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농협 조합원 자격, 이런 사례도 있다

주동식 객원편집위원 승인 2015.03.01 18:49 | 최종 수정 2019.07.04 02:52 의견 0

30년 조합원 해명도 안 듣고 ‘강제 탈퇴’

 

광주원예농협(이하 광주원협)은 1958년 설립 이후 꾸준히 규모가 확대되어 현재 조합원 3,200여 명에 직원 153명인, 원예조합으로는 전국 5위 이내에 들어가는 대규모 조합이다. 특수조합이기 때문에 일반조합처럼 조합원이 한 지역에 집중돼 있는 것이 아니고, 광주 담양 장성 화순 기타 등 넓은 지역에 분산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합원들이 재배하는 작물은 감, 배, 복숭아, 사과, 포도 등 과수류가 재배면적 기준으로 1710ha로 가장 많고 토마토, 딸기, 고추 등 과채류가 876ha, 고추, 호박, 무 등이 642ha, 장미 등 화훼류가 118ha 규모이다. 자산규모는 4천억원, 사업규모도 여·수신 포함해 9천억원에 이르며 농산물 공판장을 직접 운영해 상품 가격 등 시장이나 일반 회원조합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다. 비닐하우스용 필름 제조업체도 운영한다.김광채 광주원협 전 이사는 1981년 9월에 조합에 가입했다. 김 전 이사가 광주원협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먼저 시도했던 것이 유통질서의 정비였다. 전남 장성 지역에서 국내 최초로 농산물 품질보증서 제도를 도입했던 것이다.

 

조합과 연대하여 딸기 등 품목의 생산자들이 자체적으로 품질을 인증하고, 과일 상자 등에 ‘문제가 생길 경우 반품 및 현금보상’을 약속했던 것이다. 문제가 생길 경우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도 기입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농가 가구 당 10만원씩 예치금을 받아 보상 및 품질 보증에 필요한 기금을 적립했다. 뿐만 아니라 농산물을 실어나르는 트럭에 장성 딸기 등의 홍보물을 부착하는 작업도 이루어졌다.

 

성과는 엄청났다. 장성 지역 과일과 야채 등 농산물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었고 소비자들의 반응도 무척 호의적이었다. 당시 김 전 이사가 다른 조합원들을 만나면 “오, 장성 포도 아저씨네”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80년대까지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감과 사과 등 과일을 담는 궤짝이 사라진 것도 김 전 이사의 노력의 결과라고 한다. 김 전 이사는 나무 궤짝 대신 골판지 상자에 과일을 담는 시도에 성공, 과일 농가와 도시 청과물 도매시장의 풍경을 한순간에 바꿔놓았다.‘품질보증’으로 유명한 장성 포도 아저씨나무 궤짝에 과일을 담을 경우 트럭에 싣고 서울 등 대도시로 올라간 궤짝을 다시 농가로 실어와 일일이 새로 상자를 짜야 했다. 하지만 골판지 상자에 과일을 담을 경우 이럴 필요가 없었다. 포장과 운송의 인스턴트화가 이뤄진 것이다. 김 전 이사는 현재 또다른 과일 포장 관련 기술특허도 출원해놓은 상태이다.

 

김 전 이사가 광주원협에서 10여 년에 걸쳐 조합 대의원과 이사, 선임이사 등의 직책을 역임할 수 있었던 것도 유통 선진화에 관련된 이런 공로를 조합원들이 인정한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우수농산물생산유통 공로상, 조합발전 공로 감사패, 우수조합원 표창 등 상훈 경력이 이를 잘 보여준다. 김 전 이사는 감사 선거에도 출마,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됐다. 김 전 이사는 조합의 사업이나 운영방침 등을 잘 알고 있어서 감사 업무에 적합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감사 업무는 김 전 이사에게 어려움을 안겨주는 원인이 됐다.

