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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in] 예산시장 성공사례에서 찾은 인사이트 - 창업으로 혁신하는 로컬 ②편

- ‘창업으로 혁신하는 로컬’ 두 번째 이야기: 예산시장에서 찾은 인사이트

윤준식 편집장 승인 2024.02.21 22:41 | 최종 수정 2024.04.17 17:28 의견 0

2023년을 통틀어 지역 경제 분야에서 가장 뜨거웠던 사건은 백종원의 예산시장 프로젝트입니다. 타지역에 비해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던 예산, 게다가 쇠퇴가 본격화된 전통시장에 전국민의 관심과 시선이 쏠렸고, 예산시장은 연일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예산시장의 성공은 지역소멸, 도시재생, 로컬 활성화 등의 난제를 끌어안고 있는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교과서나 다름없는 것처럼 되어 일반 관광객 외에도 ‘선진지 탐방’의 목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의 발길도 적잖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통시장들은 대형마트와 온라인 마켓플레이스의 위협 속에 소멸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마치 대도시 쏠림현상과 소멸위기로 인해 축소경제 상황에 직면한 지역의 상황과도 동일하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예산시장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전통시장과 지역의 위기를 관통하는 몇 가지 중요한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이야기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예산전통시장 장터광장 (사진: 윤준식 편집장)


◆예산시장, 국민의 시장이 되다

예산시장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공식화된 건 지난 1월 백종원 자신이 유튜브를 통해 “‘시장’이 되어보겠습니다”라는 도발적인 영상을 올리면서부터입니다. 당시 백종원은 550만(현재 600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위력의 인플루언서였기 때문에 시작부터 사회적인 반향이 대단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실시간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산이 어디에 붙어있는 곳인지는 모르더라도, 백종원과 시장 상인들과의 애환을 들여다보며 마치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참여한 듯 같이 신나 하고, 화도 내며 예산시장의 성공을 기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심리는 유튜브를 시청하고 여기에 반응하는 것만으로도 예산시장 부흥에 기여하는 효과로 이어졌습ㄴ;다. 하루 평문 방문객 5천 명을 넘어섰고, 개장 6개월이 된 7월말까지 137만 명의 누적방문이 이루어질 정도였습니다.

◆예산시장의 성공이 놀라운 이유

일시적인 화제 거리에 지나지 않을 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저에겐 충격적인 숫자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산시장은 주민들에게는 익숙한 공간일지 몰라도 타지 사람 입장에선 일부러 이 시장을 찾아갈 만한 게 아니라서입니다.

역이나 터미널에서 가까운 곳도 아니고, 관광지에 인접한 곳도 아니다. 무엇보다 예산군 자체가 교통접근성이 좋은 도시가 아닙니다. 대중교통의 경우 서울에서 예산을 오가는 고속버스는 하루 7편뿐이며, 기차는 5~6량 편성의 장항선 무궁화호와 새마을호 합쳐 10편이 지나갈 뿐입니다.

물론 지금은 서산영덕고속도로가 예산군을 관통하고 있고, 서해선 전철 연결이 진행중이라 예산군 접근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예산의 지세와 지형은 쉽고 편하게 다가갈 만한 곳은 아닙니다. 남북으로 길게 흐르는 삽교천과 무한천, 예당저수지 등의 지형적 특성이 도시를 조각조각 흩어놓았으며, 일부 지역은 당진시와 아산시, 홍성군 등으로 생활권이 이어지는 형태라 예산군을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던 상황이었습니다.

◆인사이트(1) 민간전문가의 투입

사실 예산시장의 성공은 ‘백종원’이라는 인물을 빼고서는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물론 백종원이라는 특정인을 영웅시하거나 특정인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점은 매우 조심해야 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백종원과 같은 ‘전문가’(지역산업 발전에 적합한 전문가; 백종원은 외식업 전문가임)와 자본을 투입해 공급망 형성과 마케팅에 앞장서고 효율을 추구하는 ‘기업가’(실제적으로 돈을 벌고 고용을 창출하는 구조를 알고 실현할 수 있는 인물; 백종원은 소규모 외식업종 창업에 대한 전문성으로 예산시장을 무대로 한 창업을 성공시키고,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성공함)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를 ‘지자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민 개개인의 삶과 생존의 문제이긴 하지만 예산과 권한을 쥐고 있는 지방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 여기는 거죠. 근데 이건 절반만 맞지 절반은 틀리는 생각입니다.

