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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작가의 3.1혁명(1)] 왜 3.1혁명인가? - “일반백성이 권력의 주체가 된 만세혁명”

이동진 작가 승인 2019.03.06 12:40 | 최종 수정 2019.07.04 01:43 의견 0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입니다. 3.1운동은 1919년에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 나라를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전국적으로 발생한 대규모 민족운동입니다. 민중이 주축이 되어 전개된 운동이기 때문에 더 뜻깊은 운동이라고 할 수 있죠.

100주년을 맞아 매체, 교양 프로그램, 정부 및 지자체는 3.1운동과 관련한 많은 행사를 진행하며 콘텐츠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에 맞춰 3.1절을 기점으로 전에는 어떤 사건들이 발생했는지, 그리고 이후에는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3.1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알기 위해서는 3.1운동이 발생하게 된 계기와 이후 연결되는 독립운동의 흐름을 자세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3.1 만세운동은 충동적으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국내외 네트워크를 형성해 조직적으로 계획된 운동이지요. 그렇다면 3.1운동은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을까요 잠시 1907년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1907년에는 3.1운동과 아주 연관이 깊은 단체가 설립됩니다. 3.1운동의 주축 세력이면서 동시에 만세운동 이후 만들어지는 임시정부 세력이 모두 이 단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바로 ‘신민회’입니다.

▲ 신민회에서 활발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지사. 왼쪽부터 안창호, 이승훈, 이동휘 ⓒ 위키백과


신민회는 1907년 도산 안창호가 미국 유학을 다녀온 직후 국내 상동교회 청년지사들과 서북지역의 기독교인, 그리고 대한매일신보계열의 애국지사들을 모아 결성한 비밀결사단체입니다.

신민회는 ‘독립을 위해서 우리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실력양성론을 주창하며 애국계몽과 관련된 다양한 운동들을 전개합니다. 학교를 세우고, 강연과 출판활동을 활발히 하며 이후에는 독립군을 양성하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신민회의 주요 활동 인사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진달래 꽃’의 시인 김소월의 모교 오산학교 설립자 이승훈,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이끌며 이후 임시정부의 총리가 된 이동휘, 김구를 키워준 이동녕 등등 전부 다 열거할 수 없습니다.

또한 1919년 만세운동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데요. 실제로 민족대표 33인의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기독교계 인사이기도 합니다. 안창호 선생님 역시 기독교 신자였죠. 상동교회 인사들을 중심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독립운동에 가담합니다. 지금 이야기한 신민회도 기독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단체입니다.

▲ 진관사에서 소장 중인 태극기 ⓒ 국가문화유산포탈


신민회를 중요하게 꼽는 이유는 신민회가 주장한 ‘어떤’ 내용 때문입니다. 바로 신민회가 민주 공화제를 주창했다는 점인데요...

우선 신민회가 설립된 시기를 보면 1907년입니다. 즉 대한제국이 망한 해인 1910년 이전에 생긴 단체라는 것이죠. 대한제국은 전제 군주제를 채택했는데, 황제가 주권을 가진 ‘제국’에서 백성이 주인인 나라를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기존 체제를 탈피한 새로운 제도를 부르짖었다고만 볼 문제가 아닙니다. 당시로 보면 반역 행위였죠.

그런데 이 주장은 1907년으로부터 12년 만인 1919년 4월 11일에 임시정부의 헌법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임시정부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인사들 중에는 신민회 출신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약 40일 정도 뒤에 임시정부가 세워진 셈인데요, 이 이야기는 한반도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세력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3.1운동의 배후 세력들 중 대다수가 신민회 출신이었습니다. 서로 이미 끈끈한 신뢰관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3.1 만세 운동을 이끌고, 이를 임시정부 탄생까지 연결할 수 있었던 것이죠.

요즘에는 학계에서 ‘3.1운동’을 ‘3.1 만세운동’이 아니라 ‘만세 혁명’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혁명(革命)’이란 권력의 주체가 바뀌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의 경우 권력의 중심이 왕과 귀족에서 일반 시민으로 변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러시아 혁명은 왕에서 노동자와 군인으로 권력의 세력이 이동합니다. 소비에트에 소속된 노동자와 군인들이 주체가 되어 혁명을 일으키고, 기득권을 획득합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왕조가 변화해도 기존의 권력을 가진 세력은 왕과 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3.1운동이 일어나면서 상황이 변화합니다. 3.1운동을 기점으로 권력의 주체가 일반 백성, 민중에게로 넘어오게 되지요. 그래서 지금은 3.1운동이라기 보다는 3.1혁명으로 이야기 합니다.

 

[글쓴이: 이동진 / 시민들과 함께하는 역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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