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高地)’를 향한 한국 교회

조연호 작가의 <한국 교회가 살아야 한국이 산다> (45)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19.08.19 13:16 의견 0

1950년대 민족상잔의 비극을 끝내고, 정전협정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남북은 새로운 경쟁 시대로 들어간다. 북한은 공산주의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고, 남한은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말했지만, 실제로는 독재와 반공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통제했고 반공 이데올로기의 선봉에 섰던 세력이 한국 교회였다.

당시 한국 교회는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가교역할을 담당했고, 정권과의 밀접한 관계를 형성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고지론’을 향한 한국 교회의 노력은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의 핵심부를 대거 장악하는 쾌거를 거둔다. 장로 대통령도 선출했고(전 김영삼 대통령, 전 이명박 대통령 등) 혹, 대통령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기독교에 우호적인 정치인들을 상당수 배출했다.

한국 교회는 가난한 빈농 출신으로 태어나 출세한 것처럼 부와 명성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초기에는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기도 했고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규모가 커지고 지속적인 성장의 고속도로가 열리면서, 혁신과 개혁 의지를 상실해 버렸다.

그렇다면, 왜 고지를 열망했을까? 고지에 대한 열망은 세상을 하나님의 뜻에 적합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정치 권력과 부는 분명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물리력이었다고 생각했으니, 성도 중에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과 부자가 많을수록 하나님 나라가 더 가까울 거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파생한 것이다.

그러나 1517년 10월 31일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점으로 탄생한 개신교는 목표했던 고지에 도달하자 종교개혁, 혹은 종교혁명의 정신을 잃어버리고, 당시 가톨릭의 부패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권력, 부, 성장 등 흔히 말해서 세속의 성공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는 어느 덧 고지 자체가 목적이 되버렸다.

세상은 당연히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고지에 오른 자들의 실수와 비윤리적인 행태로 기독교의 이미지만 추락했을 뿐이다.

하지만 2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큰 문제 없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교회에 다니면서 경제성장의 떡고물을 충분히 맛볼 수 있었고, 그 모든 것을 ‘아멘’으로 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시절, 밥은 ‘아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절대적인 요소였다. 세상의 높은 지위와 부의 영역을 확보하면 할수록 기독교는 더 절대시 될 수 있었다. 교회를 다니면서 부자가 되고, 정치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상황이 이어지자 세속적 성공에 환호하지 않는 성도는 거의 없었다. 고지에 도달한 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는데, 기독교는 마지막 잔을 채우고 단 숨에 마셔 버렸다.

독재 정권이 끝나고 나서도 교회는 꾸준히 성장한다. 1980년대 ‘천만’이 등장했고, 이러한 성장에 힘입어 1990년대 한 목사는 대통령에 출마하기도 했다. 목사가 왜 정치인이 되고 싶었을까? 그 기원은 한국 교회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헌국회에서도 목사 출신 의원이 있었으며, 기독교 지도자이면서 정치인이었던 인물은 수도 없다. 정치를 향한 갈망이 한국 교회의 DNA라고 단정한다면, 억측일까(세계 교회 차원에서도 기독교 공인 이후 교회는 항상 권력의 핵심이었다)?

고지에 대한 열망은 몇 차례 대통령을 선출하고서도 그치지 않았다. 여전히 고지가 기독교의 목표처럼 보인다. 아직 까지는 고지에 오를 수 있는 힘이 남아있다(여전히 기독교 인구, 네트워크는 큰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힘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사회적인 비판에 대응하지 못하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지금 교회는 곧 구시대의 유물처럼 남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과거처럼 높은 곳에 오르는 건 과거의 유작으로 전래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