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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41편: 대한민국 군대(1)

조인 작가 승인 2020.12.13 09:55 의견 0

“오빠 군대 꼭 장교로 가야 해? 사병으로 가면 2년도 안 한다던데, 오빠가 가는 학사 장교는 40개월이던데 너무 길다.”

이미 장교로 지원한 지원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군대 문제를 생각했을 때 단 한 번도 사병으로 입대한다고 생각한 적 없었는데, 사랑하는 여자 친구의 말에 굳건한 마음에 구멍이 뚫리고, 확고한 머리의 흐름이 흔들렸다.

“이미, 지원했는걸. 그리고 사병보다 장교가 자주 나올 수 있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병과 비교할 때 학사 장교의 복무 기간은 거의 두 배에 달했다. 대체로 많은 연인이 일병을 달기 전 헤어지는 걸 보면, 지원도 이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떨어져서 못살거 같지만, 인간은 어쨌든 적응의 동물 아니던가? 몸이 멀어지면, 당연히 마음도 멀어지고 그러다 보면, 가까이 있는 새로운 사람이 더 다정해 보이기 마련이다.

군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가슴이 답답해 왔다. 모든 게 시한부였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고 있어도 입대 날을 생각하면 시한부 환자와 다를 바 없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구나!’

그러지 않아도 장교 입대를 준비하면서 계속 들었던 이야기가 “넌 언제 군대 가냐?”라는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장교 준비하고 있어서요.” 그러면 꼭 사병으로 전역한 사람들은 부정적인 경험을 말하면서 부정적인 말을 내뱉는다. “장교로? 그거 길고, 그렇게 도움 되지도 않을 텐데.”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일을 마치 예언하듯 주절거린다. 그럴 때마다 지원은 “그래서 사병으로 전역한 당신들의 삶은 좋습니까?”라고 쏘아붙이고 싶다.

아우리 주변에서 뭐라고 해도 지원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사병으로 입대할 경우 나이가 많은 편이었고, 그 상황에서 겪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장교로 입대해서 길게 있는 게 낫다고 여겼다. 그런데도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야 한다는 아픔은 잠시 숨어있다가 등장한 망설임으로 마음가짐을 흩어지게 한다.

‘휴, 내 청춘이 여기서 끝나는구나.’

지원은 갑자기 자신의 나이를 생각해 본다.

‘지금 스물다섯, 전역할 때쯤이면 스물아홉. 그리고 2개월 있음 서른이구나.’

김광석의 “서른 즈음”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21세기가 20년이 지난 지금은 서른이라는 나이가 어리석은 수준의 숫자에 불과하지만, 2000년대 초반, 이십 대 청년 지원은 서른은 곧 남자의 상징적인 나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인간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동물이다.

“진섭아 너 다음 주에 군대 간다며?”
“응, 강원도 101 보충대까지 가야 해!”
“누가 데려다준대?”
“응, 광원이가 어머니 차를 가져오기로 했고, 너도 갈 거지?”
“당연히 가야지.”

진섭은 고등학교 동창 중에 가장 먼저 입대를 예정했다. 지난달에 만났을 때만 해도 실감 나지 않았는데, 오늘은 단지 통화만 했을 뿐인데도 진섭이의 축 저친 어깨가 보이는 듯하다. 대학에 들어가지 않았고, 컴퓨터 관련 자격시험을 준비하다가 입대하는 거여서 제대로 사회 맛도 보지 못하고 군대에 가게 된 것이다.

“군대에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

숱하게 들은 복학생과 나이 든 사람의 말이었다. 정작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됐을까? 꼰대가 된 것은 확실한 거 같은데, 그들이 말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들이 말하는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의 말에 순종하는 게 전부인 것만 같았다. 조금이라도 자기 주장이 강한 후배를 보면, 항상 “네가 군대를 안 다녀와서 그래.”라는 말로 자신의 불합리성은 그대로 둔 채 대드는 후배의 군대 미필 경험을 대검처럼 꺼내 든다. 그러면 그 후배는 조소하듯이 “내가 군대 다녀오면 형처럼은 안 합니다.”라고 소리친다. 알고 보면, 이 선배도 과거에 윗 선배에게 똑같은 말을 했던 사람이다. 그저 군대에 다녀오고 나서 그가 듣기 싫었던 말을 후배에게 대물림 하는 것이다.

