나로 연결된다.

제이크와 레이첼은 에드워드의 중간 역할로 해피엔딩을 맞이하지만, 에드워드와 키티는 아슬아슬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두 사람 앞에 성폭력 피해자의 등장는 새로운 파문을 일으킨다. 자신이 지은 죄는 없는데, 죄를 지은 피의자는 당당히 살고 자신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고 자살해 버린다.

▲ 성폭력 피해자는 재판에서 패소하고 자살한다. ⓒ 국립극단


두 이야기는 언뜻 보면 연결될 수 없는 두 개의 거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지만 묘하게도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동의와 공감, 감성과 이성 사이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는 지나치게 이성적인 사람으로 묘사된다. 에드워드의 직업은 변호사이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평면적으로 놓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데 능숙하다. 그의 직업은 그의 삶의 태도와도 연결된다. 예를 들어 키티의 대사 중 “너는 내게 단 한번도 미안하다고 한 적이 없어”라고 하는 대사가 등장한다. 에드우워드는 “내가 사과할게”라고 돌려 말할 뿐이다.

이 두 말은 모두 미안함을 담고 있지만, 태도는 현저히 다르다. 사전적인 의미로 미안하다는 말은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를 뜻한다. 감성적으로 접근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과한다는 말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다’는 의미이다. 이성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판단했으며 그 후속조치로 용서를 바란다는 뜻이다.

감성적인 사람인 키티는 에드워드를 이해하지 못하고, 에드워드는 그런 키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이다.

▲ 키티와 에드워드,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계속된 견해 차이로 삐걱거린다. 결국 둘은 이혼하게된다. ⓒ 국립극단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가장 슬픈 사람은 키티일까

아니다. 이 연극에서는 그 누구 하나 아프거나 슬프기만 한 사람은 없다. 오직 자살한 성폭력 피해자만이 자신의 무고함을 드러낼 뿐이다.

키티는 5년 전 남편의 외도로 힘들었던 감정을 남편도 알게 하기 위해 남편의 친구이자 친구의 애인인 팀과 바람을 피운다. 그야말로 다른 사람의 고통엔 둔감하고 자신의 감정에는 충실할 뿐인 셈이다. 이렇게극중 인물들은 다들 자신이 선택하고, 선택한 관계 안에서 무너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인물 개개인의 고통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냥 그런 인물들 사이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한다.

연극의 무대는 무너진 그리스 신전을 배경으로 하는데, 그것이 환상 속에서 살아가던 그들이 현실을 직시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성범죄 피해자의 자살은 우리에게 ‘동의’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피해자는 술에 취했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로 묘사되는데, 피해자의 심신상태가 불안했다는 이유로 성범죄 피해자라는 사실은 소멸되고 만다.

피의자의 변호자는 그런 그녀에게 없던 일을 만들어냈다며 다그치기까지 한다. 자신의 과거 질환은 드러났지만 피의자의 과거 죄의 기록은 누락된 채 재판도 마무리되었다. 힘의 논리로 마무리된 재판. 아무도 그녀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지 않았다. 누가 성범죄에 동의한 것인가.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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