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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in] 여전히 산업 잠재력이 엿보이는 팔복동 - 팔복동②편

- 팔복동 두 번째 이야기: 신복마을의 로컬리티는 공장에서 기인할까?

※ 다양한 인사이트를 담는 '윤준식 편집장의 view-in', 이번 회는 [로컬 인사이트]로 구성했습니다.

윤준식 편집장 승인 2023.09.03 01:20 | 최종 수정 2023.09.03 15:20 의견 0

요즘 뜬다는 팔복동에 가보았습니다
- 팔복동①편: 내겐 마뜩잖은 <팔복동 공장마을>
http://sisa-n.com/View.aspx?No=2931329

여전히 산업 잠재력이 엿보이는 팔복동
- 팔복동②편: 신복마을의 로컬리티는 공장에서 기인할까?
http://sisa-n.com/View.aspx?No=2931351

빨간양념족발이 말해주는 팔복동
- 팔복동③편: 팔복동 맛집을 찾아
http://sisa-n.com/View.aspx?No=2931354

그렇다면 제가 느꼈던 마뜩잖은 것들은 누구에게 이야기해야 개선될 수 있을까요? <MBC>일까요, <글로우서울>일까요, 전주시일까요? 그건 또 그렇지 않습니다. <팔복동 공장마을>에는 엄연한 별도의 운영주체가 있습니다. <팔복동 공장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점포들은 ‘전주시 거주자와 전주시로 전입 가능한 타지역 거주자를 대상으로 한 공모’를 통해 총 179팀 중 최종 선정된 4팀에 의해 운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문제제기를 하기가 매우 애매합니다. 자칫 단순한 불만수준의 이야기만 꺼낸다면 점포를 운영중인 몇 명의 소상공인들만 상처받게 하는 일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맨 처음에 문제제기했던 ‘장소성’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팔복동 저층주거지의 모습. <팔복 공장마을>로 진입하는 길목. (사진: 윤준식)
<바람약과> 옆 골목길 사이로 보이는 팔복동의 주거지들. 일부러 사진으로 담지는 않았지만, 폐가처럼 보여도 아직 주민이 살고 있는 집도 있었다. (사진: 윤준식)


◆팔복동은 어디인가?

우선 이곳은 팔복동이 아닌 신복마을이라 불러야 맞습니다. 팔복동은 전주시 덕진구의 행정동 중 하나로 약 7.5평방킬로미터의 넓은 면적의 지역입니다. 10년 전인 2013년만 해도 약 1만 1천 명이 살고 있었으나 지금은 약 7천 5백 명만이 살고 있는 전형적인 쇠퇴지역입니다.

사실 팔복동은 전주의 관문 역할을 하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통해 전주를 향하게 되면 전주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전주톨게이트를 지나면 전주 월드컵경기장과 호남제일문을 지나 전주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어 전주시청까지 이어지는 기린대로로 진입하게 되는데, 추천대교를 건너기까지 약 10분 정도 팔복동의 풍경을 바라보며 전주 원도심으로 오게 되는 거죠.

자가 차량 혹은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로 전주를 오갔던 분들이라면 호남제일문을 거쳐 전주시내를 향하던 때를 떠올려보시죠. 인구소멸지역으로서의 팔복동, 빈집이 속출하는 팔복동의 이미지가 그려지고 있나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엔 제 글을 통해 “아, 거기가 팔복동이었어?”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주황색 다각형 안쪽 지역이 팔복동. <팔복 공장마을>은 팔복동1가 신복마을에 있다.


◆로컬 담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되어 버리려나?

그 정도로 우리는 팔복동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위 ‘로컬’을 논하는 순간마다 나타나는 문제점이기도 하지요. 잠시 팔복동 이야기를 빠져나와 이런 인식의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를 짚고 넘어가자면 이렇습니다.