“자기야, 세상에는 여자, 남자, 군인이 있다는 말 알아?”
“응. 들어봤어.”
“이제 자기도 군인 되는 거네.”

아민은 최근에 입대 준비로 많이 수척해진 지원의 마음을 애써 다독이려고 노력한다. 최근에는 입대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서 그전보다 자주 만나고 있다. 누가 보면, 마치 부부로 느껴질 만큼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헤어질 때마다 지원과 아민은 눈물을 흘렸다. 무슨 공식과도 같이 만날 때는 웃으면서 만나지만, 헤어질 때는 영영 이별이라도 하듯이 눈물을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지원은 대한민국 신체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군대에 가는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잠시 떨어져야 하는 애인한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했다. 그리고 기다리는 연인은 영영 헤어지는 게 아닌데도 슬퍼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일을 하는데도 매일 눈물을 흘릴 만큼 애달픔이 있는 것이다.
지원은 아민에게 죄인이었다. 혹, 고무신을 거꾸로 신더라도 그녀를 책망할 수 없었다. 이별의 원인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지원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병역의 의무를 무조건 수행해야 하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문제였다.

1997년은 경제적으로는 초유의 국가 부도 사태를 대통령이 선언해야 했던 충격의 해였다. 마침, 대선도 있는 해여서 경제적 참혹함 속에서도 정치적 이슈를 머릿속에 넣고 다녀야했다. 정부 수립 최초로 야당 후보가 여론 조사에서 여당 후보를 앞지르고 있었지만, 선거는 뚜껑을 열어보지 않으면 그 내용물을 알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선거는 늘 ‘미워도 다시 한번’이었다.

이런 국가 부도 위기 속에서도 야당 후보는 여당 후보를 압도하지 못했다. 지역이 찢어져 몰표를 주는 상황이었고, 여당은 인구로 볼 때 야당 텃밭의 두 배가 넘는 유권자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여론 조사는 박빙이었다. 이런 현상은 여당에서 한 후보가 과거 경제 대통령을 흉내 내면서 뛰쳐나간 후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야당 후보는 이런 상황 속에서 과거의 정적이었던 세력과 결탁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선거 결과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여당 후보의 아들이 군대를 면제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거 잘됐네요. 그거 이용합시다.”
“사실, 그쪽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아들 군대 보내면 바보라는 소리를 듣는 곳이어서요.”

좀 사는 집의 자녀들은 신의 아들이라고 해서 군대에 안 가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정말 어렵지 않게 면제받을 수 있었다. 한두 명이 편법으로 면제받으면 이상할 수도 있지만, 비슷한 부류의 자녀들이 너나 할 거 없이 군 면제를 받으면 병무청도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위에거 ‘까’라고 하면 ‘까’야 하는 게 그 시절 오래 사는 길이었다.

“그러니 잘 됐죠. 이참에 그 동네 사람들 적으로 돌리고, 우리 편을 제대로 만들면 될 거 아닙니까? 아마 이 이슈 터지면 60만 현역들이 여당을 찍지는 않을 겁니다.”
“음.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한 번 작업해 보겠습니다.”

과거라면 별거 아닐 일이 순식간에 대형 사건이 됐다. 여당 후보의 자제가 군대 면제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석연치 않았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사실상 불법적인 병역 기피였다. 여당은 서둘러 대응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유학하고 있는 아들들이 서둘러 귀국해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당당할 수 없었다. 체중계를 밀어 넣는 기자들의 시선을 회피하고 체중계에 올라가라는 요구를 도망치듯 피해서 기자 회견장을 떠나 버렸다.

