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발탄』으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리얼리즘의 거장이 이번에는 섬마을 아이들의 서울 나들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전라북도 군산 앞바다 선유도, 육지에서 60킬로미터 떨어진 낙도의 아이들이 생애 처음 서울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1968년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근대화로부터 단절된 섬과 급속도로 발전하는 서울의 대비를 통해 당대 한국 사회의 명암을 고스란히 담아낸 시대의 기록이다.


1. 영화 속으로: 선유도에서 서울까지

#문명과 단절된 섬

영화는 선유도 국민학교의 풍경으로 시작된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단 37명의 전교생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다. 교사는 김 선생(구봉서) 단 한 명. 그는 서울에 아내(문희)와 아이를 두고 3년째 이 섬에서 홀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선유도의 현실은 충격적이다. 일주일에 한 번 배가 들어오는 것이 유일한 교통편이고, 섬 주민의 절반은 평생 육지를 밟아본 적이 없다. 아이들은 자동차는 물론 자전거조차 본 적이 없어, 선생님은 칠판에 자전거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해야 했다.

#수학여행, 불가능한 꿈

김 선생은 아이들의 견문을 넓이기 위해 서울 수학여행을 보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반대는 거세다. 비용 부담도 문제지만, 아이들이 떠나면 농번기 노동력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실의에 빠진 김 선생의 조력자로 나선 건 마을 어르신들이다. 토끼와 닭, 돼지를 기르고 조개를 잡아 팔며 여행 경비를 보탠다. 여기에 교육청의 지원도 더해져, 10월 1일 국군의 날을 이용해 아이들은 서울로 향할 수 있게 된다.

#서울, 그 낯선 세계

군산역에서 기차를 타는 순간부터 서울역에 도착해 서울구경을 하는 내내 아이들의 문화 충격이 시작된다. 처음 타보는 기차,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과 자동차, 하늘을 찌를 듯한 12층 빌딩, 앞뒤가 구별되지 않는 전차.

여관에 도착한 아이들이 전기 스위치를 껐다 켰다 반복하는 장면은 그 자체가 리얼리즘이며, 시대의 행태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기록한 고현학이다. 만화방에서 단돈 2원을 내고 흑백 텔레비전을 보고, 유료 화장실을 신기해하며, 남대문에 문턱이 있는지 없는지를 두고 진지하게 논쟁하는 아이들. 유현목 감독은 어린이들의 순수한 눈을 빌어 1968년 서울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두 학교의 만남

김 선생의 사범학교 동창인 윤 선생(황해)의 배려로 선유도 아이들은 종로국민학교 학생들과 함께하게 된다. 서울 아이들은 비 맞고 있는 선유도 아이들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자신들의 집에서 하룻밤 재워주며, 마지막에는 리어카를 선물로 주며 자매결연까지 맺는다.

이런 대목에서 영화는 다소 이상주의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서울 학부모들이 낙도 아이들의 숙박을 이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계획에도 없던 자매결연식이 이토록 성대하게 열릴 수 있었을까? 선유도 아이들이 수혜자처럼 그려지는 것도 아쉬운 구석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시대의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다.

영화 <수학여행>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2. 1968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군사적 긴장과 경제 개발의 이중주

『수학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적 색채를 배제하려 애쓴다. 하지만 영화 곳곳에 1968년의 긴장감을 스며들게 했다.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떠난 10월 1일은 건군 20주년 국군의 날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1월 21일 김신조 사건으로 청와대 뒷산이 뚫렸고, 남북한은 군사적 긴장에 휩싸여 있었다.

동시에 경제 성장의 열기도 뜨거웠다. 이 영화는 실제 9월 9일부터 10월 20일까지 열린 구로동 제1회 무역박람회 장면을 현장에서 기록하고 있다. 5만 2천여 평의 대지에 3만여 개의 오색 풍선과 300여 마리의 비둘기, 주판알로 쌓아올린 55미터 높이의 상징탑. 수출 기업들의 로고 등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경제 개발에 대한 국민의 열망도 함께 볼 수 있다.

#사라져가는 것들

또 의도하지 않았지만, 곧 사라질 풍경들도 기록하고 있다.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탄 전차는 영화 개봉 직후인 1969년 11월 30일 마지막 운행을 마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898년부터 70년간 서울 시민의 발 노릇을 했던 전차지만, 급증하는 자동차로 인해 시내 도로교통의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영화 속 전차 운전사가 곧 사라질 전차를 아쉬워하는 대목은 그 애잔함을 담았다.

보행 위반자 계도소도 당대의 권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김 선생은 버스에서 떨어진 학생 신발을 주우려다 버스를 놓치고, 급한 마음에 무단횡단을 하다 도로 한복판 2평 남짓한 계도소에 구류된다. 공개적 망신 주기 방식은 1970년대까지 이어졌는데, 인권 침해에 아랑곳없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영화 <수학여행>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3. 유현목의 시선, 리얼리즘과 계몽 사이

#사회성 짙은 작가의 어쩔 수 없는 선택

유현목이 왜 이런 밝고 희망적인 영화를 만들었을까? 감독은 『오발탄』으로 반공법 위반 혐의를 받고, 『춘몽』으로 음화제조반포죄로 기소당하기도 했다. 월남한 실향민이자 개신교도로서 개인의 불안과 고뇌,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분노를 영화로 표현해왔던 그였기에, 타협점을 찾으면서도 리얼리즘의 시선으로 선유도와 서울의 풍광을 담는 작업으로 시도한 것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섬마을 아이들의 눈을 통해 서울의 발전상을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표현해 계몽영화로서의 성격이 뚜렷하다. 또 1968년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안정적인 정치 기반을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경제 정책을 펼치던 시기였다. 정부는 ‘낙도 어린이 서울 구경’ 같은 행사를 통해 발전상을 보여주고 싶어 했고, 유현목은 그 욕구를 영화로 보여줬다.

