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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사회를 보는 차가운 시선에 섞인 따스함 한 방울

국립극단 2020년 희곡우체통 낭독회: 이유진 작

김혜령 기자 승인 2020.05.13 22:24 | 최종 수정 2020.05.13 22:37 의견 0

1990년대 초에 10대와 20대 시절을 보낸 신세대를 표현하는 말, ‘x세대’. (*주: 정확히는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베이비붐 세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코로나로 인해 휴식기를 맞았던 국립극단이 2020년 희곡우체통 첫 낭독회로 선택한 작품은 이유진 작가의 희곡 <x의 비극>이다. <X의 비극>은 삶에 지친 40대 가장 현서가 바닥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동에서부터 시작된다. 극은 더 이상 어떤 경쟁도, 질주도 하고 싶지 않은 현서를 중심으로 아내 도희, 아들 명수, 어머니, 친구 우섭까지 끊임없는 갈등요소를 펼쳐낸다. 

극은 의외의 인물인 명수의 과외 선생님 애리를 통해 전환점을 맞이한다. 드러누운 현서에게 일어나야 한다고 외치기만하는 주변 인물들과는 달리, 애리는 자신이 지녀왔던 삶의 가치관을 드러내며 자살을 종용한다.

일어나지 않는 현서에게 지친 가족, 자살을 권유하는 애리까지. 더 이상 삶을 이어나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현서는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자살 시에도 보험금이 나오는지를 묻는다. 보험 상담원들은 그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에게 살아갈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그는 끝내 애리와 함께 자살을 시도하며 극은 절정을 맞이한다.

무대 장치, 동작, 조명까지 실제 극의 무드를 조성하는 요소들이 제외된 무대였지만 배우진들이 낭독하는 목소리만으로 거대한 무대가 가득 채워졌다. 관객들은 사회에서 내몰려 갈 곳을 잃어버린 40대를 연기하는 3명의 배우가 낭독하는 대본에 함께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배우 안병식은 무기력하고 나약하며 염세적 태도로 일관하는 40대 가장 현서 역할을 멋지게 소화했다. 

작가는 사회를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선을 날카롭게 표현했다. 특히 극을 처음 시작하는 현서의 대사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다”라는 대사는 전쟁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일반 소시민의 폐부를 찌른다. 술자리에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우리는 모두 사표를 마음 속에 품고 산다”는 말도 우리네 삶을 엿보는 문장으로 다가왔다. 극 중 인물들 역시 악인도, 선인도 없이 입체적 면모를 지닌다. 개개인이 지닌 캐릭터는 극을 보는 관객들을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삶을 엿보는 대사들로 가득한 극이 관중들에게 비수를 꽂는다.

죽음, 자살, 무기력, 불륜까지. 연극에 등장하는 소재는 가볍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사회적인 문제점 사이에 유쾌한 코드를 숨겨두었다. 인생이 비극이기만 할 수 없듯 무거운 주제를 전달하면서도 위트있는 대사, 해학적인 캐릭터 표현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왜 나를 낳았냐”며 어머니를 몰아붙일 정도로 무기력하고 비관적인 현서지만, 젊은 20대 여성을 보며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사회를 비관적이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인물인 만큼 무게감 있는 인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그 사이에서도 위트를 놓치지 않은 점이 극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포인트로 작용했다. 하루하루를 치열하지만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살아가는 삶에 옅은 미소를 건네는 작가의 시선이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국립극단이 휴관 해제 후 첫 작품으로 선보인 <X의 비극> 낭독회는 창작희곡 익명 투고 제도인 '희곡우체통'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X의 비극>를 포함해 올해 5편의 작품이 낭독회고 진행되며, 작년에 낭독된 작품 <사랑의 변주곡>은 올 12월 국립극단에서 공연된다.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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