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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1_Start)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새로운 장소에서!

※ Magazine S | Vol.01_START | 시작하는 글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새로운 장소에서!"

윤준식 편집장 승인 2024.02.26 23:24 | 최종 수정 2024.02.26 23:25 의견 0

새 출발하고 싶은 충동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모든 일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싶을 때도 있고, 원하는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모든 걸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새 출발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새 출발을 원하는 건 2가지 이유일 거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 실수하고 실패한다. 또 인간은 성찰하는 존재다. 그러다 보니 더 나은 해법이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거나, 더 나은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

새 출발은 꼭 시간대에만 구애받지 않는다. 특정 사건일 때도 있다. 대개 인생에 있어 선택의 기로가 되는 특별한 사건의 직전으로 돌아가 더 좋은 해결책으로 부딪히거나 문제를 회피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새 출발이 장소와 관련될 때도 있다.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승부를 걸어보고 싶기도 하고, 뭔가에서 벗어나거나 휴양하고 싶어 은신할 곳을 찾기도 한다.

서울역 근처 (출처: 픽사베이)

◆덕업일치를 위한 제3의 장소가 절실했다

요즘의 나는 새로운 곳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물론 어떤 장소를 원한 건 3년이 넘었다. 이제야 제대로 밝히는 것이지만, 나만을 위한 ‘제3의 장소’를 확보해 뭔가를 작당한다는 구실로 적당히 은거해 왔다. 이른바 ‘창신공작소’라 홀로 이름 붙여놓고 협업하는 대상자나 동지를 불러 모아 동맹을 공고히 하는 장소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 장소가 갖는 좋은 점이 여럿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얻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찜찜한 점도 많았던 거다.

‘창신공작소’는 명칭 속에 몇 가지 중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장소다. 문돌이인 나의 취향인데, 나름의 언어유희로 의미를 가득 채웠다. 우선 ‘工作’이라는 말이 가진 의미 그대로 창의적인 일을 하기 위한 장소다. 어떤 창의적인 일이냐? ‘덕질’이다. ‘만물의 덕후’인 ‘올덕’을 지향하는 나로서는 집과 일터라는 공간만으로는 덕행이 불가능하다. 덕업일치(德業一致)를 이루는 그날까지는 제3의 장소가 필요한 거다.

두 번째로 ‘公斫’을 위해 패거리를 규합하는 장소다. 훌륭한 덕질은 혼자서 이룰 수 없다. 덕질의 넓이와 깊이를 넓히기 위해선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누군가를 포섭하고, 세뇌하여 내 편으로 만들고 그가 가진 지식과 인맥을 내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 가장 훌륭한 방법은 합숙으로 위장된 완전한 사육이다. 그러기 위해선 ‘안가(안전가옥; 安佺假屋)’이 필요한 거다.

세 번째는 나의 영향력과 통치력이 존재하는 영지인 ‘公爵’령으로서의 공간이다. 공작이라면 제후의 반열에 미칠 수 있는 레벨이라고나 할까? 네 번째는 조류인 ‘孔雀’과 관련이 있다. 부귀영화를 표현하는 봉황과 닮은 새라 언젠가 성공할 것을 꿈꾸는 의미를 담았다고나 할까?

◆이번엔 서울이 문제다!

여튼 이런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 이름 붙였지만, 이 공간이 내게 제공해주지 못하는 건 바로 이동에 대한 어려움이다. 어쩌다 보니 창신공작소를 확보한 후부터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일이 빈번해졌다. 이건 내게 운명처럼 함께하는 역마살 때문이기도 한데, 창신공작소의 장점은 서울역, 용산역, 청량리역, 강남고속터미널, 센트럴시티터미널, 남부터미널, 동서울터미널을 오가는 데는 나쁘지 않은 위치에 있다는 점뿐이다.

모든 길은 서울에서 출발하고 서울로 이어진다. 교통의 편리성만 놓고 보면 서울이 제일 좋지만, 정말 그럴까? 모든 게 복잡하게 엉켜있는 서울이 지닌 불편한 현실을 극복하기가 어렵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향하는 데 필요한 시간 중 서울을 빠져나가는 시간이 상당하다.

