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小說-대‘한심(寒心)’국] 3편: “내가 알바 하지요”

조인 작가 승인 2019.08.31 13:19 | 최종 수정 2019.09.08 20:19 의견 0

자크 아탈리라가 『21세기 사전』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노마드’를 언급했다고 한다. 덕분에 사무실이 없어서 오늘은 스벅, 내일은 엔젤, 그다음 날은 투썸을 이용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물론, 점심시간도 아닌 오전에 카페에 들어가서 자리를 차지하고 서너 시간씩 앉아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그리고 아무리 번갈아 간다고 해도 비슷한 시간에 나타나는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직원이 있을까?

차라리 한 곳을 집중적으로 다녔으면, 한 카페에서는 백수 취급받으면 될 텐데, 카페마다 돌아다니니 입장하는 모든 카페마다 “나는 백수입니다”를 소문내고 다니는 꼴이 됐다. 

프리랜서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꽤 있다. 주변에서도 “저도 재택근무했으면 좋겠어요. 제일 부러워요!”라고 징징대는 후배들도 있다. 그런데, 프리랜서 처지에서는 자택 근무를 부러워하는 회사원의 투덜거림이 배부른 소리로 들린다. 시간과 공간의 여유를 즐기는 건 맞지만, 즐긴다는 표현보다는 무거운 마음으로 가벼운 지갑을 좁디좁은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닐 뿐이다.

한 번은 작은 뒷주머니에 지갑을 넣고 다니다가 잃어버렸는데, 동선을 따라 여러 번 다니고, 아파트 관리사무소마다 들어가서 지갑 잊어버린 걸 호소하고 근처 파출소까지 방문했지만, 정든 지갑은 찾을 수 없었다. 

원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니, 내 처지에서 직장 다니는 사람들의 투정을 받아쳐서 보태서 한풀이한다 한들 달라지는 게 뭐가 있을까? 하지만 한 마디 덧붙인다면 프리랜서의 삶의 고달픔에 대해서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유시민조차도 쉽지 않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힘든 십자가 길이라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오늘은 어디 가니?”라고 묻는 어머니께 아들은 “일하러요!”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이마에 성급한 과속방지턱을 만들고 인상 쓰면서, 심판의 판정에 불만 품은 메이저리거 커쇼가 야구공을 바닥에 내리꽂듯이 “알아 뭐하시게요!”라고 퉁명스럽게 던진다. 

명절 때가 되면, 평소에는 한 번도 연락하지 않고 관심 두지 않았던 친척들이 “요즘 뭐해?”라고 심드렁하게 형식적으로 물어온다. 분명 지난 명절에도 “프리랜서요!”라고 대답했던 거 같은데, 관심이 없으니 또 묻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독설가 버나드 쇼는 “동료 인간들에 대한 가장 사악한 죄는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한 마디로 폭력보다 더 나쁜 게 무관심이다. 요즘 들어서 자꾸 느껴지는 건 친척의 ‘친’은 친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 대 ‘친’다는 의미에 가깝다는 거다.

어쨌든, 명절이니 도란도란 모여서 한 끼니 식사한다. 그러고 보니, 시험 준비한다는 사촌 동생 놈들은 보이지 않는다. 변명이야 취업 준비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녀석들이 취업한다고 해서 오랫동안 발걸음을 끊었던 큰 집에 올 일은 없다.

그러고 보니, 항상 나만 명절에 우리 세대 대표로 식사를 했던거 같다. 어릴 때는 장거리 여행이 애들한테 힘들어서 못 오고, 중딩부터는 공부 핑계를 댔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어쨌든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이제는 영어 공부니 아르바이트니 취업 준비를 핑계로 내려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대표로 내가 항상 온갖 질문을 받아야 했고, 일 년에 몇 번씩 반복되는 질문에도 상냥하게 답해야 하는 곤욕을 치러야 했던 것이다. 

서둘러 한 끼 같이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더 있다가는 스트레스로 인해 내가 폭력을 행사할 거 같은 기분이다. ‘갑자기 달달한 게 땡기네.’ 평소에는 단 걸 별로 즐겨 먹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 게 먹고 싶다. 마침 집 근처에는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이 있어서 명절인데도 미안한 마음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니 평소에는 이른 아침에만 앉아 있는 점장이 있다. 점장은 여자인데, 키는 163센티 정도에 마른 편이다. 눈이 큰 편이어서 볼 때마다 눈을 마주칠 수밖에 없다. 이목구비가 화려한 편은 아니지만, 중년 남성이라면 한 번 정도는 얼굴을 보기 위해서 물건 산다는 핑계로 한두 번 더 들렸을 법하다. 새벽이든 늦은 밤이든 짙은 화장을 해서 나이를 가리고 있는 것 같은데, 종종 중학생 딸과 통화하는 내용을 들으면 지난 삶을 가리기 위한 짙게 화장하는 거 같다.

“안녕하세요.”
“네. 명절인데도 오셨네요.”
“점장님이야 말로 명절인데도 나오셨네요.”
“알바들이 쉰다고 하니 어쩔 수 없죠.”

점장의 말투로 볼 때 알바에 대한 불만이 짙은 화장만큼이나 배어 있었다. 하기야 자영업자들한테 가장 골치 아픈 일이 사람 관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을 잘하면 보수를 올려줘야 하고, 혹 일을 잘 못 해서 그만두라고 할라치면, 갑질이니 뭐네 하면서 오히려 노동청에 신고한다고 협박한다는 것이다. 물론, 짤린 알바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점장들이 갑질한 거 같기도 하다. 

“참, 며칠 전 뉴스를 보니까 시급을 올린다고 하던 데. 시급 올리면 힘드시지 않나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그렇게 주면 알바 안 쓰고 제가 알바해야죠.”
“그 정도예요? 내년에도 시급이 오를 텐데,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그러게요.”

한숨 쉬는 점장의 얼굴이 평소보다 나이 들어 보인다. 아무리 짙게 화장해도 어둠의 틈을 뚫고 새어 나오는 빛처럼 잔주름의 세밀한 골은 화장품으로 다 메우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기야 명절까지 나와서 편의점 카운터를 봐야 하는 상황이면, 김태희라 할지라도 눈가에 잔주름을 보이고 말 것이다. 그런데, 정작 명절까지 나와 일해도 남는 게 별로 없다면 깊어가는 주름 골을 메울 화장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그 값도 편의점 수익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거다. 

“아무튼, 명절 잘 보내시고, 힘내세요!”

캔 커피를 하나 고른 후에 인사를 건네고 편의점을 나왔다. ‘곧 시급이 오를 텐데, 점주나 알바생들이나 고민이 하나 더 늘어나겠군.’ 얼마 전에 시급과 관련한 청문회를 보니 폭력적인 수준이라고 하던데, 정말 그런 것 같다. 서민의 삶을 향상하겠다는 취지에서 시급을 올리는 건 당연한 일 같지만, 그 시급을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대부분 부담한다면? 도대체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이는 걸까? 아니면, 비슷한 부류를 이간질해서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으려고 하는 걸까? ‘어부지리라? 결국, 포퓰리즘인가? (계속)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