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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고현학] 기차의 고현학

방랑식객 진지한 승인 2024.02.26 23:47 의견 0

고현학(考現學)이란 '현대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유행의 변천을 조직적,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현대의 참된 모습을 규명하려는 학문'을 의미합니다. 일상의 고현학은 일상생활 속에 벌어지는 사안 하나를 주제로, 언제 어디서 시작되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펼쳐보는 이색코너입니다. 인터넷 검색 정보를 중심으로 정리해 넓고 얇은 지식의 층위를 높여가 보자구요!

(출처: 픽사베이)


날씨가 점점 포근해지고 있고, 봄방학 시즌도 왔고, 마침 다음 주 금요일이 삼일절 휴일이라 짧은 연휴가 생기다 보니 주변에 가족끼리 국내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행하면 떠올리는 교통수단 중에 가장 낭만이 있는 건 뭐니뭐니 해도 기차가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차의 고현학입니다. 기차 이야기는 워낙 방대하여 틈틈이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1. 세계 최초의 기차 (철도의 역사)

세계 최초의 철도는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825년 9월 27일, 영국의 스톤턴에서 달링턴까지 40km 길이로 최초의 상업용 철도가 운행되었습니다. 이때 운행된 기관차가 바로 ‘철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스티븐슨이 만든 화물용 증기기관차 ‘로코모션호’였습니다.

최초의 공공용 철도는 석탄 운송용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최초의 여객 운송용 철도는 1830년 9월 15일 리버플과 맨체스터간의 50km 구간으로, 처음으로 승객 36명을 태운 기차가 레일 위를 달렸고 이때부터 일반 여객과 화물을 본격적으로 취급하게 되었습니다.

석탄을 원료로 사용하는 증기기관차를 시작으로 현재에도 이용되는 디젤기관차, 전기기관차 등을 거쳐 철도는 발전해왔습니다.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는 1964년 일본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후 1981년 프랑스, 1992년 독일, 1992년 스페인 등이 고속철도를 개통했습니다. 우리나라는 2004년 세계에서 5번째로 고속철도를 운행한 국가입니다.

2. 우리나라 기차의 시작은 경인선

먼저 우리나라 기차의 역사를 살펴보면, 1899년 9월 18일 경인선 열차운행이 을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1905년 경부선, 1906년 경의선, 1914년 호남선·경원선, 1931년 장항선, 1939년 경춘선, 1942년 중앙선 순서로 개통되었는데요.

경인선의 시작은 경인선 전체 노선이 아니라 노량진과 제물포(인천의 옛 이름)를 잇는 약 33km만 부분 개통되어 운행을 시작했는데, 그 후 1900년 6월 홍수로 공사가 지연되었던 한강철교가 준공되었고 7월에는 남대문역(현 서울역)까지 42km 전 구간이 완성되었습니다. 현대에 접어든 1965년 복선화되었고, 1974년에 전철화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편 연기와 불을 내뿜는 수레라는 뜻의 ‘화륜거’라 불린 기차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으나 반감도 많았습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일본을 향한 적개심이 컸기에 조상의 소중한 유물인 땅과 산을 마음대로 깎아내려 조상을 욕보였다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기차에서 불똥이 튀어 철도 인근 초가를 태우는 일도 번번했고, 상등석에 타려면 쌀 반 가마니 값을 치러야 할 만큼 요금은 비쌌습니다.

경인선은 외세에 시달린 우리나라 역사의 씁쓸한 단면이기도 한데요, 제물포항이 열리자 서울과 항구를 연결하는 철도 부설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자금과 기술 부족으로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이틈을 노려 미국 사업가 제임스 모스가 적극적인 영업을 펼친 끝에 철도 부설권을 얻어냈습니다.

하지만 대륙 진출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청일전쟁을 준비하던 일본은 서울과 인천을 잇는 철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집요하게 방해 공작을 펼쳤습니다. 결국 철도 부설권은 일본이 세운 경인철도합자회사로 넘어갔고 경인선을 장악한 일본 정부와 자본가들은 조선에서 우세하고 강력한 지위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며 조선 침탈을 가속화하기 위해 철도를 부설했습니다.

3. 기차는 왜 일정한 리듬으로 덜컹거리는 소리를 낼까?

