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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4편: “6천 원이요!”

조인 작가 승인 2019.09.08 20:13 의견 0

난 특이한 편집증이 있다. 뭔가에 꽂히면, 빚을 내더라도 꼭 사야 하고,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알 아야 한다. 뭔가를 제대로 알 때까지 남들이 볼 때 기행이라고 할 만한 것도 마다하지 않고 마치 일주일 굶은 사람이 한 끼 음식을 구하듯이 끊임없이 찾아다닌다. 그러다 보니 몸도 정신도 지칠 때가 많다. 술도 한 방울 입에 대지 않는데도 간이 좋지 않고, 귀족들이나 걸린다는 통풍도 앓고 있다.

편의점 알바의 생태계에 관심이 꽂히다 보니 그들이 받는 실제 인건비가 정말 궁금했는데, 최저임금 수준으로 주거나 받는 상황이 아니라는 정황을 포착했으니 당연히 실제 알바비가 궁금했다.

얼마 후 편의점에 다시 갔을 때 그동안 보였던 알바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항상 들를 때면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하다가도 얼른 멈추고 친절하게 맞이해줬던 알바들이었는데, 지금은 내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넉넉한 풍채만큼이나 포근한 미소로 반겨준다.

그러고 보니 또다른 편의점은 아저씨로 바뀌었다. ‘뭐지? 대대적인 아르바이트 교체인가?’ 지난번 시급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 알바들이 바뀐 거여서 분명 연관이 있을 거 같은데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기회는 곧 왔다. 

육천 원이에요! 다들 그렇게 받고 해요.

내가 사는 집 주변에 편의점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GS25’고, 다른 하나는 ‘이마트24’다. 둘 다 상호에 숫자가 있다. 25시는 불가능한 일이고, 24시는 현실적인 운영시간이다.

GS25는 할인 카드가 있어서 이마트24보다 많이 이용하지만, 집에 누워있다가 바로 편의점을 이용하게 될 때는 이마트 24시를 이용한다. 할인도 중요하지만, 할인만큼이나 편의성이 중요한 게 편의점이다.

할인이라고 해봤자 포인트 차감인데, 포인트는 늘 충분하지 않다. 특히, 최근에는 통신사 가맹점도 많이 줄고, 할인 혜택도 매년 줄어서 언제까지 얼마나 혜택을 줄일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VIP 회원인 경우 월 2회 영화 관람을 지원하고 편의점은 횟수에 상관없이 할인 혜택이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영화도 1회, 편의점 할인은 1일 1회로 줄었다. 커피 전문점의 커피 업그레이드도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가능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이용하는 통신사는 그 혜택을 정지시켰다.

정부에서 합리적인 통신비를 위해 법을 제정하고 이동 통신회사에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다. 통신료가 줄어든 건 사실인데, 그 수준만큼 혜택도 준 것이다.

기업의 목적이 이윤인데, 가만히 앉아서 손해 볼 기업이 있을까? 정부의 압력이 실제 요금은 낮췄다 하더라도 혜택을 줄였으니 기업 입장에서야 크게 손해 볼일 없을 테지만, 그 혜택 때문에 영화 보면서 팝콘도 사고 편의점도 자주 이용했던 사람들이 줄어들면, 극장의 팝콘 장수와 편의점 사장들이 손해를 볼 테니 오히려 경제적인 흐름을 생각한다면 마이너스 아닐까? 도대체 누구를 위한 합리적 요금이고, 누구를 위한 시급인지 잘 모르겠다. 

무료한 주말 오후.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검색하다 보니, 점심때를 놓쳤다. 원래 하루 세끼를 다 먹지 않기 때문에 점심 때를 놓쳤다고 해서 아쉬울 건 없으나, 뭔가를 배에 넣어야 할 때가 오면 반드시 먹는다.

어릴 때부터 줄을 서서 먹는 맛집은 괜한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편의점이 계속 늘어나는 현실을 굉장히 환영한다. 그러고 보니, 편의점이 늘어날 때마다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아저씨들이 사라지긴 한다.

편의점도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 사업이라고 이해한다면, 영세 자영업자를 돌보기 위해서는 적절한 제재가 있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알고 보면 편의점 점장들도 영세하긴 마찬가지다. 도대체 다들 영세하다고 한다면 돈은 누가 다 가져가는 건지. 

집에서 1분 거리에 있는 이마트24 편의점에 들어가니 신기하게도 젊은 청년이 알바를 하고 있다. ‘어, 저 애는 내가 아는 앤데’ 한참을 쳐다본 후에야 사촌 동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인지능력은 주별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데, 전혀 생각지 못했던 장소에서 지인을 만나니 순간적으로 알아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어쨌든 알바와 눈을 마주치니 알바가 먼저 반갑게 인사한다. 사촌 동생은 나를 쉽게 알아본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가 편의점 근처에 산다는 걸 알고 있고, 언젠가는 만나리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안녕하세요.”
“너 여기서 일해?”
“네. 2주 전부터 야간에만 일해요. 오늘은 교대하는 아주머니께서 시간을 바꾸자고 하셔서 이 시간에 일하는 거고요.”
“그렇구나. 힘들지는 않아?”
“네. 그냥 밤낮이 바뀐 거 빼고는 괜찮아요. 그리고 주말에만 일하는 거여서 큰 어려움은 없어요.”
“그래도 시급 올라서 괜찮겠네. 고생하는 보람 있겠어.”

