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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in] 촌스러운 것도 로컬의 매력 - 힙해야 로컬인가? ②편

- ‘힙해야 로컬?’ 두 번째 이야기: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주는 매력

※ 다양한 인사이트를 담는 '윤준식 편집장의 view-in', 이번 회는 [로컬 인사이트]로 구성했습니다.

윤준식 편집장 승인 2023.09.08 23:58 | 최종 수정 2023.09.09 05:30 의견 0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산 머드맥스』가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는 건 ‘지역’ 혹은 ‘지방’으로서의 ‘로컬’이 지닌 본래의 멋에 대한 공감이 있었다고 봅니다.

◆‘촌스럽다’=‘로컬답다’=‘힙하다’???

머드맥스가 보여줬던 가능성은 촌스러움에 있습니다. 머드맥스에서 보여준 로컬 아이콘은 2가지인데 하나는 갯벌이고, 다른 하나는 경운기입니다. 도시민이 살고 있는 곳에는 없는 것들입니다. 물론 인천, 부산, 울산 등 해변을 끼고 있는 광역시가 존재하지만, 갯벌을 생활공간으로 택하는 도시민은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이동수단으로 경운기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속도가 느리고 승차감이 떨어져 교통수단으로서는 실용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운기는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농업을 기계화하기 위해 저렴하게 보급하기 위해 개발된 경형 트랙터입니다. 교통수단의 목적이 아니라 농업 생산성 증대를 위해 만든 농기구이자 중장비인 거죠.

이런 것이 바로 로컬에서 볼 수 있는 로컬만의 풍경을 연출한 거고, 여기서 로컬의 고유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겁니다. 즉, 머드맥스 영상을 보고 다수의 사람들이 “로컬이 힙하다”고 했던 건 로컬의 고유성에 대한 탄성이 아니었을까요? ‘촌(촌=로컬)스러움’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으로 간주하고 싶습니다.

(출처: 방랑싸롱 페이스북)


◆쇼미 더 순창! 우리는 할미넴

2021년 9월에 공개된 『서산 머드맥스』보다 앞서 “로컬이 힙하다”고 감탄하게 만든 사례가 있습니다. 2019년 순창의 『할미넴 프로젝트』입니다.

서울에서 힙합 뮤지션으로 활동하다 고향에 돌아온 순창 청년 강성균씨는 화투놀이를 하는 할머니들의 대화를 들으며 “비트만 넣으면 랩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들과 힙합 음악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됩니다. 농촌활성화 공모사업에 힘입어 『이것이 삶이넴, 우리는 할미넴』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고, 순창 <방랑싸롱>을 무대로 『쇼미 더 순창』 이벤트를 성공시켰는데 이 일이 화제가 된 겁니다.

순창군이 어르신을 위한 랩 교실을 운영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방송국 덕분에 유명세를 치렀고, 순창 할미넴이 전국에 알려졌습니다. 심지어 할미넴의 활동을 기록한 다큐는 2020년 미국 텔레비전 과학기술 아카데미의 에미상 결선에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욕쟁이 할머니에게서 에미넴을 발견하다

원래 ‘할미넴’은 2004년의 KBS 일일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 주인공 할머니역으로 출연한 김영옥 배우가 욕을 퍼붓는 장면이 마치 미국의 힙합 뮤지션 에미넴의 랩하는 모습과 비슷하다며 시청자들이 붙인 별명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러다 10년의 시간이 흘러 2014년 KBS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한 최병주 할머니가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을 부르며 랩을 소화하는 장면이 방영되며 다시 한번 ‘할미넴’이 화제를 모으게 됩니다.

2016년에 방영된 JTBC 예능프로 『힙합의 민족』은 할머니 방송인(김영옥 배우와 『전국노래자랑』의 최병주 할머니 포함)들이 힙합 래퍼로 변신해 곡을 준비하고 공연하는 할미넴 무대를 선보이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줍니다. 언뜻 서로 어긋날 것 같은 할머니와 힙합의 조합이지만 세대를 넘어 서로 협력하고 힙합의 스웩(Swag)을 함께 즐기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문화적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능성은 3년 후 순창에서 재현된 겁니다.

순창 『할미넴 프로젝트』는 로컬에 전환점을 가져올 수 있다는 큰 기대감을 가져왔습니다. 힙합을 통해 전통과 현대, 열정적인 청년 예술가와 주민의 협업이 하는 문화적 시도가 높게 평가되었고, 로컬크리에이터의 기획력이 바탕이 되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JTBC 방송 캡쳐)

◆농촌의 ‘힙’스러움은 무엇일까?

여기서 잠깐 특히 순창 할미넴의 무대가 되었던 <방랑싸롱>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방랑싸롱> 장재영 대표는 20년 가량 여행업에 종사하다 순창에 정착했습니다. <금산여관 101호 카페>를 시작으로 고추장 창고를 개조한 문화공간 <방랑싸롱>을 열어 4번의 재즈페스티벌과 『청춘마이크』 공연 등을 통해 순창 대중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로컬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2020년 12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 ‘올해의 로컬크리에이터’로 선정되었습니다. 이후 장재영 대표는 “농촌의 ‘힙’스러움을 추구하겠다”는 취지의 브랜드 <힙컬>을 론칭했고, 지금은 세종시 조치원정수장을 재생한 조치원문화정원을 위탁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방랑싸롱>이 아닌 <힙컬>로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농촌의 ‘힙’스러움을 추구하겠다”는 <힙컬>의 브랜드 메시지는 ‘힙한 로컬’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 우선 힙합을 농촌에, 게다가 청년이 아닌 할머니들에게 적용했기에 농촌이 힙해졌다-로컬이 힙해졌다고 표현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민요나 판소리, 트로트와 같은 옛스러운 장르가 아닌 최신 장르인 힙합이 농촌-로컬이 ‘힙’해지는 요인이 아니라 보는 거죠.

