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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60주년(1)] 미완의 혁명은 언제 완수되는가?

미완의 민주주의가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윤준식 기자 승인 2020.04.19 22:07 | 최종 수정 2020.04.29 16:29 의견 0

<4.19혁명 60주년>을 맞는 대한민국은 또 한 번의 기로에 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신년사를 통해 “<4.19 60주년>, <5.18 40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임시정부 100주년이었던 2019년에 이어 새롭게 시작하는 100년”이라 선언했다.

대통령 신년사에서 언급된 새로운 100년은 대한민국 시민혁명의 기원을 3.1혁명에 놓고 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혁명의 사전적 의미만 놓고 본다면 대한민국은 완성된 시민혁명의 경험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매번 시도되었던 민주주의 혁명은 이어진 반혁명으로 역전돼, 1보전진-1보후퇴의 지루한 싸움을 100년간 계속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미완의 혁명’이라는 슬픈 수식어는 <4.19혁명>에 붙여졌던 것이었다. 이는 1960년 4월 19일 국민의 힘으로 독재권력을 타도했음에도, 1년이 지난 1961년 5월 16일 군부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나며 독재회귀로 돌아갔다는 이유에서다.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만 물리치면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것처럼 여겨졌지만, 독재를 타도해도 원하는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도 여러 가지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데, 전란으로 인한 경제적 파탄에 이어 독재의 압제에 시달리던 시민사회는 독재 타도만 생각했을 뿐, 동시대가 요구하는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나 정치세력, 정치문화를 구체화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한 번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불행히도 여러 차례 시도되었던 대한민국의 민주혁명은 거듭 미완으로 귀결되어 왔다.

장기간 독재를 일삼았던 박정희 대통령이 측근 김재규에 의해 암살되며 권력이 국민에게로 넘어오는 듯 했다. 그러나 ‘서울의 봄’은 잠시 잠깐이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벌어진 사건은 민주화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이후 12년의 장성 출신 대통령과 군부세력이 집권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그 중간이었던 1987년 시민사회가 일어나 6.29선언을 이끌어내며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통해 희망을 보는 듯 했다. 하지만,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의도적으로 여당인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를 선언 주체로 내세우며 표심을 부추겼고,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대선 후보로 대거 나서는 바람에 표가 분산되었다.

결국 노태우 후보의 당선으로 7년으로 끝날 군부정권의 수명이 12년으로 늘어난 셈이었다. 공교롭게도 6.29선언을 근거로 한 직선제 헌법에 근거한 민주적 절차로 군부 출신의 대통령이 당선되어 군부독재인듯, 군부독재아닌, 군부독재가 5년 더 지속될 수 있는 정당성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노태우 대통령 임기중이었던 1988년에 치뤄진 12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고, 국회는 여소야대 국면이 펼쳐졌다. 이로 인해 그동안 국민들로부터 요구되던 숙원들이 청산될 거처럼 보였다. <5공비리 청문회>가 열리며 전두환 정부의 비리가 드러났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13대 대선을 앞둔 시점인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 3명에 의해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이 이뤄지며 거대여당이 탄생한다. 민주자유당의 등장은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미명하에 독재의 과오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었으며, 고질적인 문제가 최근까지 지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 2017년, 대한민국은 또 한 번의 민주혁명을 이루어냈다. 비선실세 의혹, 뇌물수수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 대통령이 헌법에 위배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시민이 일어선 촛불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촛불시위로 모여진 민의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게 했고,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인용하며 대통령이 탄핵됐다. 4.19혁명에 이어 57년 만에 살아있는 권력을 국민의 힘으로 다시 끌어내린 역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탄핵 직후 치러진 2017년 5월 장미대선 결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이후에도 시민사회는 여러 차례의 진통을 겪게 된다. 소득주도 성장론으로 인한 진통, 강남 집값문제, 흔들리는 한-미-일 동맹 등 문재인 정부의 불안요소를 높여갔다.

국민들의 여망이 담긴 덕에 높은 수준의 대통령 지지율이 유지되자, 진정성있는 정치행위보다는 정파적 입장의 행동만 보게 되었다. 당정청이라 부르는 여당 내부와 내각, 청와대에서 보인 발언과 행동들은 야당과 극한 정치적 대립을 불러왔다.

야당의 저급한 행동에도 원인이 있었지만, 집권 초기부터 감성에 소구하는 이벤트가 많았고, 주요 인사 임용에 있어 청문절차를 무시해 ‘불통’의 이미지를 쌓았기 때문이다. 요직을 차지한 인물들의 발언이 설화를 겪으며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조국사태’라 불리는 일련의 상황은 현 정권의 윤리적 측면을 파고들면서 이에 대한 공격과 방어로 국론의 분열로 이어졌다.

