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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한잔(00)] 문학 한 잔 할까요?

연재 프롤로그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3.01.10 18:20 | 최종 수정 2023.01.17 20:28 의견 0


개인적으로는 책과 관련한 요약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원작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읽고, 그 사람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이니 원작가의 메시지를 스스로 파악할 기회를 놓치기 때문입니다.

작가와의 대화를 직접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회를 애써 물리고 중간에 통역을 둔 것과 마찬 가지죠. 물론, 너무 어려운 책은 누군가의 해석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본을 한 줄 한 줄 읽는 노력은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1학년 때 도서관에서 임마뉴엘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을 찾고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습니다. 한 쪽을 읽는데 30분 이상의 시간이 걸렸는데, 그렇게 읽고 나서도 머릿속에 남는 게 없었습니다. ‘난 바보인가? 아니면 나의 한계인가?’라는 생각만 떠올랐습니다.

그럴 법도 했죠. 몇 시간을 투여해서 읽어도,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원작을 이해하기 위해 참고할만한 책을 찾았고, 질 들뢰즈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원본을 읽기 위한 사전 독서였지만, 역시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 덕에 커다란 산을 넘기 위한 기초체력을 쌓았습니다. 이후 저는 《순수이성 비판》이라는 산을 3번 넘었습니다. 물론 세 번 읽은 것으로 칸트의 명작을 전부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칸트의 위대한 작품을 읽으며 작가의 고뇌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는 있었습니다.

이런 저의 경험도 벌써 20여 년 전 추억입니다. 수많은 스마트기기가 등장하며 읽을 거리가 늘어나자 독서 시간이 더 줄었습니다. 과거에는 독서가 취미인 사람이 꽤 있었는데, 현재는 독서가 취미라고 하면 “와!” 하며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형국입니다.

스마트기기 등장 이전부터 TV의 등장이 독서 인구를 현격히 줄였고, 스마트기기의 등장은 TV시청자를 현격히 줄였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니 역설적으로 독서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보도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고 전문가들의 독서 예찬도 늘어났습니다. 아무리 많은 정보가 우리 주위를 에워싼다 해도 독서만큼 중요한 사고 훈련은 없다는 게 정설입니다.

그런데도 독서 인구가 줄고, 연간 독서량이 주는 이유는 뭘까요? 우선, 스마트기기와 같은 대체 미디어가 독서를 대신한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굳이 무게감 있고 작은 글자로 빽빽한 책을 들고 다니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몇 번의 손가락질로 흥미진진한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스마트기기가 매력적일 테니까요.

둘째로 독서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대충 300쪽 정도 되는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며칠은 읽어야 완독할 수 있으니까요. 모든 사람들이 쉽게 시청하는 동영상도 시청자를 잡고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30초 이상 되는 영상은 바로 넘겨버리기 일쑤입니다. 스토리가 있더라도 3분 이내의 영상으로 압축해야 합니다. 그러니 하루에 몇 시간씩 며칠 간 읽어야 할 책은 현대인들에게 매력적인 콘텐츠가 되기 어려운 것이죠.

다음으로 책을 꼭 읽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과거에는 학교 과제를 하자면 도서관에서 수많은 책을 찾아야 했고, 자료를 정리하기 위해 발췌독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나 유사한 보고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미 정리된 자료들이 있으니, 잘 조합하면 리포트 한 편 정도는 쓸 수 있게 된 것이죠.

마지막으로 원작을 굳이 읽지 않아도 대충의 스토리를 볼 수 있도록 각 분야의 대표작을 간결하게 추린 요약서가 많이 등장했습니다. 물론, 요약서의 기본 목적은 원작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관심을 유발시켜 독자들이 원작을 찾아 손에 들고 읽도록 하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책을 멀리하는 현대인들을 대상으로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가지고 다니기도 어려운 묵직한 고전을 간결하게 요약한 책은 무거움을 가볍게 처리할 수 있는 좋은 도구로써의 역할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원래의 목적은 더 살리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래서 요약서를 쓰겠다는 저의 의도가 굉장히 역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요약서의 한계를 지적하고 비판하면서 요약서를 쓰겠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요약할 장르를 문학으로 제한하려고 합니다. 다만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문학과 관련한 소개서를 쓰려고 합니다.

첫째, 문학은 철학 사상처럼 명료하게 주제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혹, 주제를 생각한다고 해도 개인적인 차원의 주제가 될 것입니다. 이유는 문학에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간단한 줄거리 요약은 할 수 있습니다(최근에는 요약하기 어려운 작품도 꽤 있습니다). 하지만, 과정이 빠진 결말만 보고 만족할 독자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러니 문학을 소개한다는 것은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둘째, 모든 저작물들이 시간(시대)과 공간(국가, 지역 등)의 영향을 받겠지만, 문학은 더 시간과 공간의 영향을 받습니다. 작가가 서술하는 이야기의 배경은 시대와 지역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가 문학 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겠으나, 저는 시대적인 분위기가 녹아있는 작품을 추천하려고 합니다.

셋째, 시대적 분위기가 담겼다고 해서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고전의 가치는 통시성에 있습니다. 어떤 시대에도 적용할 수 있는 교훈 등이 있다는 말이죠. 따라서 문학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를 조명하려고 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새로운 토론 거리가 등장할 수 있겠죠.

이런 변명을 바탕으로 ‘문학 한 잔 할까요?’의 특징을 몇 가지로 추려 봤습니다.

첫째, 차 한 잔 마시는 시간에 맞췄습니다. 차 한 잔 마시는 시간은 10~15분 정도 걸립니다. 물론, 긴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 하에서요. 그래서 각 작품과 관련한 이야기도 이 정도 시간에 맞추려고 합니다. 출퇴근 시간이나, 잠시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에 어디서든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둘째, 문학을 통해 현대를 조명하기에 여러 이슈를 다루려고 합니다. 그래야 독자들도 다양한 이슈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접할 테니까요. 현대인은 자신만의 삶의 무게에 눌려서 다른 사람이나 혹은 조금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할 기회를 놓치는 듯합니다. 그러니 함께 다룰만한 이슈를 나누려고 합니다.

셋째, 작품은 고전을 중심으로 소개하되, 국내외 작가를 두루 다루려고 합니다. 동서양을 다루고, 제3세계 출신 작품까지 소개하면서 문학 기행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문학을 읽는 경험만큼 수많은 세계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결국 우리 삶의 풍성함을 위한 목적이 가장 크지 않을까요? 하루의 짧은 시간이나마 ‘문학 한 잔’을 통해 저뿐만 아니라 함께 읽는 독자의 삶에 마치 나른한 오후를 깨워주는 풍부한 향을 지닌 드립 커피 같은 보탬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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