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小說-대‘한심(寒心)’국] 33편: 시장과 김 비서

조인 작가 승인 2020.09.13 14:30 의견 0

“오늘 오전 00시장이 등산복 복장으로 관사를 나갔다고 합니다. 시장은 오후에 가족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남겼고, 가족은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고 합니다. 현재 2개 중대의 병력이 출동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방선거 이래 최초의 3선 시장, 작고 온화한 이미지, 해외에서도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고 추앙할 정도의 시장이었다. 더 올라갈 계단은 없어도 본인이 원하지 않는 한 내려가지 않아도 될 층계참에 안정적으로 두 발을 두고 있는 사람이었다.

“무슨 소리지?”
“그러게요?”
“왜 자살이라도 하려고 올라갔나?”
“단순한 등산은 아니니까, 저 난리겠죠?”

보도를 시청한 시민들도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마치 비 오기 전 바람이 불어 소스라치게 놀란 강아지풀처럼. 보도에 집중했던 시민들이 하나, 둘 고개를 떨구고 인터넷을 검색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놀란다. 

“성폭력?”
“미투?”
“뭐야?”
“또?”

A시장에 이어서 여당은 B시장까지 잃게 됐다. 장기로 치면, 차와 포를 잃고 무력하게 방어만 할 뿐이다. 곧 적의 “장군이요!”라는 소리에 무너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 네티즌은 “더불어 미투당”이라고 하면서 조소하기도 했고, 왜 여당에서만 이런 사건이 계속 나오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었다. 

“시장님,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
“뭐지요?”

늦은 시간에 급히 보고한다는 말에 벌써 육감적으로 좋지 않은 기분이 든다. 사람은 수면이 부족하거나 몹시 피곤하면, 불안함을 느낀다. 대체로 그런 좋지 않은 기분은 충분한 휴식 이후에 회복되지만, 시장이 느끼는 불안은 그런 불안이 아니다.

“김 비서가 시장님을 고소하겠다고 합니다.”
“응? 뭘로?”
“성폭력이라고 합니다.”
“흠.”

시장은 짧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녁 시간에 마신 사케 냄새가 식도를 타고 올라와 콧구멍의 점막을 후려친다. 

점잖은 이미지로 평판이 좋았던 시장이었다. 그러나 누구나 평범함 속에 감춰진 욕망은 알 수 없는 법이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다음은 쉬웠다. 그리고 죄책감이나 ‘하지 말아야지’라는 심적인 저항감이나 이후에 나타날 결과에 대한 두려움도 권력에 심취하면 사라지는 법이다. 

시장은 첫사랑과의 첫 밤을 생각한다. 비가 오다가 갠 밤이었다. 자정이 거의 다 될 무렵. 시장은 함께 있었던 그녀를 보내기 싫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이제 막차만 남았을 뿐이다. 

“오늘은 왠지 보내주기가 싫은데.”

뜻밖의 말에 여인은 잠시 놀란다. 그러나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었던 것처럼 알았다라는 듯이 고개를 숙인다. 오히려 당황한 건 그였다. “집에 들어가 가야 해요!”라고 한 번 정도는 거절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럼, 우리 저쪽으로 장소를 옮길까?”

그들은 처음 밤을 같이 보냈다. 어색한 사랑 나눔이었지만, 사랑했기에 어색한 게 좋았다. 육체적인 희열을 느꼈다기 보다는 정말 하나가 된 경험을 나눈 것이다. 이후 그들은 점차 탐닉에 열중했다. 미치도록 싸우다가도 열정적으로 하나가 되고, 그러다가 또 싸우고, 이별하고. 언제까지나 그렇게 반복될 줄만 알았다.

“김 비서, 오늘 참 근사하네요.”
“네. 감사합니다.”

김 비서는 시장이 건네는 칭찬이 싫지 않았다. 직장 내 최고 상사의 긍정적인 표현을 장마철 어두운 하늘처럼 받아들일 직원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더 잘 보여서 지금 시장이 머물러 있는 동안 더 좋은 평점이 내려지길 바랐다. 