주민의 손으로 대표자를 뽑아 단체장 업무를 수행하게 하지만, 정당에 소속된 단체장 입장에서는 정치적 목표를 갖고 정책을 마련하고 추진합니다. 그게 반드시 지방소멸에 대한 적합한 대책이라거나 지역경제 활성화에 효율적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입니다.

업무를 추진하는 공무원들의 역량 또한 제한적입니다. 이들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게 아닙니다. 공무원이기 때문에 행정업무 안에서만 우수하지, 경영일반과 마케팅, 브랜딩, 프로모션과 세일즈 등에서 창의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라고 기대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나쁜 점만 모아 과장해 표현하자면, 이들이 자신의 일에 열심을 낼수록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적재적소에 가야 할 예산은 당선에 도움을 준 정치 세력에 대한 정치적 계산에 의해 편성되고, 편성된 예산은 비즈니스 분야의 전문성이 없는 공무원에 의해 단기적으로 소모될 뿐입니다.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매번 바닥만 치다 슬그머니 사라지기만 합니다. 따라서 실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게 없다 보니 업적으로 남길만한 건 기껏해야 하드웨어 사업뿐인 거죠. 결국 뭔가를 하면 할수록, 아무도 찾지 않는 빈 건물만 늘어나는 겁니다.

◆인사이트(2) 장소와 공간의 재정의

두 번째 인사이트는 백종원 스스로 선언한 예산시장의 재정의입니다. 엄밀히 말해 미디어를 통해 노출된 예산시장은 예산시장이 아닙니다. 예산시장 안에서도 ‘장터광장’이라 부르는, 5일장과 연계되는 빈 공간에서 백종원의 예산시장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연출된 유튜브 영상을 통해 장터광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시츄에이션이 예산시장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 것처럼 표현되고 있는 건데, 촬영팀의 선의에 의해 속아 넘어가고 있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이건 거꾸로 장소성의 재정의라는 점에서 인사이트를 줍니다. 『백종원 시장이 되다』에서 백종원은 장터광장을 푸드코드로 보며 예산시장을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인구감소로 인해 상품의 교환이라는 시장의 역할이 사라지고 있는 이상, 시장이라는 개념은 잊어버리고 ‘푸드코트와 식자재 창고의 결합’이라는 형태로 예산시장 ‘건물’을 재정의한 후, 이 푸드코트의 이름을 ‘예산시장’이라 재명명하며 기존의 의미를 재정립시키고 있는 겁니다!

예산시장뿐만 아니라 전국의 전통시장 모두가 이미 오래된 거대한 위협에 직면해 있는 상황입니다. 대형마트의 등장, 온라인 마켓플레이스의 성장이 전통시장의 위협요인이라고 생각하며 경쟁에 뒤처지지 않도록 전통시장 현대화, 주차장 완비, 배송 활성화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전통시장을 연계한 지역축제까지 기획하며 이제야 조금쯤 성과가 나고 있다고 여길만해졌습니다.

그러나 인구소멸은 곧 시장의 소멸로 이어지기에 전통시장은 지역 주민들만의 ‘장소성’이 묻어있는 공간으로만 남겨지게 됩니다. 장사꾼의 본능이랄까 백종원은 이점을 간파해 대안을 제시했다는 거죠.

예산전통시장 내에서도 '장터광장'이라고 불리는 주차장과 이어지는 공간을 푸드코트의 형태로 활용했다. (사진: 윤준식 편집장)


◆인사이트(3)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시장차별화

예산시장에서 백종원을 지워내려고 해도 지워내기가 어려운 이유는 예산시장 프로젝트가 인플루언서 백종원에 의해 이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플루언서 백종원 개인의 페르소나는 그가 출연했던 『마이리틀텔레비전』, 『집밥 백선생』 시절부터 이어집니다. ‘슈가보이’, ‘백주부’ 등의 별명은 파인다이닝보다는 단품요리를 연상케 합니다.

