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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독일 통일(57)] 순탄치 않은 동서독 기본조약

칼럼니스트 취송 승인 2019.08.19 13:17 의견 0

브란트 총리 정부의 본격적인 신동방정책 개시에 앞서서 1969년 12월 동독의 울브리히트 국가평의회 의장이 서독의 하이네만 대통령에게 “평화공존 원칙에 따라” “두 개의 독일 국가 간의 선린관계 형성과 평화공존”은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국제법 규범에 기초”한 관계 수립이 필요하다는 서신과 함께 “외교관계를 기본으로 한 기본 관계 수립”을 위한 조약 초안을 보내왔다. 이에 대하여 하이네만 대통령은 상호 무력 사용 포기와 인도주의적 원조를 위한 협상을 하자고 제의하면서 에곤 바르를 대표로 지명하였다.

1970년 2월 브란트 총리의 동독 방문과 빌리 슈토프(Willi Stoph) 동독 총리의 서독 방문은 이에 따른 형식의 것이었다. 브란트 총리의 동독 방문에 대하여 울브리히트는 서베를린을 경유하지 말고 오라고 요청하였다. 초청장은 에곤 바르가 소련과의 협상을 위하여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베를린에 관한 4강국의 회담이 시작된 직후였다.

서베를린이 서독과 관계없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1970년 3월 19일 브란트 총리의 동독 에어푸르트 방문은 새로운 동방정책 최초의 이벤트였다. 당시 브란트 총리 숙소 주변에서 많은 동독 주민들이 환호하며 빌리를 환영하였다.

에어푸르트는 1891년 당대회에서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사회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에어푸르트 강령을 채택한 사민당의 역사적인 장소였다. 그리고 나치 치하에서 독일 진보 진영 인사들이 처형되거나 수감되어 고통을 겪은 부헨발트 수용소가 있는 곳이다. 여기서 브란트는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와 2차례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이 두 개의 독일 국가 간의 공식 회담이라는 입장에서 동독의 슈토프는 외무장관을 대동하고 회담에 임했다. 반면 서독은 독일 국가 내부의 문제라는 입장에서 내독부 장관이 함께 참석하였다.

회담에서 슈토프는 분단 이후 서독이 동독을 가난하게 하여 그 손해가 1천억 마르크에 달한다고 주장하였다. 브란트 총리는 서독이 무력에 의한 통일 의사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동독의 주권에 위협을 가하는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5월 21일 서독의 카셀에서 2차 정상회담이 열렸다. 슈토프는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항복한 나폴레옹 3세가 포로 생활을 한 슐로스호텔(Schlosshotel)에 머물면서 회담을 가졌다. 밖에서는 극좌파와 극우파의 시위가 있었다.

여기서 브란트 총리는 독일정책 20개 항을 제의하였고 슈토프는 동독에 대한 전면적인 국가 승인을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이처럼 카셀 회담은 쌍방의 입장만 제시한 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슈토프의 주장은 1969년 12월 동독의 실권자인 울브리히트(Walter Ulbricht) 국가평의회 의장의 조약 초안 내용을 답습한 것이었다.

브란트 총리가 제시한 20개 항은 5월 20일 서독 각의에서 결정된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은 독일 내의 두 개의 국가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조약을 체결한다.
② 조약은 헌법에 정한 형식으로 양국 입법기관에 제출하여 동의를 받는다.
③ 양측은 인권, 평등, 평화공존을 기초로 관계를 정립한다.
④ 무력 사용 위협이나 무력 사용을 포기하고 양측 간의 모든 문제는 평화적인 수단으로 해결한다.
⑤ 양국의 국내적 주권을 존중한다.
⑥ 어느 쪽도 상대를 대표하지 않는다.
⑦ 조약 당사자는 독일 영토 내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백히 한다.
⑧ 양 국민의 평화공존을 파괴하는 일체 행위를 자제할 것을 약속한다.
⑨ 유럽의 안전보장을 위한 군축과 무기 통제를 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재확인한다.
⑩ 같은 민족에 속한다는 것을 서로 인식한 독일인에 의한 조약이다.
⑪ 베를린과 전체로서 독일에 대하여 특별한 권리를 가지는 4강국 각각의 권리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⑫ 베를린과 독일에 관한 4강국의 합의는 존중될 것이며, 동시에 서베를린과 서독 간의 유대에도 적용된다. 베를린 상황을 정상화하려는 4강국의 노력을 지원하여야 한다.
⑬ 양측의 법률 간의 충돌로 인한 국민의 불이익이 없도록 하고, 주권은 각자의 영역 내로 한정된다.
⑭ 이동을 확대하고 임시이주의 목적 달성에 노력한다.
⑮ 이산가족 문제 해결이 모색될 것이다.
? 경계선을 같이 하는 지방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 각 분야의 협력을 확대할 것이다.
? 교역은 더 확대될 것이다.
? 양측은 장관급 특명전권대사를 임명하고 상주대표부를 설치한다.
? 국제기구 가입과 협력을 조절하기 필요한 대책을 강구한다.

브란트 총리가 제시한 20개 항의 내용은 외교적 승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동독이 주장해오던 것으로 이후의 협상을 통하여 기본조약에 수용된다. 그러나 카셀 회담은 별 진전 없이 끝났다. 이후 동독 내부 사정 등으로 10월까지는 소강상태에 빠졌다. 그 사이에 서독과 소련 간의 모스크바조약은 서명까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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