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메뉴

[小說-대‘한심(寒心)’국] 40편: 코로나 걸린 목사(3)

조인 작가 승인 2020.11.22 15:45 의견 0

행정직원의 이야기를 들은 목사는 순간 ‘걸렸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장의 당혹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잠시 생각했다. 현 상황에 확진은 당연히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치료받는 게 맞지만, 그렇게 정상적으로 움직일 경우 앞으로 진행할 집회는 물론, 정부를 비판하면서 스스로 선지자처럼 선전했던 모든 상황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낭패다. 어찌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잠시 생각을 거두고 정면을 응시하니, 아직 행정직원이 나가지 않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두려움으로 가득했고, 어제 함께 식사했던 걸 염려 하는 게 분명했다. 사실, 어제도 그녀를 목사 옆에 두고 싶어서 같이 식사하자고 했던 것이다. 행정 직원은 목사의 음흉함을 알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단번에 거절할 수 없었던 자신을 원망하는 모습이었다.

“별일 아닐 거야. 단순 감기일 테니, 너무 걱정말고. 나가봐요.”

말이 입을 떠나자마자, 행정직원은 몸을 돌려 빠르게 사라진다. 그 장면을 누군가 봤다면, 정말 싫은 벌레라도 보듯 움직인 거 같아서 상대가 당연히 모욕감을 느꼈을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 행정직원은 한마디도 더 섞기 싫었기에 최대한 빠르게 사라지고 싶었을 뿐이다.

‘어제, 아니다. 요즘 계속 목사랑 같이 밥 먹었잖아. 에휴~~’

그녀의 불안한 마음이 현실화되는 데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같이 일하는 직원, 그리고 가족까지도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오직 한 사람의 죄로 인해 인류에게 부당한 원죄가 생겼고, 오직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인류의 구원이 완성됐다는 말씀이 갑자기 떠 올랐다.

‘아, 목사 한 명이 참 여러 사람 힘들게 하는구나! 내 능력을 탓해야지 누굴 탓하겠나?’

그러면서도 ‘혹시’라는 기대는 버리지 않았다.

목사는 행정직원이 나간 후에 잠시 눈을 감는다. 도대체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면이 꽉 막힌 방에 갇혔는데, 갑자기 벽들이 움직여서 곧 몸을 누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음. 일단 살아야 하니, 병원에 가자. 그게 방법이다. 어차피 나를 지지하는 사람은 지금 정권이 싫어서 지지할 뿐이니, 내가 코로나에 감염됐다고 해서 나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모양새가 영 별로구먼. 그리고 이 문제는 장 변호사랑 상의해 봐야겠어. 그 사람이라면, 대책이 있을지도 몰라. 수를 쓰는 데는 나보다 한 수 위니까.’

인류 역사의 주인공은 대부분 남성이다. 그러나 가끔 한두 명씩 이름을 올리는 여성들이 존재한다. 성경 신약에 등장하는 예수의 족보에도 여성의 이름이 등장하는 걸 보면, 그녀들의 존재감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녀들이 단순한 현모양처(賢母良妻)였다고 생각할 수 없다.

구약의 여성으로 나오는 ‘라합’은 기생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녀는 견고한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넘긴 매국노였다. 성경은 그녀에게 변절자라는 배신자의 언어 대신, 메시아의 조상이라는 뜻밖의 칭호를 부여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트로이 목마같은 여성은 이제 신의 조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수백 년이 흘러서 새로운 여성이 등장한다.

아마도 그녀는 라합과 같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나 보다.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한 처녀였다. 그런데도 성령의 힘으로 예수를 잉태했다. 성경에서 아버지 요셉은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가 죽는 순간, 그리고 부활한 이후에도 등장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고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은 인물이다.

한 명은 이스라엘 민족의 승리를 위해 자기 민족을 버린 여인이고, 한 여성은 지고지순한 여성이다. 극과 극의 여성들은 성경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유명한 책에 실려 지금까지도 알려진다.

그리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에 기록된 여성들은 남성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혹은 남성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 어찌 남성의 이름만 빼곡하게 가득 찬 지면에 여자의 이름을 새길 수 있었을까?

“네. 목사님”

장 변호사는 목사의 이름이 뜨자마자, 불길함을 느낀다. 처음에는 정치적 목적이 같아서 같은 배를 탔지만, 요즘 같아서는 배에서 내리고 싶은 마음인 간절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앞으로 나올 보상을 걸고 유혹하니 뭐라도 남겨야겠다는 심산에서 계속 동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최근 집회의 부정적인 여론으로 인해서 변호사 노릇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이번 일로 자신의 몫을 단단히 챙겨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장 변을 만나기는 좀 그렇고, 상의할 일이 있어서.”
“네. 말씀하세요.”
“내가 아마도 우한 폐렴에 걸린 거 같아.”
“네?”

이상하게도 길몽이라고 생각한 꿈은 잘 맞지 않지만, 흉몽은 그 찝찝함이 계속되다가 현실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장 변호사는 최근에 괜히 불안하고 초조하고 가슴이 두근두근했는데, 목사의 전화를 받고 나니 모든 게 해소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장 변의 지혜가 필요할 거 같아서.”
“아, 네.”

목사는 ‘네가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거야’라고 생각하며, 음흉하게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장 변호사는 반대로 미간에 주름이 짙게 생겨 나이를 가린 화장마저도 그 깊은 골을 감당할 수 없었다.

“어차피 우리가 같은 배를 탔으니, 어쩌겠어. 그리고 나도 이런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하죠. 하지만 너무 뜻밖의 일이어서요.”
“그래도 무너진 하늘에도 솟아날 방법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네. 그래도 시간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거짓말은 단순 비례 법칙이 아니라 지수의 법칙으로 확산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마음에 찔려 표정에 드러나기도 하고, 행동도 어색할 수 있지만, 익숙해지면 거짓말을 진실로 믿게 된다. 그러면 거짓말도 진실처럼 말하는 능력이 생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식의 입시 비리 문제가 온 세상에 퍼졌어도 그 부모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서 하늘의 별이라도 따려는 무모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잘못 걸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장 변호사는 최근 들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자주 쉰다. 이미 덫에 빠져서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고통만 더해 올 뿐이다. 덫에 빠진 짐승은 사냥꾼이 돌아와서 덫을 제거해 줄 때를 기다려야 한다. 물론, 사냥꾼은 덫에 걸린 짐승에게 자유를 돌려주지 않는다. 최소한 우리에 가둬서 사용처가 정해질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그러다가 적당한 기회에 팔던지, 혹은 잡아먹는다.

하지만 어떤 짐승이 그런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겠는가? 덫은 짐승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니 교훈을 남길 수 없다. 만약 살아나간다면, 다른 짐승들에게 길가에 무심코 보이는 먹이는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덫에 물린 발목을 절단하지 않고서는 그런 몸짓을 보여 줄 수 없다. (계속)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