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풀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다. 아니, 시간마다 다르게 느껴진다. 군인들은 매년 여름철마다 제초작업에 투입된다. 과거에는 낫과 호미가 손에 쥐어졌다면, 요즘에는 제초기를 등에 짊어지고 뜨거운 태양 볕 아래 하의는 전투복과 통풍조차 잘되지 않는 전투화를 신고, 위에는 갈색 런닝을 입고 세상 모든 풀은 다 벨 것 마냥 “충성”을 외치고 투입된다. 

하루 6시간 꼬박 제초작업하고 나면, 1주일 정도는 풀 걱정은 하지 않아야 하는데, 여름철 풀은 강렬한 제초기의 공포를 곧 잊고 바로 고개를 다시 빳빳하게 든다. 

“총회장님 이제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응? 뭘 나서?” 

코로나 19가 맹렬한 기세를 떨치는 동안에도 경기도 가평의 별장에 머물면서 세상과 연을 끊고 사는 신천지 교주는 비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침 정원에 앉아 새로 들어 온 잎 차를 음미하는 중에 들려오는 소리라 더 맥락을 이해할 수 없었다.

“코로나 사태가 좀 심각합니다.”
“그거 지난번에 마귀의 간교니 잘 이겨내자고 내가 신도들한테 메시지 전했잖아.”
“그러시긴 했는데, 우리 신도들은 회장님 말씀을 철석같이 믿고 받들고 있지만, 우매한 족속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진리와 떨어져 살아간 시간이 너무 길어서 사리 분별을 제대로 못 합니다.” 

총회장은 주전자에 있는 차를 작은 잔에 가득 채운다. 조금씩 흘러내리는 차에서 좋은 잎 차임을 알리는 향이 피어난다. 그 냄새를 잠시 코로 킁킁대다가 이윽고 젊었을 때는 막힘없던 목구멍에서 한 마디 어눌한 발음을 내뱉는다.

“그럼, 알아서들 해!” 

코로나 사태가 신천지와 엮이기 시작하면서 온 세상 비난의 폭풍우가 밀려오자 처음에는 지나가겠거니 생각했던 주변 간부들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자는 간부들의 의견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총회장이 직접 나설 때가 됐다고 의견일치를 본 것이다. 물론, 걱정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코로나19가 뭔지도 알지 못하는 총회장을 당최 믿을 수 없었고, 혹 실수라도 한다면, 그 여파는 일반 시민들만이 아니라 신도들에게까지도 미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간부들의 걱정도 걱정이지만, 총회장 역시 같은 걱정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대부분 업무를 주변인들에게 맡기고 있는 형편이어서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설교를 하거나, 좀 더 기력이 있었을 때 배운 내용을 반복적으로 전하는 것뿐이었다. 

“이번에는 일반인들 앞에 서셔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 꼭 그렇게 해야만 하나?”

나이가 들면, 앞에 서는 게 영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젊은 시절에는 스스로 신적인 존재라고 여기고 자신만만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실수도 잦아지고 자신감도 떨어졌다. 

‘소싯적에는 어떤 사람들이라도 내 말에 굴복하게 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한마디 하는 것도 힘드니.’

하지만, 부하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을 육감적으로 알았다. 산중의 왕 호랑이도 이빨과 발톱이 빠지면, 토끼 한 마리 제대로 사냥할 수 없음을 알기에 주변에서 권하는 일을 거부할 수 없었다.

“뭐 그래야 한다면, 그렇게 하지.”
“그리고 그 전에 검사를 좀 하셔야 합니다.”
“무슨 검사?”
“예. 뭐 총회장님 건강에 문제없다는 검사죠.”
“뭐 그렇게 하지.”

영생을 살 거라고 설파하고 다니지만, 사실 매년 건강진단을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 주변에서도 총회장이 건강해야 그들의 직위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미 사이비 교주임을 알고 있어도 그를 쉽게 내 칠 수 없다. 

총회장을 신처럼 알고 있는 신도들은 그가 꼬박꼬박 건강검진을 받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건강을 유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예수도 배고프면 먹었고, 졸리면 잤다. 그리고 십자가에 처형당할 때는 고통에 몸부림치지 않았는가? 건강을 위해서 좀 신경 쓰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검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회장님 코로나 검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다만, 조금 아프실 수 있습니다.” “음. 그렇게 하라고.”

담당 주치의는 면봉같은 검사 도구를 꺼내 총회장의 늘어진 콧구멍에 쑤셔 넣는다. 

“윽!” 

순간 내뱉은 소리인데, 금세 거둔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지. 그런데, 정말 아프구먼.’

들어간 검사 봉은 깊숙이 들어간 거로는 부족했는지, 바로 온 콧구멍 속을 휘 집어 통증을 더 한다. 그러나 이미 참기로 마음먹은 구순의 노인은 인상을 조금 구겼을 뿐 더는 신음을 내지 않았다. 잠시지만, 그의 이마는 땀구멍을 열어 송알송알 그 결실이 맺혀 있었다.

“역시 회장님이십니다. 잘 참으셨습니다. 결과는 내일 오전 중에 비서를 통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고생했어요.”

세상이 온통 전염병으로 난리 북새통이어도 그는 알지 못했다. 시골 한적한 곳에서 오늘, 내 일을 한 날같이 보내는 사람한테 세상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에 대한 비판도 귀에 들리지 않았고, 그가 보는 세상은 현재 앉아있는 별장 안뜰 외에는 없다. 십 미터 정도 떨어져 굳게 닫힌 문이 왠지 평안함을 준다고 느낀다.

검사를 끝내고 돌아가는 의사를 불러세우고 이야기하는 비서를 보니, 잠시 궁금증이 일긴 하지만, 그대로 눈을 돌려 관상용으로 설치한 연못의 잉어를 훑어본다.

‘네가 부럽구나. 아니, 너나 나나 다를 바 없구나.’ 

그 심정을 알았을까? 마침 잉어 한 마리가 주둥이를 수면 위에 내놓고 뻐금뻐금 뭐라 중얼거린다.   (계속)

시사N라이프 조인 작가 news@sisa-n.com 조인 작가의 기사 더보기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