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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31편: 명예도 없이 욕정만 남은

조인 작가 승인 2020.08.29 16:56 의견 0

“코로나도 그렇고, 뭐 돈 준다는 것도 그렇고, 애들 학교 가는 것도 그렇고. 난리가 이런 난리가 없네.” 
“그래도 뭐, 요 며칠 사이는 좀 줄어드는 듯하니 곧 정상으로 돌아오겠죠.” 
“그러게, 꽃은 울긋불긋하게 활짝 피웠는데, 우리 마음은 피멍으로 꽃이 핀듯하니. 원”

5G 시대를 자랑하면서 ICT의 강국임을 항상 자부했던, 속도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밀리지 않을 것 같은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행정처리는 “빨리빨리”가 어렵다. 이념의 갈등을 넘어야 하고, 협의의 장을 만들어야 하고,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고. 이 모든 걸 다 해도 또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가득하다. 모두 당연한 절차라고 할 수 있지만, 사막 한가운데서도 오아시스를 찾는 간절한 마음으로 갈증을 해갈하려 하는 국민들에게, 이런 복잡한 절차는 가뭄에 물이 부족해서 수도꼭지에서 한참 모였다가 겨우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답답하다. 그런데 그런 답답한 물방울이라도 입술에 적셔 조금이나마 건조한 속내를 해갈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줄을 서야 하는 미칠 것 같은 심정. 

“재난 기본소득을 풀면, 이번 총선에서 괜찮겠지.” 
“네. 코로나도 모범적으로 대처한 국가로 인정받았고, 세계적으로 국내의 조치를 아주 우수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코로나와 관련한 부정적인 인식도 사라질 듯합니다. 게다가 생계비를 지원한다면, 그간 잃었던 지지율도 회복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겠지. 현금이 지급된다는 데 싫어할 사람은 어디 있겠는가? 저 야당만 없어도 좀 더 빨리 풀어 줄 수 있는데,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세상은 우연의 연속이다.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사고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고 철썩같이 믿었다. 그러나 이런 사고는 현대에 와서 맞질 않는다. 과거에는 달라도 “우리가 남이가?”라고 반문하고, 한민족, 단군의 겨레 등을 선전하면 서로 다르다는 차이점은 두꺼워서 단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약해서 작은 아이가 매달려도 부러져 버리는 감나무 가지처럼 절대적으로 여겨졌던 차이점은 그 자리에서 곤두박질치곤 했다. 

그러나 현대는 그렇지 않다. 작은 요인이 ‘나비 효과’를 일으켜서 작은 바람이 어느새 큰 대풍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한에서 발병한 코로나가 세계를 덮을 거로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너무 다양한 요인이 갓 사귄 연인들의 마음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니 작은 변수에도 최종 결과는 천지 차이다. 정치도 세상일이다 보니, 마찬가지다. 코로나가 터지고,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할 때는 지지율도 떨어지고, 다가오는 선거가 걱정이더니 현재는 최악의 상황을 면하고, 현금을 집행하게 되면, 오히려 유리한 상황에 놓일 게 뻔했다. 아무리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해도 현 상황에서 지원금을 반대하면, 스스로 낙선 운동을 하는 셈이니 누가 감히 시비를 걸 수 있을까? 더 주자는 말은 해도, 덜 주자는 말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신이 있다면, 이와 같은 상황을 뭐라고 했을까? 

“나는 근원이자 제1 원인이다. 그러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나올 수 없다.” 

신의 이런 절대적 선포는 아이들 우화 속에나 등장하지 현대에 어울릴만한 등장인물이 아니다. 신이 진리가 아니라, 그런 신을 신뢰하지 않고 의심하는 게 합리적인 의심이자 진실을 찾는 하나의 방법이 됐다. 

“모든 것은 관계성으로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라 오직 하나의 값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 또한 예측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5년 전에 10억의 수익을 4년 전에 20억, 3년 전에는 30억, 2년 전에는 40억, 1년 전에는 50억의 수익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떨까요? 60억? 아닙니다. 100억의 손해를 봤습니다. 일정한 법칙에 따라서 수익이 일정하게 올라간 것이 아니라 우연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작년까지 아무리 좋은 수익을 냈다고 하더라도 요즘과 같은 시기라면? 수익 내기가 쉬울까요?”

