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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6편: 공무원이 되는 길(上)

조인 작가 승인 2019.09.28 09:00 의견 0

나는 종종 구청에 전화를 건다. 뭐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걸기 때문에 한 번에 원하는 부서를 찾지 못한다. 그래서 민원실에 전화해서 담당 부서를 연결받는다. 수신음이 몇 번 울리고 나면 누군가 전화를 받는데, 대부분 내가 원하는 담당자가 아니다. 물론, 부서는 맞다. 

하지만 전화 받은 사람이 내가 원하는 답변을 해줄 수 없을 뿐이다. 그래서 “네, 연결해 드리겠습니다.”라는 음성을 듣고 처음에 울렸던(조금 다른가?) 수신음을 또 잠시 듣는다. 그리고 다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면, 똑같은 이야기를 세 번째 하는 나를 보게 된다. 그래도 여기서 만족할만한 답변을 들으면 괜찮은데, 종종 인지, 자주인지 담당자가 부재중이거나, 출장을 갔거나, 휴가를 갔다면? 나는 이 일을 담당자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말 다행스러운 건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공무원들이 친절하다는 거다. 

중학생 때는 판사가 되고 싶었다. 흔히 말해서 꿈이라고 하는데, 그 시절에는 공명정대(公明正大)한 판관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당시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한 말씀 하셨다. 

“일제시대에도 조선인 판사가 있었단다. 그런데, 그 판사들이 많은 독립운동가를 감옥에 보냈지.”

그 말을 듣고 나니, 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꼭 비 온 후 잠시 떴다가 사라지는 무지개마냥 마음속에서 사라졌다. 어린 청소년의 담임 선생님은 한 문장으로 꿈을 증발시켰던 거다. 지금 같으면, 그런 사제 간에 그런 상담도 없을 거고, 연예인을 꿈꾸는 제자를 대상으로 ‘딴따라’라고 하면서 비판할 교사도 없을 것이다.  

이후로 꿈이 사라진 어린 중딩은 방황의 사춘기를 달렸다. 꿈이 보이지 않으니, 삶에 어떤 가치를 두고 살 수 있었을까? 지독히도 가난한 집에서 탈출하는 길은 출세뿐, 바로 고시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사’자 돌림 직업을 꼭 구하고 싶었는데, 명분이 사라졌다. 학과목 중에서도 도덕 시험은 항상 100점 맞았던 중딩이었기에 정의를 실현하기 힘든 판사는 더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 시절 사법고시는 우리나라 최고 경쟁률을 자랑하던 시험이었는데, 수십 대 일은 됐다. 이후 행정고시, 언론고시 등 좀 어렵다고 하는 시험은 다 ‘고시’를 접미어처럼 뒤에다 붙였는데, 언젠가부터는 교사임용시험도 교사 임용고시로 한 단계 신분 상승하게 됐다. 최근에는 공무원 시험도 뒤에 고시를 붙여서 공무원 고시라고 표현한다. 본래 고시는 고등고시의 약자라고 하는데, ‘고등’의 ‘고’가 높을 ‘高’이기 때문에 보통 5급 이상을 뽑는 시험에만 고시를 붙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고시 경쟁률 보다, 9급 공무원 시험이 훨씬 더 높은 경쟁률을 보인다. 5,000명을 뽑는데, 300,000명이 몰려서 600대 1의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원래 쉽다고 여겨지면, 개나 소나 다 들러붙는 법이다. 학창 시절에도 만만해 보이는 애들은 이래저래 맞고 다니는 게 일이다.

하지만, 체격도 작고, 싸움도 못 하는 녀석이라도 눈에 독기를 품고 맞으면서도 덤비면, 다음부터는 쉽게 건드리지 않는다. 아무리 강자라 불리는 녀석도 종종 독기 품은 녀석의 행운의 펀치라도 한 대 맞으면, 기존에 쌓았던 아성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트라우마가 생긴다. 이러한 사실은 과거 아우슈비츠에서도 있었다. 

독일군이 수많은 유태인을 총으로 죽이고, 가스로 죽이고, 실험 삼아 죽이고, 때려죽이고, 심심하면 죽이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죽였는데, 모두 죽일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잔인무도한 독일군이었지만, 그들도 인간이기를 소망하고 자존심을 유지하는 유태인을 함부로 죽이지 못했다.

