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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36편: 소유냐? 자유냐?

조인 작가 승인 2020.10.11 09:20 의견 0

태초의 인간에게 자유가 있었을까? 아니면 소유가 먼저 있었을까? ‘자유 의지’를 생각하면 자유는 항상 공기와 같이 흘러 다녔다. 마찬가지로 모든 만물을 다스릴 권한을 인간에게 허락했으니, 소유 역시 자유와 함께 있었던 것이리라.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자유는 특권이 됐다. 그리고 소유도 특권이 됐다. 그리고 자유를 가진 소유주들은 다른 사람들의 자유와 소유를 박탈했고, 그들의 자유를 주거나 빼앗을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

같은 인간이었지만, 역사는 주인과 종을 구분하고 주인이 종의 자유마저도 손에 쥐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자유를 잃은 노예는 자유인의 소유가 됐다.

100년 전만 해도 조선이라는 나라에는 자유가 없었다. 철저한 신분제도 인간을 구분 짓고 할 일도 구분 지었다. 생김새는 같았지만, 신분에 따라 귀천이 나뉘어 졌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천한 것들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소유한 종들과 같이 행동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자유와 소유는 그들을 제한하는 울타리였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지금 자유가 있는가? 헌법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누구나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자유는 소유한 자들의 전유물이다. 자유는 경제 논리 앞에 고개를 감히 들지 못하고 있고, 여전히 많은 사람은 잘 알지도 못하는 이념 논쟁 속에서 실현해야 할 공기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연일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반색하는 국민도 있는가 하면, 오히려 미봉책이라고 하면서 비판하는 국민도 많습니다.” 

“부동산 대책으로 인한 혼선으로 실효성이 떨어지다 보니, 처음에 지지했던 국민도 지지를 철회하는 분위기입니다.”

“부동산 대책을 솔선수범하겠다고 나선 고위직 공무원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행태를 보여 줌에 따라 현 정권의 지지율이 당선 이후 최저치를 찍고 있습니다.”

서민 정권을 내세우면서 정권을 잡았지만, 그들의 패거리가 이토록 많은 부동산을 챙겼을 거로 생각지 않았던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직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부동산 정도는 포기할 거로 생각했는데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아직 내 것이 아니면 모를까? 이미 부처님 손바닥 같은 주머니 속에 들어온 땅은 쉽게 나가기 어려웠다.

“여보, 나 그만둬야 할 거 같아.”

“네? 무슨 소리예요?”

“고위직은 1주택 말고는 다 정리하라는 보도 들었지?”

“네.”

“그런데, 우리도 재테크로 부동산 좀 했잖아.”

“아, 그거 정리해야 한다고요?”

“응. 그거 정리하느니 지금 하는 일 관두는 게 낫겠어.”

“그러게요. 그게 얼마나 올랐는데.”

“평생 먹여 살려 줄 것도 아니면서....”

과거부터 왕권 수립이나 정권을 잡는 데 기여한 무리한테는 적절한 논공행상을 잘 진행해야 했다. 과거에는 금과 은, 그리고 전답으로 보답했다면, 현재는 적당한 직위와 함께 덩달아 따라오는 노른자 정보였다. 그러니 현 정권을 차지하는 작은 숟가락이라도 얹어 놓은 작자라면 작은 부스러기라도 기대하기 마련이었다. 이런 부류들은 상에서 떨어지는 찌꺼기라도 지나가는 개가 훑어 먹을까 봐 백태가 잔뜩 낀 혀로 날름 핥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지금 정권은 10년 전에 권력의 맛을 충분히 본 무리여서 지난 잃어버린 10년 동안 누리지 못한 산해진미를 먹기 위해 무수히도 줄 선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미 고위직을 차지한 무리는 직위에만 만족하지 못하고, 금전적인 보상까지도 두둑하게 챙기길 원하는 게 인지상정. 그들의 자리가 뜨거운 화로에서 방금 꺼낸 군고구마 같은 따뜻한 정보를 바로 접할 수 있는 위치이니, 당연히 돈이 될만한 것에 손댈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가만히 있으면, 병신, 멍청이 소리를 듣고 뭔가 켕기는 게 있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웬만한 직위에 있는 작자들은 장관이나 차관이라도 한다면 모를까? 공무원 봉급으로 5년 이후까지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현재 괜찮은 자리에 앉아있을 때 한몫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누구나 하고 있었다.

“왜 지지율이 이 모양이지? 강남에서야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지지층에서의 이탈은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

“고위 직무자들의 안이함도 있었고, 실제로 법을 만들고 집행해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으니 예상했던 혜택이 지지층에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참,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그렇다고 중단할 수도 없고.”

최악의 지지율을 경험하는 통수권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처했다.

‘철회하자니, 우스운 꼴이 되고, 진행하자니 지지율이 아쉽구나.’

“인간의 가질 수 있는 자유를 무시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외쳤던 시대에도 정치적 자유와 더불어 가질 수 있는 소유의 자유가 같이 있었습니다. 정경유착을 비판했던 이유도 가질 수 있는 자유가 보편화 되지 않고 일부에게만 특혜처럼 있었기에, 그렇게 붉은 띠 머리에 묶고 강경하게 나섰던 것이죠.”

