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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일기(20)] 3월 23일(수) 코로나 지원은 공감이 우선인 듯합니다

조연호 작가 승인 2022.06.01 15:12 의견 0


아침에 일어나서 체온을 체크했습니다. 정상입니다. 이제 열이 많이 올라도 37.2도를 넘지 않았습니다. 컨디션도 좋아진 듯해서 정말 오랜만에 책상에 앉았습니다. 글자를 오랜만에 읽고 머릿속에서 단어와 문장을 해석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보통 매일 독서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종종 글 해석능력이 떨어지고 독서에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생각될 때쯤에는 며칠 눈과 머리를 쉬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렇게 쉬다가 다시 책을 읽으면 문장을 흡입하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물론 독서를 매일, 많이 하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말이긴 합니다. 한 시간 정도 독서하고 다시 자리에 누웠습니다. 힘들었습니다. 여전히 코로나와 전쟁 중이었으니까요.

‘참, 지독하다! 코로나!’

그리고 책상에 앉기 전에 병원에 전화해서 비대면 진료를 받아 약을 추가로 신청했습니다. 4일 치를 처방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닐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 받자.’

부족한 것보다는 나을 듯해서 4일 치를 받기로 했습니다. 이미 격리 기간이 끝난 지 1주일이 넘은 어머니께서 제 약을 받아 오시기로 했습니다. 사실, 격리 기간은 끝나셨지만 후유증으로 체력적으로 힘들어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격리되니 모든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죠. 식사를 챙겨주는 것도 제가 아니라 어머니였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거의 어머니께서 하셨습니다.

‘이제, 내일만 지나면 나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자유가 생기는 구나!’

그렇게 아플 때는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몸이 조금 나아지니 거짓말처럼 마음이 밖으로 향했습니다. 여전히 기침이 있고, 목에 인후통이 있었지만 처음과 비교하면 정말 조족지혈(鳥足之血)수준이었고, 몸 상태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격리 6일 동안에도 세면과 양치질은 자주하려 했지만, 머리는 딱 한 번 감았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4일째 되던 날 감았습니다. 샤워를 한 번도 하지 않아서 속옷도 거의 갈아입지 않았네요. 이정도 되면, 코로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과 접촉을 피해야 하는 게 아니라 청결 문제로 다른 사람이 다가 오지 않는 상황이 된 듯합니다.

‘내일이면 더 나아지겠지 …’

그리고 몸이 좋아지니, 영상도 많이 보게 됐습니다. 보고 싶었던 영화도 마음껏 보면서 조금씩 컨디션을 끌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매트릭스》시리즈를 정주행했습니다. 참 이상한 게 대학시절 《매트릭스》를 처음 봤을 때는 재미도 재미지만, 감독의 창의성과 천재성에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나이가 들고 머리도 커서 다시 보니 감탄보다는 어색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학시절 독서 좀 한다는 학생들은 이탈리아의 석학 고(故)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손에 들고 다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2천 만부 넘게 팔린 소설이니,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었죠. 20대 때 처음 읽으면서 작가의 천재성에 그저 혀를 내두르기 바빴습니다.

‘이런 책은 죽어도 못 쓰겠다.’

이후 작가의 번역 작품을 모조리 읽었습니다. 지금도 제 책장에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요. 그러다가 한 10년 지나서 다시 『장미의 이름』을 다시 읽게 됐는데, 전처럼 감탄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넘을 수 없을 거로 생각했던 ‘넘사벽’ 작품을 읽으면서

‘음, 넘지 못할 산은 아닌 듯하다.’

10년이라는 시간이 경탄의 감정을 재미로 바꿔버린 것이죠. 그만큼 제가 성장했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밤이 되니, 어김없이 기침이 시작됐습니다. 가래가 그렁그렁한, 꽤 심한 기침이 계속 나왔습니다. 심할 때는 가슴도 아프고, 머리가 떨리는 느낌까지도 받아야 했습니다. 물을 마시고 마스크를 쓰고 자리에 누워 기침과 한참 씨름을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인후통으로 인해서 깨는 일은 없었습니다.

방밖으로 거의 두문불출(杜門不出)하다 보니,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밖에서 아이들이 돌아와도 최대한 접촉을 피하다 보니, 들고나는 사실만 알뿐 세세한 일상까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죠. 종종 필요한 게 있어서 들어오는 딸들을 보면, 얼른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현실은 정말 ‘그림에 떡’이었습니다.

그나마 저는 저를 대신해서 아이들을 돌봐줄 가족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가족인 경우에는 어떻게 이 기간을 버티는 지…. 특히, 생활고로 어렵게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면, 그 어려움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지경일 듯합니다. 코로나 지원금을 많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려운 처지에 대한 공감이 필요한 듯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치권에서의 조치는 공감을 뺀 정책인 듯합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정치적 목적이 있는 조치로만 보입니다.

순수함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반 국민의 실상을 어느 정도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지원 정책을 추진한다면 어떨지…. 탁상공론(卓上空論)이라는 말이 중국 전국시대 때 유래한 것이라고 하니, 아무리 기간을 짧게 잡아도 2,200년 전에 등장한 말이라고 할 수 있네요. 그런데, 여전히 자주 사용되는 걸 보면 인간은 분명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어떤 부분은 그렇지 못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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