한 유튜버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정확한 예측을 선전해서 대중을 현혹하는 가증스러운 유튜버를 공격했다. 어떤 미래학자도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다. 매년 나오는 트렌드와 관련한 책도 참고는 할 수 있을망정 세상의 맵으로 활용하는 건 힘들었다. 혹, 그들이 만들어 낸 단어에 현혹돼 ‘확증편향’에 쏠려 있을지 몰라도 거의 맞는 게 없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는 1년이면 족하다. 그런데도 다시 트렌드에 열광하면서 새로운 책을 구매한다. 맞길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트렌드라는 말에 마음을 내줬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초기만 하더라도 고개를 숙이고, ‘올해는 끝났어!’라고 생각했던 정치인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반면에, ‘올해야, 말로!’라고 확신에 차 소리 질렀던 정치인들은 새로운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들 앞에 놓인 상황은 달라 보이지만, 그들이 서 있는 위치는 오십보백보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지원금 지급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그 돈이 없어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게 해결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권력이었다. 명예는 한 푼어치도 중요하지 않았다. 명예가 중요했던 시기에는 자결도 많고,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천하는 자도 꽤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 과거에는 목숨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손등에 앉아 피를 빨다가 그대로 맞아 죽어버린 모스키토의 신세.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지위일 뿐이다. 그랜저를 타던 사람에게 경제적 소득이 없으니 아반떼나 소나타를 타라고 진심으로 권한다면, 합리적인 권유이긴 하겠으나, 그런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미친놈, 나를 어떻게 보고!’라고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허허’ 거릴 게 분명하다. 

하물며, 외제 차를 타고 다니는 그들에게 국산 소형차를 권한다면? 그들은 주먹을 들어 합리적으로 권한 지인의 얼굴을 갈겨버릴 것이다. 그들의 정치야망은 욕망을 넘어 더러운 욕정으로 변한 지 오래다. 옳고 그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자리를 지키거나 올라가는 게 중요한 사람들이다. 권력의 부패 늪에 빠진 자를 구해내는 것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게 낙타가 자기 몸을 조각조각 내서 작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려운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오늘은 누가 술값을 내지? 김 기자?”
“의원님 뭐 그런 걸 걱정하십니까?”
“내가 내야 하나? 기자 월급이나 검사 봉급이 얼마나 되겠어?”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응? 박 검사가?”

이제 귀가할 시간이 됐다고 여겼는지 이 의원이 술값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말을 마치자마자, 박 검사는 벨을 누른다. 밖에서 계속 대기하고 있었는지, 벨 소리와 함께 직원이 들어온다.

“부르셨습니까?”

고개를 숙이고 90도 인사를 한 후에도 고개를 감히 들지 못한다. 

“응. 여기 사장님 나오셨나?”

박 검사의 질문에 바로 답하지 못한 보이는 잠시 멈칫한다.

“바로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얼굴을 돌리지 않은 채로 문을 열고 나간다. 잠시 후 검은 정장을 입고 머리는 깔끔하게 가르마를 탄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들어 온다. 

“오셨습니까? 박 검사님!”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환한 미소로 박 검사를 바라본다. 

“그래요. 최 사장. 오늘 여기 의원님과 기자 동기랑 같이 왔는데, 집에 갈 때가 되니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 전혀 관계없는 최 사장의 답을 듣고 싶어서 불렀어요.”

최 사장은 어떤 질문인지 충분히 예상할 만큼 이 바닥에서 닳고 닳은 사람이었지만, 초짜가 아니기에 모른척했다. 

“예? 어떤 질문이 그렇게 답답하게 했을까요? 제가 미천한 머리를 돌려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머리라도 뽑아서라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뭐 그리 무서운 소리를”

최 사장의 적극적인 자세에 모두 크게 웃는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술 냄새와 안주 냄새가 이상하게 섞여서 최 사장의 코에 역겨움으로 들이닥친다. ‘뭘 처먹었길래!’ 잠시 최 사장의 얼굴이 이그러 진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다.

“우리가 술을 먹다가 이제 집에 갈 시간이 됐는데, 갑자기 이 의원님께서 술값을 내신다고 하시네. 그 술을 내가 얻어먹어도 찝찝하고, 김 기자도 마찬가지고, 그렇다고 기자가 내는 술을 먹으면 왠지 독주를 마신 거 같은 느낌일 테고. 그렇다고 내가 내도 의원님이나 김 기자가 내켜 할 거 같지 않고.”

이렇게 말하고 나서 박 검사는 음흉하게 눈웃음을 짓는다. 

“검사님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왕림해 주셨는데 제가 대접해야죠. 손님을 모셔서 대접하고 돈 내라고 하는 주인이 어디 있습니까? 당연히 주인이 편안하게 모셔야죠.”
“아하, 참 묘안이네. 그려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역시 최 사장의 머리는 비상하단 말이야!”
“하하~~ 과찬이십니다. 어려운 문제도 아닌 걸 가지고 그렇게 고민하시다니, 오히려 제가 민망하네요.”

‘코로나 19’시대, 캄캄하게 꺼져 있는 네온사인 아래 더 어두운 계단 아래 밝혀진 룸싸롱 안에서 의원과 검사와 기자는 그렇게 어두운 웃음을 환하게 지으며 일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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