기차 소리하면 당연히 덜컹덜컹거리는 소리일 텐데요, 특이한 점은 이 소리가 항상 규칙적으로 들린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바로 레일과 레일 사이의 ‘유간’이라는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간’은 작은 틈으로 기온에 따라 레일이 늘어나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인데요, 이러한 틈이 없게 되면 열에 의해 레일이 늘어날 경우 레일이 휘어지거나 위로 튀어나오게 되어 탈선의 위험이 있는 것이죠. 레일과 레일 사이에 ‘유간’이라는 틈을 만들어 기온에 따라 레일이 늘어나도 기차가 안전하게 레일 위를 달릴 수 있게 됩니다.

4. 기차 바퀴로 타이어를 안 쓰는 이유는?

일반적인 자동차의 타이어와는 달리 기차 바퀴는 철로의 레일에 큰 면적으로 접촉하여 힘을 분산시키므로 마찰이 상대적으로 적게 발생합니다. 에너지 손실이 적어져서 더 효율적으로 운행될 수 있다고 합니다.

기차의 바퀴는 굴곡이 있는 철제 원반 2개를 겹쳐 철로 위에 놓는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로 설계된 이유는 철로와 바퀴 사이에 발생하는 마찰로 인한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기차의 무게가 분산되어 지지력이 높기 때문에 타이어 없이도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의외로 기차 바퀴는 내구성이 높습니다. 철로와 바퀴의 접촉면이 크고 견고하게 만들어져서 길이를 이동하는 동안 발생하는 과도한 마찰과 부하를 버틸 수 있습니다. 또한, 기차의 무게가 분산되어 바퀴에 가해지는 하중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내구성이 더욱 향상됩니다. 기차의 바퀴는 철도를 오랜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운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5. 철로 아래에는 왜 자갈이 깔려있을까

기차 레일은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운행에 지장이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침목이라고, 레일 아래 나무를 덧대는데 철로 아래 까는 자갈은 침목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기차는 중량이 많이 나가는 물체다보니, 기차가 지나다니면 선로가 점점 땅속으로 박히며 훼손될 수 있는데 자갈이 선로에 가해지는 충격과 중량을 고르게 분산시켜 선로의 안전을 지킬 수 있습니다.

또 기차가 지나갈 때 땅이 심하게 흔들려 주변 지역에 피해를 줄 수도 있는데 그걸 감소시키기도 하고요. 승객들에게는 강한 진동을 분산시켜 조금이라도 승차감을 안정되게 해줍니다. 그리고 자갈은 일반적인 지면보다 배수 효과가 좋아 철로의 침수 피해를 막아주며, 동시에 주변보다 지대가 높아져 물로 인한 피해 방지가 가능합니다. 기차가 빠르게 달리기 때문에 흙이나 모래를 쓰면 주변에 날리게 되는데, 자갈은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돕고, 미세한 잔여물들이 멀리 퍼지지 않도록 막아주기도 합니다.

6. 기차는 왜 안전벨트가 없을까

기차보다 더 빠른 비행기에도 안전벨트가 있는데, 기차에는 안전벨트가 없습니다. 2007년 영국 철도안전표준위원회가 기차 안전벨트 설치의 안전성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는데요, 안전벨트는 오히려 사고 발생 시 승객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안전벨트를 착용한 경우 가벼운 부상의 위험은 줄였지만, 대형 사고의 발생 시에는 차량 파손에 의한 피해가 더 크기 때문에 승객들이 신속히 대피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어 사망자가 최대 6배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대신 기차의 좌석은 사고 발생 시 승객을 보호하기 위해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부드러운 소재를 사용하는데, 안전벨트를 설치하게 되면 좌석의 변형을 방지하기 위해 강성이 높은 소재를 써야 합니다. 이럴 경우, 충돌 시 충격을 흡수하지 못해 승객의 부상이 더 커지게 된다고 하네요. 따라서 기차에는 안전벨트가 없는 것이 오히려 더 안전한 것입니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기차에 안전벨트를 설치한 나라가 없는 이유랍니다.