‘로컬’의 정의가 불분명한 현실 속에서 장님 코끼리 더듬듯이 ‘각자의 로컬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입니다. 물론 각자가 인식한 로컬의 이야기를 꺼내어 담론을 이뤄가는 것은 타당한 행동이면서 그 하나하나는 소중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판단한 작은 근거를 토대로 ‘로컬’을 단정 짓고 재단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리스 신화 속에는 아테네로 진입하는 길목에 살며 아테네를 오가는 사람들을 잔학하게 살해한 못된 거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거인의 이름은 ‘프로크루스테스’로 여행자를 잡아 침대에 눕힌 다음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를 자르고, 침대보다 키가 작으면 다리를 늘려 살해당했습니다. 침대와 키가 같은 사람들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죠. 여기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의미의 모호성 속에서 오피니언 리더들에 의해 ‘로컬’의 의미가 재단되고 있고, ‘로컬’은 어느새 “‘힙’하고 ‘핫’한 공간 혹은 지역”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담론의 흐름을 고스란히 반영한 표현이 『빈집살래3: 수리수리 마을수리』의 보도자료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지난 4월 4일자 보도자료를 보면 “폐허 수준의 빈집을 힙(HIP)하고 핫(HOT)한 가게로 변신시켜라!”란 표현이 들어있는데, 공교롭게도 이 보도자료는 바로 <MBC>와 전주시가 <팔복 공장마을>의 점포 4군데를 운영할 소상공인을 모집하는 시점에 동시에 나왔습니다.

[참고자료] MBC 보도자료 2023년 4월 4일자

[빈집살래3-수리수리 마을수리] ‘빈집살래3-수리수리 마을수리’의 새로운 얼굴! 박나래x채정안x신동x김민석 출격

MBC 보도자료 캡쳐 (출처: MBC 홈페이지)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여기서 제가 이런 세세한 것까지 문제삼는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힙하고 핫한 점포를 만드는 건 문제 삼을 일이 아닙니다. 점주가 어떤 비즈니스를 할지, 어떤 모습으로 고객을 대할지는 점주 본인의 의사에 달린 것이니까요. 이것은 점주 자신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점포에 투영해 고객에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것으로, 전형적인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특정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사람들에게 힙하고 핫하게 보이는 점포가 탄생하는 것이죠.

이런 점포가 점점 고객을 유치하고 유명해지면서 멀리서부터 찾는 가게가 되고, 이 점포를 앵커스토어로 상권이 활성화될 때 ‘로컬브랜딩’이 이루어지고, 좀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지역으로서 ‘로컬’이라 명명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역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폐허 수준의 빈집을 힙(HIP)하고 핫(HOT)한 가게로 변신시켜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힙하고 핫하다고 여기는 모습을 흉내내어 갖추면 고객이 유인되고, 나아가 그게 특정 로컬로 명명되고 로컬브랜딩이 이루어진다는 발상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따논 당상인 공간이 있으니 성실한 운영자만 붙이면 활성화가 이루어질 거란 논리에서 공간 조성 이후에 운영자 모집 공고가 나온 겁니다.

저는 이런 프로세스가 매우 비논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타깝게도 <팔복 공장마을>이 그런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는데, 부디 제 걱정이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기를 기원해 봅니다.

점심시간대가 지나고 있으나 여전히 함참 기다려야 식사를 할 수 있었던 <나무솥밥>. 메뉴가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해 먹어보고 가고 싶었으나, 솥밥이라는 특성상 상대적으로 서비스 속도로 느릴 것 같아 일찌감치 선택을 포기했다. (사진: 윤준식)

◆신복마을의 로컬리티는 과연 ‘공장’에서 기인할까?

다시 팔복동 이야기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팔복 공장마을>이 위치한 곳은 정확히는 신복마을입니다. 팔복동이라는 지명의 기원을 찾아보면 ‘복’자가 오래 전부터 팔복동의 중심을 이뤘던 ‘신복리’의 ‘복’자를 따왔다고 추정합니다.

팔복동이 전주의 대표적인 공업지구인 것은 맞지만 이곳 신복마을을 공장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점이 있습니다. 지도로 팔복동을 살펴보면 팔복동 내에는 2개의 산업단지가 별도로 존재하는 모습입니다. 이곳 신복마을은 저층 주거지가 밀집된 공간으로 과거에는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종사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주거공간이었습니다.

방송에서는 IMF가 터지는 시점부터 신복마을이 쇠퇴하기 시작한 것처럼 이야기합니다만, 그건 사실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산업구조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해 공장지대가 몰락했다고만 보는 것은 팔복동의 잠재력을 평가절하하는 견해입니다.