“내가 낮잠을 좀 잘 테니, 한 시간 후에 깨워주겠어요?”
“네. 시장님. 얼마든 지요.”
“고마워요.”

시장은 매일 낮잠을 한 시간 정도 잤다. 수년째 시장 자리에 있다 보니, 저녁 행사가 많았고 중요한 회의는 어두운 밤에 주로 있으니 일반적인 수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직원들의 눈치가 보여서 직무 책상에 앉아서 잠시 눈을 붙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간이 침상까지 들여와서 편안하게 낮잠을 즐기게 됐던 것이다.

“시장님! 일어나셔야 합니다.”“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피곤하셨나 봐요.”
“응. 어제 늦게까지 회의가 진행되다 보니, 잠을 거의 못 잤어.”
“네. 대단하십니다.”

어느덧 시장은 김 비서에게 말을 놓는다. 그리고 김 비서도 시장이 편안하게 대하는 거 같아서 싫지만은 않았다. 이대로 잘 적응만 한다면, 나쁠 게 전혀 없었다. 

“미안한데, 커피 한 잔만.”
“네.”

이미, 시장의 취향을 전해 들어서 김 비서는 시장이 자주 마시는 아메리카노를 준비해서 직무실로 들어갔다. 시장은 어디선가 걸려 온 전화를 받는 중이었는데, 쟁반을 들고 있는 김 비서를 보고는 손짓으로 잠시만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한다.

“미안. 그런데, 왜 한 잔이야?”
“네?”
“같이 마셔야지. 김 비서도 한 잔 마시지.”
“아, 네.”
“얼른 한 잔 더 가져와. 나만 먹으면 나쁜 놈 되는 거잖아.”

시장은 김 비서에게 한없이 자비로운 웃음을 짓는다. 쉰이 넘은 나이, 원래 동안은 아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젊어 보이는 시장이었다. 권력 한 스푼에 주름살 하나가 펴지는 놀라운 기적이 시장에게도 생긴 것이다.

김 비서는 바로 나가서 커피 한 잔을 더 가져온다.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원래 열린 마음의 소유자로 알려진 시장이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원래 상하 직책 간의 위계질서를 싫어하는 분이라서 그런지 이런 부분에서도 좀 남다른 부분이 있으시구나.’

시장은 김 비서가 들어올 때까지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처음에는 커피에서 아지랑이처럼 수증기가 올라왔는데, 김 비서가 다시 들어갈 때쯤에는 고요한 호수처럼 조용한 커피로 변해있었다. 

“시장님 커피가 다 식은 거 같은데, 다시 한 잔 가져다가 드릴까요?”
“아니. 원래 커피는 이 상태에서 마셔야 가장 맛있어.”
“아, 좋아하는 커피 취향이 있으시군요.”
“왜? 나 같은 사람은 그런 것도 없을 거 같아?”
“아닙니다. 그런 의미로 말씀드린 건 아니....”
“농담이야.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훨씬 귀여운 데?”
“네?”

당황하는 김 비서를 보면서 시장은 흠칫 놀랐다.

“그냥 내 딸 같아서 한 소리니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
“네.”

시장한테 김 비서는 정말 딸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딸이 아닌 김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밤 자리에서 최대한 점잔뺀 다음 날에는 김 비서에 대한 욕망을 거두기가 쉽지 않았다. 

‘어제 옆에 앉은 아가씨가 생각나는군. 김 비서랑 비슷한 또래 같았는데. 그 색정같은 황 의원만 아니면 나도 재미를 볼 수 있겠는데.’

시장이 원래부터 술과 여자를 싫어한 게 아니다. 오히려 좋아한 편이었다. 낯선 여인에게 느껴지는 색다른 기분이 그를 자극했다. 그러나 공인으로 알려지고 나서부터는 자제할 수밖에 없었고, 모처럼 기회가 생겨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선비나 샌님 대접해대니 애써 달아오른 욕정을 구겨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튿날이 되면, 처음에는 딸처럼 생각한 김 비서가 여자로 보이고, 기회가 되면 수작을 걸고 싶었던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김 비서와의 차이는 권력으로 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