여기에 사업가 백종원의 페르소나는 그가 운영하는 기업 <더본코리아>가 추진하고 있는 20개 이상의 외식업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대표합니다. 이 2가지 페르소나는 백종원을 팔로우하는 대중에게 백종원에게서 떠오르는 ‘저렴하면서도 푸짐하고 맛있는 요리’를 먹어보고 싶은 욕구를 갖게 만듭니다. 이 말을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차원에서 다시 고쳐 쓴다면 “백종원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라이프스타일이란 개인이 갖는 삶의 태도, 가치관, 살아가는 방식을 의미하는 말로, 개인의 삶의 가치가 높아지는 최근에 이르러서는 경험적 요소에서 출발하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가 각광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까지의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는 ‘워너비’(wannabe)에 초점을 맞춰 발전해 오다 보니, 셀럽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따라가는 중고가 이상의 값비싼 시장에 편중되는 경향을 보여왔습니다.

그러나 『백종원 시장이 되다』를 살펴보면 백종원이 가성비에 골몰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중저가 이하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시장차별화 전략이 녹아있는 행위로 보입니다. 게다가 전통시장은 이런 중저가 이하 전략이 먹히는 장소성을 지닌 공간입니다. “싸다!”, “푸짐하다!”, “맛있다!”는 즐거운 상상이 먹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인사이트(4) 정주성을 높이는 정서적 콘텐츠

한편 예산시장 성공 외로 눈여겨봐야 할 건 예산군의 인구입니다. 예산군도 인구 감소가 두드러지던 곳으로, 80년대에는 15만이나 되었던 인구가 2021년에는 7만 8천 명으로 줄어들었던 곳입니다. 그런데 2022년부터 성장세를 보이더니 2023년 들어 인구가 8만 명 선(예산군청 추산)을 넘어섰습니다. 이는 충남 내포신도시 계획과 더불어 충남권 일부 인구가 예산군에 유입되며 일어난 현상인데, 공교롭게도 예산시장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시기부터 예산군 인구증가 추이가 잘 맞물리고 있습니다.

신도시 계획은 주택과 공공시설의 건설 등 하드웨어 공급을 통해 정주성을 높이는 사업이지만, 이것만으로 정주성이 해결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은 무리를 지어야 힘을 발휘하는 존재라서죠. 함께 마주하고,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이런 일은 공간만 주어진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모일 계기를 줘야 하고, 놀거리, 소일거리가 필요하다. 주택, 일자리, 의료, 교육, 복지 인프라 외에 콘텐츠 요소를 충족시키는 무언가를 필요로 합니다.

물론 지금 보여지는 단기적인 예산군의 인구증가를 예산시장의 존재가 예산의 정주성으로 연결된다는 인과관계의 형태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예산은 재밌다고 여길 수 있는 모종의 상관관계를 형성해 가고 있다고 보는 정도일까요? 그렇더라도 뭔가 기대심리를 끌어올리는 동인(動因)은 될 것 같습니다.

더본코리아가 운영중인 다양한 외식업 브랜드들 (출처: 더본코리아 홈페이지)


※그렇다고 모든 전통시장이 예산시장과 똑같아지면 안 된다

지금까지 예산시장에서 발견한 몇 가지 인사이트를 강조한 이유는 매우 역설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아무리 예산시장의 사례가 좋게 보이더라도 사례 자체만을 본뜨는데 급급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모든 시장이 예산시장화 된다면, 전통시장은 소멸을 잠시 유보한 푸드코트 수준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전통시장이 이름만 시장이지 먹자골목처럼 바뀌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예산시장이 특별한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인사이트들이 결합되며 브랜드화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상품의 교환기능은 대형마트나 온라인 마켓플레이스로 더 집중될 수밖에 없고 전통시장 자체는 소멸될 것이 뻔하다고 당연합니다.

이 시기 지역의 선택은 ‘축소’라는 현실의 인식을 넘어서야 합니다. 적정규모와 적정수준을 설정한 도시 형태의 청사진을 그려야 합니다. 재정의와 재정립에서 새롭게 출발한 예산시장의 성과에서 배워야 할 점은 이런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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