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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인터뷰] 국내 의료계 '태움' 다룬 <인플루엔자> 황준하 감독 "시스템과 의료환경 개선 위해 관객들이 고민해주길"

- 'MZ세대' 황준하 감독의 장편 데뷔작, 국내 의료계의 고질적인 '태움' 문제 다뤄
- 영화 제작 위해 간호사 커뮤니티에서 '태움' 가해자와 피해자 직접 인터뷰
- '태움'은 시스템의 문제, 많은 이들의 도움 필요한 만큼 관객들이 사유하며 해답을 모색할 수 있길

글렌다박 기자 승인 2022.08.23 13:59 | 최종 수정 2022.08.23 14:20 의견 0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주목받은 신예 황준하 감독의 장편 데뷔작 <인플루엔자>가 8월 25일 개봉한다. 국내 의료계의 고질적인 ‘태움’ 문제를 다뤘다.

작품이 의료/간호계의 병폐를 다루지만, 그 배경이 지방 소도시 2차 병원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게 인상적이다. 애매한 크기와 소규모 집단에서 일어나다 보니 3차 병원의 대규모나 기업 또는 대학이 얽힌 병원처럼 사건이 부각되어 피해자가 보호받기도 어렵다.

작품은 밝거나, 어둡지도 않고, 미온하고 퉤퉤 묵은 톤을 깔아 마치 우리 눈에 안 보이는 황사나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는 것을 연상시킨다. 주인공 신규간호사를 연기한 배우 김다솔과 추선우를 비롯해 안서희, 김수지 배우 등 간호사로 분한 모든 출연진이 폭력의 대물림을 현실감 있게 표현해냈다.

태움이 어떻게 대물림되며 극단적 선택을 끌어내는지 보여주는데, 관객으로선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쉽게 다가온다. 언제나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MZ세대' 황준하 감독의 보여주는 새로운 반란이 아닐지. 그를 통해 작품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Q. 장편 영화 데뷔작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A. 작년에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기 전에는 굉장히 떨리고 설레고 그랬는데요, 이번에 일반 개봉을 앞두고는 오히려 담담합니다. 개봉에 필요한 여러 작업과 개인적인 일들이 겹치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요. 개봉한 이후에야 조금씩 실감이 날 듯해요.

Q.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기억에 남는 주변인들의 반응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주위에서 축하를 많이 받았어요. 저도 그렇고 다른 제작진들도 아직 학생이신 분들이 많다 보니 학교에 알려지기도 했고요. 동시에 시기 질투도 많이 받고 부담도 많이 되고 그랬습니다.

Q. <인플루엔자>라는 작품명이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의료·간호계의 '태움'은 민감한 이슈인데 어떤 계기로 이 소재를 작품에 담게 되었나요?

A. 제가 고3 때 메르스 사태를 겪었어요. 그때 제가 지내던 광주광역시와는 달리 서울에는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녔어요. 입시를 위해 실기를 보러 서울을 돌아다니면서, 무언가 기이하다고 느꼈고 점차 전염병이 퍼지는 방식이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원리와 되게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듬해에 입학한 서울예술대학교 1학년 시나리오 워크숍에서 <인플루엔자>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썼는데, 제목만 같지 지금과는 아예 다른 이야기였어요. 작은 시골 마을에 전염병이 퍼지는 상황에서 영화과 학생들이 영화를 촬영하는 이야기였는데, 촬영은 안 하고 시나리오만 하드 깊이 묵혀두었습니다.

3년이 지나고 복학을 하게 되면서 무슨 작품을 할지 그동안 집필했던 시나리오를 쭉 보았는데, <인플루엔자>가 떠올랐어요. 당시 간호사의 ‘태움’ 문제가 화두였거든요. 제가 신문도 항상 챙겨보고 그간 찍어온 작품이 모두 사회적인 이야기를 담다 보니 아무도 작품화하지 않았던 ‘태움’을 주제로 피해자분들의 애환을 담아야겠다고 느꼈습니다.

Q. 의료·간호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어떻게 취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실제 느낀 ‘태움’의 실상은 어땠나요?

A. 우선은 간호학개론을 읽어 보며 용어에 익숙해졌습니다. 도서관에 있던 간호학 관련 책은 모두 다 대여해 읽었던 것 같아요. 또한 간호사 커뮤니티에서 ‘태움’ 가해자 두 분과, 피해자 열 분 정도를 직접 대면하거나, 익명 대화를 통해 자세히 인터뷰 했습니다.