산업단지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고 발전하고 변화함에 따라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삶도 바뀌었습니다. 신복마을에 정착해 소득을 올리고, 가정을 꾸리고 세대를 이어가면서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하게 된 겁니다. 이에 따라 이들은 하나 둘 새롭게 조성된 베드타운으로 주거지를 옮겨갔으며, 이 또한 신복마을의 쇠퇴에 영향을 끼친 거라고 봐야 합니다.

따라서 신복마을에 새로 조성하는 공간을 ‘팔복 공장마을’이라 명명하는 것은 7.5평방킬로미터의 면적에 해당하는 팔복동 전체를 폐가가 밀집된 한 지점에 억지투영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팔복동 공장 생태계

한편 팔복동을 피상적으로만 본다면, 팔복동에 소재한 공장들이 몰락하고 있다고 오판하기 쉬운데, 그렇다고 해서 팔복동의 공장이 모두 경영위기체 처한 건 아닙니다. 휴비스, 문화연필, 전주페이퍼, 가온전선, 한화기계 등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기업들이 팔복동의 산업단지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으며, 작은 공장 중에도 소문나지 않은 강소기업들이 존재합니다.

공장지대가 갖는 여러 가지 특징은 꼭 같은 업종이 아니더라도 비즈니스를 전개하기 쉬운 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생산시설과 창고공간이 들어선 부지는 다른 업종의 공장이 들어오기도 좋고, 물류와 관련된 일에도 적합합니다. 두드러지게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 팔복동 내부의 비즈니스 생태계는 아직도 가동되고 있습니다.

또한 팔복동에는 이팝나무숲길과 같은 생태적인 공간, 옛 전라선 철길과 같은 근대 역사공간, 팔복예술공장과 같은 문화예술공간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공간을 조성하려 노력하는 전주시와 전주시민들 사이의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데, 오히려 저는 이런 모습 속에서 팔복동의 지속가능성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반론에 따른 일방적인 개발논리는 로컬을 로컬로 존재하게 하는 로컬리티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반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로컬리티를 살리고 계승하려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팔복동 공단의 모습 (출처: 전주시 홈페이지)
이팝나무 숲 사이를 지나는 전주선 철길 (출처: 전주시 홈페이지)
워크맨과 카세트테이프가 대세였던 시절, 팔복동에는 무려 500명이나 근무하던 <썬전자> 공장이 있었으나 시대의 변화로 카세트테이프를 필요로하지 않게 되자 1991년 문을 닫았다. 30여년 간 방치되었던 폐공장을 재생해 지난 2018년 <팔복예술공장>이라는 예술공간을 조성했다. (사진: 문성주)


◆어느 틈에 ‘가짜 로컬’이 등장하고 있다

팔복동에 대한 매우 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얼핏 방송국의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비판, 전주시의 행정력에 대한 비판을 가하려는 의도로 비춰지지 않았을까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팔복동’의 로컬리티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자 하는 목적이 가장 컸지만, ‘팔복동’이라는 글감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로컬 담론에 대한 저의 우려와 견해를 펼치고자 했습니다.

같은 로컬을 돌아다님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가짜 로컬’을 경고해주는 현지인들이 다가옵니다. “편집장님, 저희 동네에도 가짜 로컬이 생겼어요”라고 하면서 힙하고 핫하다는 공간으로 저를 끌고 갑니다. 모습은 예쁘고 재미나고, 취급하는 상품도 신기하지만, 이곳에선 어떤 감흥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흉내내기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문제는 이런 가짜 로컬이 가져오는 폐해입니다. 얼마 못 버티고 망하면서 상권을 우중충하게 만들고, 상권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를 저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로컬’은 무엇이고, 어디일까요? 계속되는 저의 이야기 속에서 함께 찾아 나섰으면 합니다.

팔복동에 대한 저의 관심과 취재 또한 이제 시작한 단계이니, 앞으로도 가끔씩 이어지는 팔복동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양한 생각이 모이고, 이런 생각들이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상상으로 전환되면 팔복동도 전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받는 날이 오겠죠? (팔복동②편 끝)

※이어지는 팔복동③편은 팔복동 맛집탐방입니다. 추억의 메뉴를 통해 팔복동의 로컬리티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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