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이 없다

조연호 작가의 <한국 교회가 살아야 한국이 산다> (46)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19.08.20 11:21 의견 0

3차 산업혁명 시대의 정보화에 맞서서 기독교는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었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종식되고, 표준이 해체되고, 진리에 대한 반항이 고개를 들고 눈을 들어 응시하자, 교회는 당황하고 머뭇거리다가 변화의 시기를 놓쳐버렸다.

하나님의 사랑을 설파했던 ‘성전(聖殿)’은 세상의 포교를 단념하고 세상과 응전하는 그들만의‘성전(聖戰)’이 돼버렸고, 서서히 집단에서 개인으로 전환되는 새로운 시대에 교회는 여전히 수많은 무리 – 성경에 나오는 예수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을 - 를 원했고, 표준화하기를 원했고(혹은 표준이 되기를 바랐다)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서하는 개인을 적대시했다. 2차 산업혁명 시기의 ‘표준’은 이제 계몽이 아니라 나와 적을 나누는 ‘경계’로 해석됐다.

분산, 평등, 다양성, 개방, 민주주의 등을 외치는 정보화 시대에 교회는 현실을 스스로 외면했고, 그 결과 세상으로부터 따돌림당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성장론을 포기하지 않았다.

현재도 교회의 부흥은 성도 증가를 의미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교회 주변에 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는 계획이 있으면, 교회를 개보수하거나 새로 건축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물론,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새롭게 들어서면 교회 성도가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나 성도가 늘어날지도 모르면서 교회 재정으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공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공사비는 고스란히 성도들의 몫이다. 목사들은 성도들의 헌금으로 월급을 받아 생활한다(교회마다 다르겠지만 매년 월급은 증액된다). 그리고 교회를 건축해서 이득을 얻는 사람도 목회자들이다. 일반 성도들은 1주일에 1회도 제대로 이용하지 않는 교회지만, 목회자들은 직장처럼 매일 사용하기 때문이다. 즉, 건축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목회자들은 성도들에 비해 크게 부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교회에서는 당연하게 벌어진다. 혹, 이러한 상황에 반기를 든다면? 당연히 지탄받게 되고, 심한 경우 교회를 떠나야 한다. 이러다가 건축에 실패하면, 교회는 분열되고 어렵게 헌금했던 성도들한테 돌아오는 건 마음의 상처와 교회에 대한 불신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내부에서는 자구책으로 각종 성공의 비법을 담은 경영서들이 인용되기 시작하고 재정, 즉 돈에 대한 메시지가 중요해졌다. 1968년에 ‘마태 효과’가 등장했다. 새로운 시대를 예측하면서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질 것을 전망했다. 한국 교회는 이러한 부정적인 예측을 비판하면서 대안을 제시했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론을 그대로 적용한 것처럼 교회를 세상의 성공과 연결한다. 특히, IMF 이후 교회는 더 힘써서 성공과 관련된 메시지를 쏟아 낸다.

많은 기도원에서 로또 복권과 같은 이야기들이 목사의 설교를 통해 거리낌 없이 설교 됐고, 역경에 처한 성도는 그 메시지의 뜻도 모르는 체 ‘아멘’으로 화답했다. 교회는 공동체를 강조하고, 나눔을 애써서 실천해야 했는데, 오히려 개인의 성공과 관련한 이야기만 강단에서 진리인 것처럼 설교된 것이다. 그 어설픔이 잘못된 신앙적 기틀을 제공하고, 결국 ‘개독교’와 ‘먹사’라는 모멸적인 언어를 탄생하게 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교회는 그 하나님 것을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는 그러한 교회를 철저하게 파헤치고 벗겨냈다. 근거 있는 이야기도 있고, 고의적으로 좋지 못한 것들을 악의적으로 편집한 것도 있다.

특히, 대중매체는 대형 교회의 비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대중매체의 집중 보도는 교회의 각성을 바라는 측면도 있었을 텐데, 교회는 반성하지 않았다. 이미 울타리 밖은 적지라고 단정한 상황에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와 공격적인 여론은 사탄의 계교이자 말세의 핍박으로 치부했다.

이쯤 되면 초대형 교회가 도미노 넘어가듯 무너질 법도 한데, 교회는 잘 버텼다. 일부 이탈자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내부는 더 결속됐고 규모 유지에 있어서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상황은 초대형 교회의 각성 기회가 되기보다는 교회 입장에서 충성된 자를 선별하는 기준이 됐다. 신앙의 지적 배경이 없는 성도들의 감성은 어느 때보다 뜨겁고, 불쌍해 보이는 담임 목사의 십자군이 돼서 교회와 목사를 지켜주기로 단단히 각오한 듯했다.

그러나 교회 외부의 상황은 달랐다. 원래 자극적인 비판은 대중들에게 잘 먹힌다. 거짓말도 여러 번 들으면 정말처럼 믿게 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사실의 진위를 파악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부족하고 감정인 대중은 잘 속고 선동에 동요한다. 그저 외부의 여론이 계란 투척, 혹은 피라미들의 버둥거림이라고 생각했었던, 큰 바위이자 거대한 그물이었던 한국 교회는 수많은 계란 투척으로 인해 썩는 냄새가 진동하게 되었고, 촘촘했던 그물은 이제 구멍이 숭숭 뚫려서 사람을 낚는 어부의 도구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교회는 부패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교회의 그물은 새로운 물고기를 포획할 수 없고, 오히려 잡은 물고기마저 뚫린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고 그러한 물고기를 ‘신천지’와 같은 유사 기독교가 추수 시절 벼 베듯 수확해가는 상황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