여당 후보의 아내는 방송에 나와서 클린턴 힐러리처럼 남편을 비호 하려고 했으나, 진정성 없는 사과와 부잣집 행색은 오히려 유권자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만 심어줬을 뿐이었다.

치열한 선거 일정이 끝나고 대망의 선거 날, 1997년 대선은 대한민국 최초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해였다. 그러나 그 표 차이는 50만 표도 채 나지 않았다. 제3의 후보가 여당 후보의 표를 잠식하고, 중부권 세력과 결탁하고, 병역 문제를 터뜨려서 얻은 승리였다.

“어허, 이거 참.”

대쪽같은 이미지로 정평이 나 있는 여당 후보였지만, 대쪽이 안으로 굽는 갈대일 줄은 자녀 문제가 등장할 때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표 차이가 얼마 나지 않습니다. 자제분들 때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쪽에서 다른 후보가 독립적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당선하셨을 것입니다.”

아직 여당 후보는 그 가치가 소멸하지 않았다. 막판 변수만 없었다면, 그가 대통령이 됐을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야당 후보조차도 신승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다시 시작합시다. 5년 잘 준비해서 압승합시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IMF는 극복했다는 평가를 얻었지만, 대통령을 이어서 새 대통령이 될만한 인물이 여당 쪽에 없는 듯했다. 모종의 합의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과거 여당에서 독립해 현 정권 수립에 1등 공신이 된 후보가 여당에 입당해서 후보 1순위가 돼 있었다. 사실, 지난 대선에 3위를 했으니 야당 후보와 경합할만한 후보로는 제격이었다. 어차피 정치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의리 따위는 없는 것이니 그가 탈당했다고 해서 욕할 사람도 없으며, 기회를 노려 여당에 입당했다고 해서 탓할 사람도 없었다.

‘나도 한 번 대통령 해보자. 지난 선거에는 충분히 가능성을 보여줬으니, 이번에는 대권을 잡을 때가 됐다.’

그러나 세상일은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최초로 국민 참여 경선으로 후보를 추대하려 했기 때문에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경선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2002년은 대한민국 월드컵 4강만큼이나 뜻밖인 일이 정치권에서 이뤄졌다. 여당에서도 비주류에 속했던 한 후보의 돌풍이 연이어 일어났다. 처음에는 차차 바람이 줄어들거라 생각했지만, 그 바람은 멈출 줄 몰랐다. 온갖 인신공격이 이어졌지만, 정직하게 극복했다.

그렇게 누구보다 강직하고 서민 냄새가 지독히 밴 후보가 초기의 부침을 뚫고 당당히 선두에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5년 전의 경험과 이후 압도적인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지를 받았던 야당 후보는 긴장해야만 했다.

“아니, 이건 개나 소나 대통령 한다고 나서고 있으니 뭐야? 저기 축구 좀 하게 해줬다고 대통령 한다고 나오는 건 뭐냐고?”

월드컵 유치에 성공한 재벌가의 아들 정 총재도 대선에 뛰어든다고 선언했다.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성적이 저조했다면, 몰랐을까? 4강 기적을 이루다 보니, 정 총재의 지지율이 느닷없이 수직 상승한 것이었다. 그리고 여론은 신나게 3파 전을 조사했다. 3파 전일 경우 무조건 야당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됐다.

“우리 쪽 유리할 일이 아닙니다. 정 총재 성향이 명확하지 않지만, 야당에 유리한 상황으로 흘러 가는 듯합니다.”
“음. 그러게요. 재벌인데도 이상하게 야당 표를 잠식하지 않으니...”

이미 여유롭게 선두에서 달리는 야당 후보였지만, 5년 전 악몽은 트라우마가 돼 만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 총재의 출신을 생각하면, 본인에게 유리할 거 같지 않았다.