7. 속도 단축이 기술이다

100여 년 전 시속 10km로 출발한 역차는 이제 300km를 넘어서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으며, 전국토를 반나절 생활권으로 바꿔 국민생활에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33.2km를 개통할 당시는 시속 10km의 속도로 3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서울까지 확장 개통된 1900년 7월 8일에는 시속 22km의 속도로 1시간 45분이 걸렸습니다. 1년 만에 1시간 이상 단축시킨 것입니다. 경부선은 개통당시 초량~영등포간 완행열차가 30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1905년 5월 1일 급행열차가 부산~서울력까지 시속 32km로 14시간에 주파되었으며 이어 1906년 11시간 1936년 6시간 45분, 1969년 4시간 45분, 1985년 4시간 10분, KTX가 운행된 2004년에는 2시간 40분, 현재는 서울~부산까지(대전, 동대구 정차) 2시간 15분이 소요됩니다.

8. 제주도에도 기차가 다녔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에만 철도가 없어 기차가 다니지 않는데요, 사실 90년 전 제주도에는 잠깐이지만 기차가 다녔습니다.

1929년부터 동쪽 김녕에서 제주를 통과하여 서쪽 협재까지 57km 구간을 달리던 제주도 순환궤도 철도는, 불과 2년 뒤인 1931년에 운행을 중단했는데요, 당시 트럭의 일본식 발음인 ‘도록고’라 불렸습니다.

제주도 ‘도록고’는 단선 철도로, 사람 힘으로 밀어서 화물을 운반했습니다. 평지나 오르막에서는 사람이 도록고를 밀고, 내리막에선 제법 빠른 속도로 내달릴 수 있었습니다. 당초 이 철길은 제주 해안을 따라 연결할 계획이었지만 무산되었는데요, 인명 사고가 자주 발생하면서 1931년 9월, 2년 만에 운행이 중단됐습니다. 나중에 이 철길을 걷어내며 이 자리에 도로가 만들어졌고, 현재 제주 일주도로의 기점이 되었습니다.

9. 경춘선에만 운행하는 기차가 있다는데?

가수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라는 노래가 유명한데요. 실제로 경춘선 관련된 사연이 담긴 낭만적인 노래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김현철씨가 춘천가는 기차를 탄 건 맞지만, 춘천까지 간 건 아니라고 합니다. 대입 재수를 하던 시절 여자 친구와 춘천행을 탔는데, 완행열차를 타고 서서 가다 지쳐서 강촌역에서 내렸다고 한다.

경춘선은 80km 정도로 당일치기 여행에 좋은 노선이라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청춘남녀들에게 각광받는 노선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열차 이름도 <ITX-청춘>입니다. <ITX-청춘>에는 한 가지 의미가 더 담겨있는데요, 청량리역에서 춘천역을 오가는 열차라 한글자씩 따서 ‘청+춘’이라 했다고도 해요.

10. 강원도에는 언제부터 기차가 다녔을까?

앞서 1914년 경원선, 1939년 경춘선, 1942년 중앙선이 개통되었다고 설명했는데요.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를 보면 생각보다 강원도를 지나는 노선이 굉장히 빨리 생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철원, 춘천, 원주가 우리나라 내륙의 물류를 담당하는 중부거점 도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는 서울을 뜻하는 ‘경(京)’자와 열차가 도달하는 도시이름을 한글자씩 딴 철도노선이 많았습니다. 경원선 열차노선은 서울-철원-원산을 연결하는 철도입니다. 경춘선은 서울과 춘천을 연결하는 철도죠. 그런데 중앙선은 서울 청량리–강원 원주-경북 경주 모량으로 연결되는 간선철도라 이름이 중앙선이 되었습니다.

11. 영동선과 태백선은?

이밖에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강원도 강릉시를 연결하는 영동선이 1940년에 개통되었고,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강원도 태백시를 연결하는 태백선은 1949년에 개통되었는데, 태백선은 일제 강점기가 아닌 해방이후 처음 개통된 노선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초창기 철도의 목적이 여객이나 관광보다는 물자수송에 집중하긴 했지만, 강원도를 지나는 철도는 목재, 석탄, 시멘트 등 자원수송과 관련이 많았습니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이 벌인 전쟁준비와 수탈의 목적이 담긴 슬픈 역사를 엿볼 수 있지만, 이후의 시기는 대한민국 산업화에 기여한 철도라는 점에서 의미를 되새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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