이렇게 말하고 사촌 동생을 쳐다보니 ‘모르는 소리 하지 마세요.’라는 얼굴로 웃는다. 뭔가 다른 사정이 있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알바생들이 바뀌는 이유와 연관이 있는 거 같아서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궁금증을 일소에 해결하리라 마음 먹었다.

“왜? 시급 제대로 못 받아?”
“네.”
“그래? 국가에서 정해 준 최저시급인데?”
“그렇죠. 주변 편의점은 다 그렇게 해요.”
“그렇구나. 그럼 한 7,500원 정도는 받겠네?”

2018년 최저시급을 생각하고 사촌 동생한테 말한 거였다. 2019년은 8천 원대를 넘었으니, 점주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액수였을 테고, 그렇다고 해서 최저시급 기준이 있으니 무턱대고 임의로 형편없이 낮춰 주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 던진 말이었다.

“아니요. 그 정도만 받아도 좋게요.”

여러 가지를 따져서 복잡하게 추측한 예측값은 수포로 돌아갔다. “진리는 단순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유례를 따져보면,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올라간다. 그는 “자연은 짧은 경로를 선호한다.”라고 말했는데, 자연법칙도 간단하게 추론할 때 원칙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철학 사유는 이후 ‘오캄의 면도날’(Occam’s razor)로 유명한 윌리엄 오캄에게 비판적으로 수용된다. 그는 “더 적은 수(의 가설)로 할 수 있는 것을 많은 수(의 가설)로 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라고 말했는데, 실제로는 그가 한 말은 아니라고 하지만. 어쨌든 비판적으로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나의 추리는 틀렸다. 

“그럼, 얼마 받는데?”
“육천 원이요!”

단순했다. 육천 원이 나온 기준은 알 수 없으나, 그렇게 정한 것이다. 2018년이 7,530원, 2017년이 6,470원, 2016년이 6,030원, 2015년이 5,580원이다. 그리고 2019년은 8,350원, 2020년은 8,590원으로 확정됐다고 한다. 

비선 실세 정권에서도 육천 원이 넘고, 이후 계속 올라서 장미 선거를 치러 당선한 정권에서 더 파격적인 시급을 결정해 줬으나 정부의 장밋빛 시급은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였다. 그냥 그림의 장미라고 해야 할까?

2016년 기준에 가장 가까우니 기준이 그즈음이었나 보다. 30원이 사라진 이유는 동네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점장이고 일일이 따지기 번거로웠을 테니, 그냥 생략한 것이다. 아무리 알바라 하더라도 고용 계약서를 써야 하는데, 당연히 그런 절차는 없다. 알바자리를 간절히 구하는 입장에서는 주변 사정이 다 그렇다는 걸 알면, 달리 방법이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야 하는 법”이다.

국가는 소득 주도성장을 실현하기 위해서 최저시급도 올리면서 애쓰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최근에 나온 신문기사를 보면, 빈부의 격차가 가장 심한 2019년이라고 한다. 빈부의 격차를 줄이겠다고 나섰는데 더 벌어진 역설적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 정권은 지난 정권의 실정을 탓할 것이다. 그리고 혹 다음 정권 때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면? 그 정권의 공(公)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긴 힘들어 보인다. 민생을 모르고 책상에 앉아서 정책이랍시고 내놓는 인재(人災에 가깝다)들도 재산에서 뒤에서 ‘0’ 하나만 짤려나간 부유층이어서 서민들이 생각하기에는 대단한 부자들이다. 장하성 교수가 사는 집이 강남이란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꿈을 꾼다고 꿈을 다 현실화시킬 수 없다고 말한 사람이다. 현 정권의 브레인 역할을 하면서 1년에 10억이 넘는 재산이 늘었다고 하는데, 1년에 1억 원을 벌기도 힘든데, 10억 이상을 벌었으니 이미 그는 서민 경제를 다룰 자격을 상실했다. 변명하겠지. “난 잘나서 그런걸!” 하고 말이다. 

시급을 제대로 주지 않는 점주들의 행태와 월 1억씩 재산을 늘려가는 누군가의 행태 중 어떤 것이 더 공감할 수 있는 일일까? ‘그러고 보니, 나도 장하성 교수의 책을 근사하다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삼성을 깔 때 얼마나 통쾌하던지. 결론은 장하성은 삼성의 축재가 부정하다고 생각한 거고, 서민들은 장하성의 축재가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모양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니 사촌 동생의 억울함에 공감이 가지만, 그렇다고 점주들만 욕할 수도 없다. 그들도 먹고살아야 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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