◆힙합 문화와 로컬 문화

순창 할미넴이 높이 평가받은 이유는 힙합이라는 장르가 아닌, 가사 속에 담긴 할머니들의 인생과 애환 등이 주는 스토리텔링의 힘 때문입니다. 평생을 농촌에서 살며 노동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했던 자신들의 이야기와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 도전하는 정신이 이를 표현하기 적합한 장르인 힙합을 만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올해로 탄생 50주년을 맞은 힙합은 1970년대 뉴욕 브롱크스의 슬럼화 과정에서 등장합니다. 가난한 아프리카계와 히스패틱 계통 사람들이 많이 사는 브롱크스는 화재로 부서져 나간 폐허가 많았고, 도시의 빈 공간에서 벌어진 블록파티가 힙합의 시작입니다. 파티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디제이들의 기술(디제잉)에 비보이들의 춤, MC의 랩이 가미되며 음악의 한 장르로 완성되었고, 도시공간을 기습적으로 채우는 그래피티가 가미되며 ‘저항’이라는 힙합 특유의 문화코드가 만들어졌지요.

한편, 베트남전의 여파로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80년대로 넘어오며 보수적인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게 됩니다. 소련과의 군비경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각종 보조금 프로그램을 중단함에 따라 사회취약계층과 소외계층들의 반발을 불러오게 됩니다.

예산삭감 여파로 공립학교가 방과 후 진행하던 음악교육도 중단되자, 빈민가의 청소년들은 이를 대체할 뭔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세대가 갖고 있던 턴테이블과 레코드판을 꺼내 듣기 시작했고, 레코드에 수록된 음악은 할아버지 세대가 남긴 블루스와 재즈였습니다. 아버지의 턴테이블과 레코드판을 도구로 한 디제잉은 할아버지 세대 음악의 재해석이자 새로운 형태의 계승행위였습니다.

◆전통의 재해석과 창조적 계승

공교롭게도 순창 할미넴은 비주류문화에서 주류문화가 된 힙합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순창 할미넴에서도 힙합과 같은 전통의 재해석과 창조적 계승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들이 만든 가사 속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한’이라는 정서의 표현입니다. 또한 할머니들이 힙합을 한다며 헤드폰을 쓰고 춤을 추며 랩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풍자와 해학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쇼미 더 순창』 이벤트를 통해 보여준 퍼포먼스와 힙합배틀은 제4의 벽이라 부르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파괴한 형태입니다. ‘한’, 풍자와 해학, 경계의 파괴는 민요, 판소리 등 우리의 전통에 녹아있는 요소들입니다.

순창 할미넴은 주로 전통을 지키는 행위자였던 할머니들이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는 것 외에도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힙합이 갖는 보편적 특성이라 볼 수 있는 미국 문화, 대도시 뒷골목 문화, 비주류문화, 저항문화, 청년문화와 같은 보편적인 문화코드 외에도, 홍대문화, 인디문화, 크리에이터 문화와 같은 조금 특수한 문화코드가 외딴 농촌마을에서 펼쳐진다는 점입니다. 이런 언밸런스한 상황을 뜻밖의 장소에서 마주쳤다는 점에서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느끼게 합니다.

(출처: 방랑싸롱 페이스북)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주는 로컬의 매력

‘비동시성의 동시성(the contemporaneity of the uncontemporary)’은 독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정리한 개념으로, 다른 시대에 존재하는 사회적 요소들이 같은 시대에 공존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를 쉽게 설명한다면 ‘레트로(retro)’를 들 수 있습니다. 이는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고 부딪히는 데서 느끼는 감성을 의미하는 말인데, 이 ‘레트로’함은 한동안 뜨는 골목이라는 곳에서 자주 맞닥뜨릴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찾아가 보면 로컬만의 특징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전통과 관습에서 오는 문화적 특징, 자연과 생태, 선사시대까지 올라가는 역사문화유산, 촌락과 도시의 형성과 궤를 함께 한 인문·기록 유산 등이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빠른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며 온 국민이 동일한 기술환경에 놓여있지만, 남녀노소 각자의 경험이 달랐고, 이에 따라 형성된 가치관과 세계관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복합되면서 개인의 영역에서는 매우 세분화된 라이프스타일이 등장했고, 이를 만족시켜줄 ‘로컬’을 찾아 나서게 합니다.

오늘날 로컬이 각광받는 이유, 로컬을 힙하다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고찰과 토론이 필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로컬의 고유성과 장소성이 상호작용했다는 점, 그리고 그 안에서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발견하는 재미가 아닐까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있는 지역과 공간에서 익숙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경험하는 가운데, 익숙함에서는 향수를 느끼고 새로운 것에서는 동경을 품으며 반복해서 로컬을 향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③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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