하지만 유현목은 그 안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정치적 색채를 극도로 절제하면서도, 경직된 사회 분위기는 스며들게 했다. 신발을 주우려다 즉결 처분을 받는 교사의 모습에서, 텔레비전 속 김 선생의 말에 아이들이 한밤중에 창경원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장면에서, 관객은 하하 웃어넘기려다 억압적 사회질서의 단면에 쓴 웃음을 짓고 만다.

#비전문 어린이 배우들이 만든 생동감

구봉서, 문희, 황해라는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한 아역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비전문 배우인 아이들의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선유도 초등학교 어린이들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호기심과 감탄, 활기찬 모습은 연기가 아닌 실제 반응이었을 것이다. 어린이의 순수한 시선이야말로 이 영화가 지닌 매력이 아닐까 한다.

이 영화는 서미경 배우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종로국민학교 학생 역할로 서미경 배우가 1959년생이니 10세 무렵 출연했다. 서미경은 후일 ‘미스 롯데’에 뽑혔고,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아내가 된다.

#교육자의 길 vs 여성의 희생

영화가 던지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참다운 스승의 길에 대한 것이다. 김 선생은 서울에서의 근무 기회를 거절하고 선유도에 남기로 하고, 더 나아가 아내에게 함께 선유도로 가자고 제안한다. 3년을 기다리던 아내는 갈등하다가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고는, 결국 남편과 함께 군산으로 돌아가는 열차에 동승한다.

교육자의 숭고한 헌신을 아름답게 표현하려 한 건 좋지만, 아내가 남편을 따라야만 하는 전근대적 가부장제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 교육을 위해서라도 서울에 남고 싶었던 아내의 뜻은 왜 묵살되고 마는가? 리얼리스트인 유현목은 이 장면에서 1960년대 한국 여성들의 지위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일까?

영화 <말미잘> 현장사진 (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소장자료)


4. 선유도, 상전벽해의 시간

#신선이 노닐던 섬

선유도(仙遊島). 신선이 노닐다 갈 만큼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이다. 이 섬의 본래 이름은 군산도(群山島)였다. 바다 한가운데 산들이 무리지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세종 때 이곳의 수군진이 지금의 군산 땅으로 옮겨가면서 진의 이름도 함께 가져갔고, 이름을 빼앗긴 군산도는 고군산도가 되었다가 마침내 선유도가 되었다. 지금 선유도 인근의 섬들을 고군산군도라 부르는 것은 그때의 흔적이다.

선유도는 본래 3개의 다른 섬이었으나 중앙에 긴 모래톱이 쌓이면서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섬이 되었다. 선유팔경의 하나인 명사십리 해변, 기러기가 내려앉은 모양의 모래톱 평사낙안의 풍경은 지금도 비경이다.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뛰어놀던 그 해변의 풍경은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다.

#학교는 사라지고, 섬은 변했다

영화의 배경이 된 선유도국민학교는 1946년 6학급 규모로 개교해 78년간 명맥을 이어오다 2024년 8월 31일 무녀초등학교로 통합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22년까지 겨우 4명의 학생이 있었지만, 2023년 신입생이 한 명도 없어 휴교에 들어갔고, 결국 폐교되었다.

1980년대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2018년 신시도와 연륙교가 완성되면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관광지가 되었다. 선유도 외에도 고군산군도의 63개 섬 중 16개 유인도를 잇는 다리가 놓였고, 후일 새만금 방조제가 건설되며 육지에서 차로 10분이면 닿는 곳이 되었다.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 망주폭포, 선유낙조를 보기 위해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이제는 선유도에서 서울로 수학여행을 갈 게 아니라, 서울에서 선유도로 가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5. 영화의 의의와 한계

#시대의 기록으로서의 가치

『수학여행』은 제4회 백마상, 제6회 청룡영화상, 제4회 테헤란국제아동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 영화가 지닌 가장 큰 가치는 1968년 한국 사회의 명암을 고스란히 담아낸 시대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전기도 없던 섬에서 자란 아이들의 서울 체험기는 당대 한국 사회의 극심한 지역 격차를 극명하게 대비해 보여준다. 같은 시간,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이토록 다른 삶을 살아야 했던 씁쓸한 현실이 깔려 있다.

또한 당대 서울의 풍광이던 서울역 주변, 종로, 남산, 창경원, 전차, 육교, 12층 빌딩, 무역박람회장 또한 이제는 소멸된 곳이 많아 사진이나 기록으로만 만날 수 있는 것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나친 계몽의 함정

당시 정부가 원하던 계몽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점은 이 영화의 한계를 명확히 한다. 앞서 언급했듯 서울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지나치게 이상적인 태도는 현실성을 떨어뜨린다.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됐던 1960년대에 저토록 훈훈한 나눔이 가능했을까? 서울의 발전상을 희망적으로 그리는 것은 좋지만, 섬 주민들의 삶을 폄하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리어카를 사 가지고 가서 선유도를 잘사는 동네로 만들겠다는 한 아이의 생각은 순수하게 비춰지지만, 동시에 ‘발전=서울화’라는 근대화주의적 단선적 사고도 보여준다.

※ 이 영화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운영하는 한국고전영화 유튜브 채널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https://youtu.be/m8POssQ_Xr4?si=FFSPk2YMi24Yeg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