KTX가 빠르고 편리하다고 하지만, KTX를 타기 위해 서울역, 용산역, 청량리역까지 가고, 역사 안을 헤집고 다녀 열차에 탑승하기까지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서울권을 빠져나가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서울-용산-영등포-수원 정도를 빠져나가는데 30분은 소요된다. 이후에야 속도가 붙는 거다.

고속버스는 어떻고? 강남고속터미널이나 센트럴시티터미널은 무지 넓어서 대중교통에서 고속버스까지 걷는 거리와 시간이 상당하다. 경부고속도로로 이어지는 반포IC와 양재IC로 진입해 신속하게 버스전용차선을 타더라도 수원, 용인 아래로 빠져나오는데 40분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강변터미널은 고속도로 진입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만 언급하고 넘어간다.

(출처: 픽사베이)

◆제3의 장소 늘리기? 제4, 제5의 장소를 만들면 될까?

결국 서울을 벗어나기 위해 소요하는 시간이 상당하다. 역에 가고 탑승하고, 수도권을 빠져나오는 데는 2시간을 소모해야 한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처럼 교통의 편리성에는 그만큼의 불편성이 존재하고, 교통의 신속성 이면에는 신속한 교통접근성 속에 내재한 느림이라는 역설이 있다.

따라서 지금처럼 열심히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뭔가를 도모하려면, 공작소가 서울에 있으면 안 된다. 제3의 장소였던 창신공작소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생겨버린 것이다. 제3의장소는 복수형이어야 한다. 제4, 제5의 장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영남권과 호남권에 제4, 제5의 장소를 만들기 위한 여정을 추가했다. 그런 이유로 특정 도시를 자주 드나들었던 거다. (관련된 사연은 언젠가 차차 이야기하게 될 날이 올 거다.)

그러던 중 한 장소에서 인연이 깊어진 동료로부터 구체적인 조언을 듣게 되었다. 그 결과 내가 겨냥하게 된 도시가 있으니, 그곳은 조치원이었다. 왜 조치원이냐? 이곳이 교통의 중심지라서다.

◆조치원은 옛날부터 교통의 중심지

고인물 인증인지 모르나 나는 학창시절 “조치원은 교통의 중심지”라고 배웠다. 요즘 세대들은 이 말에 “왜?”라고 반문할 것이다. 고속도로가 관통하는 것도 아니고 KTX가 있는 것도 아니다.(물론 택시로 10분 거리에 오송역이 있지만, 오송역은 행정구역상 충청북도 청주시다.)

‘조치원(鳥致院)’ 이름의 유래부터 파보자. 이곳의 이름이 조치원인 이유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원(院)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院)은 조선시대 공무를 수행하던 관리와 여행자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설치했던 숙소를 뜻하지만, 점차 일반여행자나 상인을 위한 주막촌으로 발달했다.

조선시대의 조치원은 청주와 공주를 연결하는 길목에 있었다. 청주 북쪽을 지나는 미호천이 조치원을 지나며 금강과 합류해 공주를 지나 부여, 논산, 서천을 거쳐 서해로 흘러간다. 과거엔 내륙수로가 KTX와 같은 역할을 했음을 고려한다면, 임진왜란 이후 충청감영이 있던 공주를 향하던 이곳이야말로 전통적인 교통 중심지임을 부정할 수 없다. 육로로는 공주를 지나야 전주를 비롯, 호남지방으로 진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부선, 충북선 철도와 함께 발전한 근대도시

그뿐 아니다. 경부선이 부설되던 당시, 철로가 공주가 아닌 대전을 지나가게 되면서 대전 북쪽에 있던 조치원도 경부선과 함께 성장한 도시였다. 대전은 목포까지 이어지는 호남선이 연결되었고, 여기에 조치원은 경부선과 충북선의 분기점으로 서울에서 내려온 철로가 청주-충주로 이어지게 하다 보니 교통 중심지로서의 위상이 크지 않을 수 없었다.