 

감사로서 조합 일에 발언하는 일이 더 많아지고, 조합장의 규정 위반 등을 지적하고 제동을 거는 일도 많아졌다. 규정 해석을 놓고 중앙회에 질의, “감사의 의견이 맞다”는 유권해석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자연히 조합장으로서는 ‘걸림돌’로 인식될만한 일이 많았다는 설명이다. 김 전 이사는 감사 재선에서 낙선하고, 1년을 쉰 뒤 2014년 1월 이사 선거에 나서 당선됐다. 장성에서 1명 선임하게 되어 있는 이사 자리에 단일 후보로 등록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합은 갑자기 긴급이사회를 열어 김 전 이사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고 조합에서 강제로 탈퇴시켰다. 조합원 자격 박탈의 명분은 ‘농지면적 부족’이었다. 경지 면적이 1513평을 넘어야 하는데 1천평 뿐이라는 것이었다. 조합은 심지어 긴급이사회가 열린다는 사실조차도 김 전 이사에게 알려주지 않았고, 당연히 소명의 기회도 없었다.

 

엄격하게 중앙회와 광주원협의 규정을 따지더라도 이렇게 농지면적 부족을 이유로 조합원의 자격을 박탈할 경우에는 해당 조합원에게 영농 의사를 확인하고 소명하는 기회를 주도록 되어 있었다. 실제로 당시 조합임원 중에서도 김 전 이사의 강제 탈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김 전 이사의 강제 탈퇴는 결국 통과됐다. 김 전 이사가 부족한 농지를 보충하는 임대차계약서를 제출해도 “믿을 수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김 전 이사의 강제 탈퇴 이후 광주원협은 다른 조합원 자격에 대해서도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이른바 짝퉁 조합원을 정리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 짝퉁 조합원들에 대해서는 일일이 소명의 기회를 주는 등 일반적인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조합 탈퇴도 총회를 거쳐서 최종 확정했다. 김 전 이사와 이들 짝퉁 조합원의 탈퇴 절차가 이렇게 천양지차로 달라진 이유에 대해 “김 전 이사 강제탈퇴 안건을 총회에 회부했다면 통과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광주원협 창설 이후 강제탈퇴자는 김 전 이사가 유일하다는 기록도 세웠다.사실 농촌에서 농민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영농을 중단하는 경우는 비교적 흔한 편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축산농가에 AI가 발생하거나 또는 도로를 내게 되어서 농지를 수용할 경우에도 부득이하게 영농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합의 관리지침에서도 이 문제에 관해 실태조사를 하고 조합원의 영농 의사를 확인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규정만 따지면 남을 조합원이 몇이나 되나조합원 경력 30년이 넘고 그 중에서도 10여년 이상은 조합의 임원을 맡아온 김 전 이사를 이렇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강제 탈퇴시킨 배경에 대해 “결국 현 조합장의 위치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3.11 전국동시조합장 선거에서 조합원의 자격 즉 짝퉁 조합원의 존재가 이슈가 되고 있지만 이렇게 억울하게 조합원의 지위를 빼앗긴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김 전 이사는 광주원협의 이런 조치에 항의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에서 패소하고 고법에 항소 중이다. 김 전 이사는 “표면적인 규정만 따진 판결”이라며 “그렇게 형식성만 엄격하게 적용하면 지금 농협 조합원 가운데 남아있을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고 말한다. 재판 과정에서 “이사직은 포기하고 일반 조합원으로 다시 가입하라”는 회유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김 전 이사는 그런 제안을 거부했다. 자신의 개인적인 사정보다 조합 자체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이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김광채 전 이사는 실제 성과에서 이미 충분히 보여준 것처럼 사업 아이디어도 많고, 농협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할 말도 많다. 하지만 그의 이런 비전이 빛을 발할 수 있을지는 불명확하다. 농협과 조합 현실의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사례는 우리나라 농협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과연 문제가 정상화되고 있는지 판가름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일 수도 있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