당시, 유태인에게 배급되는 물은 하루에 한 컵 정도였다고 한다. 한 컵으로 하루를 산다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한숨에 털어 넣어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을 정도니 말이다. 그런데, 이 적은 양의 물로도 인간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은 그 물을 나눠서 세면도 하고, 이를 닦았던 것이다. 글로 읽어만 봐도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독기 품은 유태인들은 쉽게 처형할 수 없었다. 독일군이 쉽게 죽일 수 있었던 유태인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동물 같은 유태인이었다. 당시, 유태인 수용은 돼지를 키우는 돼지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대변과 소변을 아무 곳에나 배출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배설물은 옷과 몸에 묻어서 역겨운 냄새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면, 아무리 인간이라 하더라도 말끔한 독일군 입장에서는 하등한 존재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인간이길 포기한 유태인을 죽이는 건 그만큼 죄책감을 덜어주고, 나중에는 “이런 놈들은 다 죽여야 세상이 깨뜻해져!”라는 다짐으로 바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컵의 물로도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는 유태인들은 죽이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독일군이 보기에도 대단한 인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은 안정적인 직장, 인간다운 처우를 기대하면서 많은 수험생이 준비하고 시험을 치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만만하다는 건 그만큼 가치 없다는 일이기도 하다. 선망하는 직업이라 하더라도 흔히들 대단하다고 여기는 직업군의 경쟁률은 제한적이다. 종종 높다고 해도, 현재 공무원처럼 높은 경쟁률을 보이지 않는다. 선망하는 직장과 만만한 직장은 다르다. 살고 싶어서 한 컵의 물을 한 번에 마시고, 동물처럼 사는 유태인과 한 컵의 물을 쪼개서, 어쩌면 수분이 부족해서 이른 죽음을 부를 수도 있음을 각오하고서 그 물을 나눠서 사용했던 유태인. 

고딩 때 원서 쓸 때도 마찬가지다. 상위권 학생들이라 하더라도 SKY를 들어갈 수 있는 학생은 별로 없는데도 논술 시험이 있는 당일이면 개떼처럼 몰려든다. 학생들만 모이면, 그나마 학교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텐데, 온 가족이 출동하니 해당 학교는 비싼 등록금 내고 다니는 학생들에게 앉을 수 있는 낡고 작은 벤치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한 번은 연세대학교 상경계열에서 90명을 뽑는데, 경쟁률이 90대 1이 된 적이 있었다. 8,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돈을 내고 시험볼 기회를 얻은 것이다. 게다가 그들을 따라온 가족들까지 따져보면 적어도 곱하기 3은 운집한다고 봐야 한다. 연세대학교의 재학생이 2만 명이 되지 않으니, 한 학과 90명을 뽑는데, 재학생 모두를 합친 수보다 많은 인원이 몰려 온 것이다. 평소에도 식당에서 밥 먹으려면 15분 줄 서서 5분 밥 먹는데, 이 정도 인원이 추가되면 식당은 갈 엄두도 내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 한 후배한테 물어봤다.

“왜 이 난리를 피우는 거지?”
“혹시 모르잖아요! 붙을 수 있을지.”
“실력은 돼서 원서 쓰고 시험 보는 건가?”
“꼭 그렇진 않죠. 어차피 많이 뽑는 것도 아닌데.”
“그럼, 그냥 연대 원서 썼다는 경험을 위해서 원서비 갖다 바치는 거네?”
“뭐, 그런 셈이죠.”
“그럼, 서울대는 왜 안 써?”
“서울대는 왠지 더 높아 보이고, 과목이 달라요!”

결론은 공부 좀 했다면 연·고대 정도는 시험 봐야 한다는 말이었다. 서울대는 감히 엄두도 안 나고. 연·고대 출신들은 들으면, 짜증 날 이야긴데 학교 입장에서는 돈 버는 거니까 계속 이런 분위기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뭐 이런 분위기에서 이화여대는 비선 실세의 딸이 말과 함께 입학할 수 있었고, 연대도 그 인척이 어렵지 않게 입학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고려대학도 말이 많은데, 이렇게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서 애매모호하게 입학한 학생이 한둘은 아닐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는데, 학생들한테는 ‘유전합격 무전불합격’이 될 듯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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