“이거 이러다가 지난 선거 꼴 되는 거 아닌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론 조사 격차가 크고, 저 둘이 단합하지 않는 한 후보님을 추월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여당 후보도 돛을 달고 순풍을 받아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지만, 야당 후보의 관록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지는 좋았지만, 정치적 권력의 비주류에 머물렀던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당내에서도 좋지 않았고, 선거 승리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 커졌다.

“정 총재와 단합을 생각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쪽에서 우리와 단합을 원할까?”
“사업가 아닙니까? 정 총재도 지금 상황에서는 당선되기 힘들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가 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 여론 조사로 결정한다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습니다. 아무리 인기가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정치적 동원력이 있습니다.”
“하기야 그렇겠군.”
“하지만, 야당 쪽 반발이 만만치 않을 텐데.”
“후보님 아직은 우리가 여당입니다. 그리고 대통령께서도 우리를 위해서 한 번 정도는 힘써 주실 것입니다.”
“알겠네.”

지난 선거에서도 어울리지 않는 정치적 세력의 결탁이 있었다. 한 번은 어색해도 두 번은 쉬운 법이다. 그리고 여당의 생각대로 정 총재도 통합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리에게 통합 제안을?”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차피 현재 지지율을 고려했을 때 이 상태로 나가면 야당 후보가 당선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단합을 도모해서 시너지를 기대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내가 후보가 된다는 보장도 없잖아?”“그렇습니다. 하지만 일단, 후보가 되지 못하더라도 여당이 다시 정권을 재창출한다면 지분 행사를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후보가 되신다면 여당이 조직적으로 후보님을 도울 것입니다.”
“음. 나쁘지 않네.”

단합 후보 결정은 한판 승부로 결정하는 걸로 정해졌다. 야당의 반발이 이어졌지만, 선거관리위원회는 토론회 1회와 여론 조사 결과를 반영해서 단합 후보를 결정하는 것까지 인정해 줬다. 아무리 레임덕 기간이라고 하더라도 여당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야당 측도 더 거세게 반대하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저들이 단합한다고 해도 후보님의 지지율을 넘기기 힘들 거로 예상합니다.”
“그래도 신중히 봐야 해.”
“맞습니다. 하지만, 혹 단합한다 하더라도 끝까지 유지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왜?”
“정 총재는 사업가입니다. 혹 본인이 후보가 되지 않으면 어려운 요구를 제시해서 여당 후보를 난처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지지를 철회하면 오히려 역풍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당 후보가 단일 후보가 되지 못한다면 여당의 대표가 일개 무당파에게 진 꼴이니 맥 빠져서 선거 운동을 제대로 도와 줄 리가 없습니다.”
“음. 말을 듣고 보니 그렇구먼.”

야당 후보는 적절한 분석이라 생각하면서 대관식을 상상하고 있었다.

‘지난번은 뜻밖의 변수가 있어서 졌다고 하지만, 이번에는 또 당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토론회 결과 여당 후보가 정 총재를 이겨 단합 후보가 됐다. 정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었다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토론회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정 총재는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축구 대통령이 국가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결과는 국가를 위해서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선거 유세 며칠 동안 두 후보는 승부에 승복하며 동행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이 둘의 시너지는 예상보다 컸다. 그리고 지지율이 오를수록 여당 후보의 지분보다 정 총재의 지분이 커지는 느낌이었다.

“총재님 이제 우리의 요구 사항을 정리해서 보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적어도 내각의 절반 정도는 우리 사람으로 세울 수 있도록 하고, 차기 후보로 총재님을 내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안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좀 거하지 않나?”
“아닙니다. 현재 수준이면, 분명히 받아 줄 거라 확신합니다. 혹, 절충하더라도 이 정도는 제안해 놓아야 우리 몫이 많아집니다.”
“음. 그렇게 하도록 하게.”

그러나 정 총재는 모르는 게 있었다. 사업과 정치는 같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여당 후보는 비주류였지만, 정치의 길을 쭉 걸었다는 사실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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