“그렇다고, 지금 어르신의 생각을 거스를 수 있소?”

“그러면, 수석께서는 가지고 있는 집 다 파실 겁니까? 저는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어차피 정권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어허. 그런 소리를 어디서...”

“자유는 소유에 대한 자유입니다. 과거 구소련을 보십시오. 전체주의는 그 자유를 말살시킴으로써 무너지게 됐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많이 가질 수 있는 자유가 박탈된다면, 그래서 공평한 세상을 강제로 만들려고 한다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정권이 좌파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형평성을 염두하고 정책을 만들고 실행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인간은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합리적인 로봇이 아닙니다. 오히려 케인즈가 말한 ‘야성적 본능’이 넘치는 동물입니다.”

 
측근들도 가지고 있는 집을 처분하는 게 쉽지 않았다. 부동산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오르는 것도 아니고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하는 것인데, 정부에서 강압적으로 누르고 먼저, 청와대부터 솔선수범하자고 하니 그들 역시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래 취지야 좋다고 하자. 그런데, 우리가 정권 끝나면 남는 게 뭐가 있지? 지는 연금도 빵빵하고 전직 대통령 예우로 편안한 일생을 보내지만, 우리는 그렇지도 못하잖아. 그런데, 그것마저 뺏으면, 남아 있을 이유가 없지. 차라리 처음부터 이런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이라도 해주던지.’

땅과 집에 대한 욕망과 염원은 과거 ‘토지’시대부터 계속되어왔다. 그러다가 토지 공개념이 대한민국에서 ‘대천덕’신부로부터 시작돼 20세기 후반에 그 이상(理想)이 글로, 그리고 모임으로 조금씩 확산한 것이다. 하지만, 처음 정권 교체로 성공한 DJ 정권조차 그 이상이 너무 높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지금 정권이 토지 공유 철학 이 땅에 굳이 실현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두고 싶은 마음에서 어쭙잖게 시도했다가 오히려 자기 목을 조르는 모습이 됐다.

헨리 조지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지주였던 톨스토이는 자신의 땅을 농노들한테 다 나눠줬지만, 그의 이상 실현은 꿈에 불과했음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게 됐다. 기독교 정신에 감화돼 회심한 후에 저술한 『부활』에다가 삼 분의 일 이상을 헨리 조지 토지 공개념 사상을 서술했지만, 그의 대표작은 여전히 『전쟁과 평화』와 『안나까레니나』이다.

땅에 대한 집착은 하루 이틀에 걸친 욕망이 아니다. 그 욕망을 꺾는 것은 합리적인 보상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물론, 합리적인 보상이라는 부분도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그림이다. 아무리 좋은 떡도 배부른 사람한테 권하면 짜증 날 뿐이니 말이다. 

“우리의 공개념 사상과는 너무 달라요. 부동산 대책이란 게 결론은 개인 토지에 대해서 소유권을 인정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하지만, 과도기에 급격한 개혁은 독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는 게 아닐까요?”

“아니죠. 앞으로 현 정권이 계속 유지된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혹, 정권이 유지되더라도 대통령이 바뀌면 그 철학은 바뀔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박 간사께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원론적으로 토지는 공동의 것이니 몰수해야 합니다. 물론, 강제적으로 몰수할 수는 없으니, 적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국가의 재산으로 귀속해야 합니다.”

“적정한 대가라면 어느 정도 수준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으나, 전국 토지에 거의 비슷하게 값을 매겨야 합니다.”

“강남이나, 강원도 정선의 땅 한 평이 거의 같게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땅으로 재산을 불릴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서울에 사람들이 몰려 살 이유가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지역 간 균형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네. 그런데, 헨리 조지의 시대와 현대는 너무 다르지 않을까요? 젊은 세대의 가치관도 꽤 다르고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여전히 지대는 자본주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성실하게 노력하고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창의적인 것을 개발해서 얻은 결과보다 좋은 땅을 물려받거나 투기하는 게 더 나으니, 누가 열심히 일하려고 하겠습니까?”

이상주의도 아니고, 현실주의도 아닌 애매한 외줄에 놓인 부동산 정책은 지지자들한테도, 반대자들한테도 동의를 얻기 쉽지 않았다. 남이 좋다고 하니 ‘좋은 것이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대에 살지 않는다. 소유에 관한 생각의 자유만큼은 쉽게 뺏을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잉잉대는 작은 생각의 소음들을 제거할 수 있는 기계는 세상에 없고, 그런 기계를 만들 수도 없었다. 

“지지율이 좋지 않습니다.”

“어찌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지?”

“아무도 손대지 않은 영역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인제 와서 포기할 수 없습니다. 밀어붙여야 합니다.”

정책의 부족한 이해와 무리한 실행으로 지지율이 당선 이후 최저치로 떨어지고, 차기 정권도 문제없을 거라는 생각도 정당 지지율이 야당에 밀리자 내부에서도 위기의식이 곧 터질 것 같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끈을 놓으면 안 된다. 모두 날아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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