취재하며 느꼈던 건 결국 ‘태움’이라는 게 열악한 근무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에 개인이 변질하고 폭력이 전이되는 특성을 갖게 된다는 점입니다. 비단 간호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가령, 신입자에게 일을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했는데, 신입이 또 다른 신입을 교육해야 하는-상황들이 겹치었습니다. 결국 한국 사회의 병폐적인 풍경이라고 느꼈습니다.

Q. 4:3의 비율로 과거와 현재 이야기의 화면비를 달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시나리오부터 2.35:1과 4:3으로 나누자고 생각했습니다. 병원 장면이 대부분인 과거는 좁은 공간에서 인물이 갇히는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4:3으로 제작했습니다. 반대로, 차나 인파들처럼 레이어가 넓게 보여야 하는 도시가 주된 공간인 현재는 2.35:1로 촬영하였습니다.

Q. 김다솔, 추선우 등 극 중 배우들의 활약도 인상적이었어요.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떠했는지 듣고 싶습니다.

A. 제가 배우를 볼 때 같이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두 가지인데요. 첫 번째는 눈입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생각하는데, 눈이 맑을수록 보이는 연기가 다른걸 느낍니다. 두 번째는 순수한 마음이에요.

주로 출연하셨던 배우님들 대부분이 같은 학교(서울예대) 동문입니다. 김다솔 배우 경우 제가 스무 살부터 다른 촬영장에서 만나 알고 지내던 선배였어요. 김다솔 배우는 제가 눈과 순수한 마음, 두 가지 모두 너무나 잘 충족하는 것 같아서 꼭 같이하고 싶었습니다. ‘인플루엔자’를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염두에 두고 썼고, 캐릭터 이름도 ‘다솔’이에요.

추선우 배우님은 동료 프로듀서께서 학교에서 같은 수업 듣는 분을 추천해주셨는데 그분 출연작을 제가 이미 보았기에 딱히 오디션 없이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작품을 구체화하고 있는 단계라 아직은 큰 생각 없지만, 마음이 똑같이 순수하다면 저는 이번 작품에서 함께한 배우들과 재작업을 안 할 이유 없다고 생각합니다.

Q. 감독님께서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A. 영화가 꼭 대안을 제시할 필요 자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캠페인 영상도 아닌 이상 솔루션을 꼭 제공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꼭 해답을 내리지 않더라도,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보여주며 질문을 던진 후, 관객들이 사유하며 해답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캠페인 작품과는 다른 창작이 고유한 강점이라 생각합니다.

시청하기엔 조금 불편하겠지만, <인플루엔자>는 분명히 지금도 어디 병원에선가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들이며, ‘왜 태움이 이루어지는지’, ‘왜 극 중에서 다솔이 은비에게 함부로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고민을 관객들이 좀 더 해주시길 바랍니다. 결국 시스템의 문제이고, 의료환경이 개선되려면 많은 분의 노력이 필요하니까요.

Q. 작품의 관람 포인트 3개를 꼽아주세요.

A. 롱테이크, 기침, 캐릭터입니다.

Q. 독립영화로 관객과 처음 만나게 되셨는데 독립영화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A. 독립영화는 다른 말로 다양성 영화입니다. 작품의 가치와 방향성, 그리고 표현법을 존중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불편한 것을 싫어하고, 어느 때보다 거부하는 시대이지만 삶에는 분명 명(明)과 암(暗)이 존재하고, 예술에는 미(美)와 추(醜)가 존재합니다.

인간과 사회를 그려내야 하는 영화에서, 아름답고 고급지고 따뜻한 것만 보여주는 현상 자체는 판타지라 생각합니다.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기존과는 다른 관점으로 표현하며 ‘질문하는 영화’들은 꾸준히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인플루엔자'를 꼭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지, 예비 관객들에게 한 마디 남겨주세요.

A. 모두 아프셔서 병원에 가보신 경험이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간호사분들이 아파하십니다. 여러분의 건강을 책임지는 간호사들의 건강을, 이제는 여러분들이 챙겨주세요. 그 시작이 <인플루엔자> 관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진=아이 엠(eye m), 황준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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