해방 이후에는 철도교통 중심지로서 더 큰 역할을 했다. 충북선이 제천을 지나 영주역까지 연장되었는데, 제천에서는 태백선이, 영주에서는 중앙선, 영동선, 경북선이 연결된다. 조치원을 중심으로 보면 철도를 통해 서울과 삼남지방, 중부내륙 어디든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조치원의 협소한 지형, 농업뿐인 조치원의 산업 여건이 거점도시로 성장하지 못하게 했으며, 인접한 오송역이 간이역 수준에서 경부선, 호남선 KTX역 급성장하며 오래된 원도심으로 머무르게 되어 버린 것이다.

◆조치원은 여전히 교통의 요지

여튼 제3의 장소를 늘리기 위한 나의 관심은 조치원으로 향했고, 슬슬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뜻밖의 벽에 부딪혔다. 가족을 비롯해 나의 동지들에게 조치원행에 대한 결심을 말했더니 “좋은 곳이 많은데, 하필 조치원이냐?”는 반문이 돌아오는 것이다.

이유는 KTX 때문이다. 2004년 4월 1일 KTX 개통 이후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강산이 2번 변한 지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KTX 노선과 정차역을 중심으로 도시와 도시의 거리를 가늠한다. 측량한 거리의 멀고 가까움이 아니라 도달시간의 길고 짧음으로 도시를 평가한다는 거다.

그런데 내게 있어 조치원이 매력적인 이유는 조치원의 위치와 지형 때문이다. 조치원 읍내가 협소해서 조치원역과 조치원터미널을 도보 10분으로 오갈 수 있다. 역사와 터미널의 구조도 단순해서 역이나 터미널에 도착하면 1~2분 내에 열차와 버스에 탑승할 수 있다.

(출처: 국가철도공단 홈페이지)


◆조치원에서 KTX, 고속버스, 비행기로 전국이 연결된다

KTX를 이용하고 싶다면, 시내버스를 통해 오송역으로 가면 된다. 급하면 택시를 이용하면 5분 만에 도착한다. 오송역은 경부선, 호남선 모두를 이용할 수 있다. KTX 이용을 위해 일반열차로 대전역이나 서대전역에 가서 환승하는 방법도 있다.

고속버스 이용도 나쁘지 않다. 서울 올라가는 버스가 꽤 많고, 주말과 공휴일에는 신탄진에서부터 전용차로에 올라타기 때문에, 밀려도 2시간 이내에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조치원역에서 출발하는 급행버스로 30분 정도 이동하면 청주고속버스터미널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움직일 수 있다.

또 충북선 무궁화호를 타고 30분만 가면 청주국제공항을 이용해 제주도로 넘어가는 것도 가능하다. 이 정도면 사통팔달 아닌가?

◆바보야! 서울 기준이 틀릴 때도 있단 말이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반수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치원은 좋은 곳이라며 얼른 조치원으로 가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설명이 아닌 설득을 필요로 하는 바보들이 있다. 여전히 서울 지하철을 이용시 역과 역 사이의 이동 시간을 계산하는 걸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통 역 하나 지날 때를 2분으로 잡아 계산하지만, 그건 지하철에 탑승해서 이동할 때 걸리는 시간일 뿐이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걷고, 역사 안에서 오르락내리락 이동하는 시간도 상당하다. 앞서 설명했지만 거대한 역사나 터미널 안에서 이동하는 거리와 시간도 만만치 않다.

서울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공항조차 김포공항 하나뿐인데, 공항 가는 길도, 공항 안에서의 이동, 수하물 접수와 검색대 통과 등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인저리 타임 생각해 예약시간보다 한참을 더 잡아야 한다.

설명의 회수가 거듭될수록, 동어반복의 피로감을 느꼈다. 그래서 동어반복을 그만하고 싶어서 나의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이유와 까닭을 알리는 내용을 만드는 게 효율적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만든다, 내 생각이 들어간 잡지!!! 백문이 불여일견! 보아라, 잡지!!! 보아라, 매거진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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