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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_이야기(14)] 근대사의 이야기를 간직한 건청궁

시사-N 승인 2018.03.09 01:51 의견 0
경복궁 안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건천궁은 고종 황제와 명성황후의 휴식처였습니다.

 

고종 황제에게 있어 건천궁은 아버지 흥선대원군에게서 벗어나 자신만의 정치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공간이기도 합니다. 고종 황제는 아관파천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건천궁에 머물렀습니다.

 

건천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전기를 사용해 밤을 밝혔던 공간이기도 합니다. 조선 최초로 전등이 밝혀진 곳이지요.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었던 유길준은 조선으로 돌아와 고종 황제에게 전구라는 것이 있음을 보고합니다. 이에 고종은 향원지의 물을 끌어들여 발전소를 지어 전기를 들여왔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의 궁정 설비에 비해 2년 앞서 전기를 도입한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건천궁은 조선의 국모가 일본인의 습격으로 죽음을 맞이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명성황후는 건청궁 안 곤녕합에서 죽음을 맞았고 명성황후의 시신은 건청궁 뒷산인 녹산에서 불태워졌습니다.

 

명성황후를 잃은 슬픔에 고종 황제는 더 이상 건청궁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이후 건천궁은 1909년 허물어졌다가 2007년의 복원공사를 통해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건천궁의 모습

(사진출처 : 경복궁 사이트)

건청궁 : 고종이 자립정치를 꿈꾼 공간

 

고종 황제는 1873년 고종께서는 흥선대원군과 조정실료들 모르게 건청궁을 지었습니다. 법궁인 경복궁 안에 또 다른 궁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1873년은 고종에게 있어 왕이 된지 10년 된 해이며, 친정이 이뤄진 중요한 해였습니다. 이전까지는 흥선대원군의 대리청정으로 조선이 다스려졌습니다.

 

건천궁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국가 정치를 스스로 하려는 고종의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의지와 달리 건청궁에서 명성황후가 시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조선은 쇠락해 갔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9년, 조선총독부가 경복궁에서 박람회를 열면서 건청궁 일대의 건물들을 헐고 그 자리에 미술관을 지었습니다.

 

♣tip새롭게 복원한 건청궁은 찾아가기 어려운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나치지 말고 탐방을 통해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가면 좋겠습니다.

 

[이재권 / 한누리역사문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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