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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노벨문학상(상편)] 노벨문학상의 역사를 통해 살피는 자유와 평등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2.10.04 00:11 의견 0


2022년에도 노벨상 시즌이 어김없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G10에 속하는 우리나라는 올해도 공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일까요? 소수의 사람만이 어떤 인물이 수상의 영광을 얻을지 궁금해 할 뿐, 대부분 사람은 관심 없을 듯합니다. 필자도 노벨문학상과 물리학상 정도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지금 쓰는 이 글도 노벨문학상과 관련한 이야기일 뿐, 후보 리스트에 오른 작가 중 어떤 작가가 수상하게 될지 예측하는 글은 아닙니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노벨문학상에 20년 넘게 관심 가지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노벨문학상이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일단, ‘세계적’이라고 했을 때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로 유럽과 미국의 남성 작가의 이름이 들려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일부 대륙에서 대다수를 차지하고, 그것도 남성 중심으로 수상자가 결정되는 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노벨문학상 수상과 관련한 자료를 찾아보고 분석해 보았습니다. 아래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와 관련한 자료를 살펴보고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글입니다.

◆세계 중심의 변화: 일원화에서 다원화로

세계 3대 문학상을 꼽아보면 ‘노벨문학상’, 우리나라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수상해 유명해진 ‘부커상’, 그리고 ‘프랑스 콩쿠르상’ 등이 있습니다. 모두 서양에서 수여하는 상이니, 당연히 수상자도 유럽과 북미(특히, 미국)에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서양이 세계의 중심이었고(현재도 여전히 중심이긴 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소프트파워, 하드파워(조세프 나이(Joseph Samuel Nye) 소프트파워, 하드파워로 구분했습니다) 할 것 없이 모두 다른 주변 세계를 압도했습니다. 나머지 세계와 국가는 그런 서양을 따라가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했고, 몇몇 국가는 서양을 따라 잡으며 청출어람(靑出於藍)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수백 년이 지나 21세기를 맞이했습니다. 다른 대륙은 몰라도 아시아는 서양 세계에 도전할 정도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했습니다. 냉전 시대가 지나면서 제3세계 국가의 영향력도 커지면서, 세계는 일원화에서 다원화되어가는 상황이고요. 그러다 보니, 세계의 개념도 확실히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세계라고 하면 서양이 거의 전부였지만, 이제는 서양도 세계의 일부분이 됐습니다. 여전히 강한 입김을 작용하긴 하지만, 과거와 비교할 바는 아닙니다.

이런 다원화 추세를 따라서 여러 문학상도 새로운 현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노벨문학상도 이런 추세에 맞춰 다양한 세계와 국가의 수상자가 자주 등장하고 있고요. 세계의 다원화 추세 속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다양해지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역대 수상 현황으로 본 : 노벨문학상의 민낯

1901년 프랑스 시인 쉴리 프리돔(Sully Prudhomme)으로 시작해서 2021년 압둘라자크 구르나(Abdulrazak Gurnah) 수상까지 121년 동안,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118명입니다. 중간, 중간 수상을 거부한 작가도 있고, 받았다가 반납한 작가도 있습니다. 수상자가 아예 없었던 적도 있고요. 2018년에는 심사위원의 성희롱 등의 문제로 수상자를 발표하지 않았다가 2019년에 두 명을 동시에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118명의 수상자의 대륙별 분포는 어떨까요?

모든 게 서양 중심이었던 20세기를 생각해 보면, 서양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수상자가 나왔겠죠? 실제로 118명 85명이 유럽 출신 작가입니다. 70% 넘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국가는 프랑스로 16명의 작가가 나왔습니다. 독일, 영국도 10명이 넘는 작가를 배출했고요. 이어서 북미, 특히 미국에서 많은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12명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서양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과 미국의 수상 작가 수를 합하면 총 97명입니다. 전체 수상자의 약 82%가 서양 작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남은 21명의 출신 지역을 살펴보겠습니다. 인구가 가장 많은 아시아 출신 작가는 인도의 시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를 비롯해서 중국에서 2명(가오싱 젠(高行健); 프랑스 국적이어서 프랑스로 볼 수도 있으나, 아무래도 정서적으로는 중국 출신이라고 하는 편이 적절할 것입니다), 모옌(莫言)), 일본에서 2명(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으로 총 5명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아프리카도 1986년 월레 소잉카(Akinwande Oluwole "Wole" Soyinka)를 시작해서 4명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가장 신생 대륙이라고 일컫는 오세아니아에서는 패트릭 화이트(Patrick White)가 유일한 수상자로 기록돼 있습니다. 나머지 작가 중 3명은 중동에서 배출됐고(이스라엘 작가도 있는데, 국내에는 번역된 작품이 아예 없습니다), 9명 정도가 남미 수상자입니다. 말이 좋아 세계적인 문학상이지 수치로만 따지면 유럽과 미국을 위한 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남녀수상자와 관련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흔히 세상의 반은 여성, 반은 남성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UN에서 2015년에서 조사한 자료를 보면, 남성이 50.4%, 여성이 49.6%였습니다. 이후 여성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니, 지금은 차이가 더 작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수는 어떨까요? 1909년 스웨덴의 셀마 라겔뢰프(Selma Ottilia Lovisa Lagelöf)를 시작으로 2020년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Louise Elisabeth Glück)까지 총 16명의 여성 작가만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비율로 보면, 약 13.5% 수준입니다. 그나마 2000년대 이후 6명의 여성 작가가 수상해서 비율이 조금 올라갔습니다.

이런 현황을 고려할 때, 노벨문학상을 세계적인 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굳이 세계라는 표현을 붙인다면, 서양 세계의 남성을 위한 상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도 노벨문학상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이며, 작가라면 한 번쯤 꿈꿔보는 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이 아니라면, 받을 확률이 떨어지고 여성이라면, 그 확률은 훨씬 더 떨어집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최근에는 서양 남성 작가들을 위한 상에서 조금씩 수상자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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