그 중간평가가 되어줄 4월 15일 21대 총선을 앞둔 상황 속에서 정치판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중도 및 보수 성향의 정당의 기계적 결합과 개정선거법의 맹점을 활용하면 이틈에 또다시 여소야대 국면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여기서 ‘앙시앵 레짐’이 또 한 차례 등장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총선 결과는 집권여당의 손을 번쩍 치켜 올리는 상황을 만들었다. 청산되지 않은 과오들, 대안 없는 반대행위에 대해 국민들은 보수정당을 심판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지금까지 있어왔던 미완의 혁명들과는 달리 ‘앙시앵 레짐’을 좌절시켰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결과라 볼 수 있다.

허나 이를 좋게만 볼 수 없는 것은 이번 총선 이면에는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현 정부 사이의 고도의 책략과 공조가 ‘앙시앵 레짐’을 좌절시킨 이상으로 크게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어서다. 이는 코로나19 극복과정을 현 정부와 집권여당의 공적으로 포장하려고 했던 여러 차례의 시도에서 찾아볼 수 있고, 발 빠른 긴급재난지원금의 정책이 국민의 마음을 잡고 안정감을 준 점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라서다.

이런 점은 다른 측면에서 굉장히 큰 의미를 시사한다. 일부 우파 쪽에서 보여주는 시각인데, 현재의 일어나는 여러 가지 정치적 과정과 결과들을 ‘레짐 체인지’라 부르고 있다. 이들은 촛불-탄핵-장미대선을 거치며 대한민국의 정치적 주류와 비주류가 바뀌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집권여당을 지탱하고 있는 세대는 ‘86세대’로 이들은 앞서 열거한 주요 민주화운동과 궤를 함께 해온 세대들이다. 이들의 비중은 인구분포 면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민주화운동을 거쳐 오며 고도로 발전시킨 정치논리와 지지기반, 리더십을 고루 갖추고 있는 계층이기도 하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0년 집권’을 언급과 이에 대한 지지자들의 찬동에서 드러난다. 지지세력들까지 장기집권을 긍정하고 희망하고 있다는 점은 좀 다르다. 어떤 정권이든 정권재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장기집권을 꿈꾼다는 것은 위험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자유와 민주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가장 컸던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도 시민의 손으로 혁명을 완수했다고 여긴 순간, ‘앙시앵 레짐’이 일어나 왕정을 부활시키기도 했다.

이후에도 민주적 절차를 이용해 집권에 성공한 나폴레옹은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장기집권에 들어가고 자신을 황제라 칭하고 ‘제1제정’을 수립했다. 기존의 절대왕정과는 다른 권위의 의미로 ‘황제’라는 호칭을 썼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민주주의 혁명정신에 위배되는 행동이 아니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프랑스도 여러 차례 다양한 진통 끝에 오늘날과 같은 민주공화정을 이루며 오랜 세월에 걸친 대혁명이 완성된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도 기나긴 시민혁명을 완성해가는 과정 속에 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치하에서 자주독립을 얻으려던 3.1혁명도, 이승만 대통령과 집권 자유당의 독재에 저항하던 것만이 민주주의의 완성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적 질서와 전통을 갖기 위한 투쟁은 4.19혁명이 일어났던 그날 그때 이후로 계속되어 온 것은 아닐까?

미완의 혁명이라는 주제어는 미완의 민주주의라는 주제어로 변화해야 하며, 과거의 역사는 미래를 열기 위한 열쇠임을 잊지말아야할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는 어떤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것인지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포괄적으로 독재타도라는 구호를 외쳐왔지만, 시대별로 나타난 정치권력과 정치세력은 다른 모습을 띄어 왔고 명분과 정당성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혁명의 물결과 이에 반하는 ‘앙시앵 레짐’은 어떤 것인지 하나하나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편 이번 문재인 정부의 등장으로 눈여겨 보게 되는 ‘레짐 체인지’는 대한민국의 역사발전에 긍정적인 것일까, 부정적인 것일까? 과연 대한민국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걸까?

지난 해에도 <시사N라이프>는 4편의 연속기사를 통해 4.19의 과정을 되짚어 보았다. 올해 60주년을 맞은 <4.19혁명>을 재조명하는 작업에서는 아직도 미완의 형태로 남아있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초점을 맞춰보고자 한다. (계속)

↑사진설명: 이승만의 하야 성명 발표 이후 치안 유지 등 사태 수습에 나서는 학생들
↑사진제공: 3.15의거기념사업회
출처: archives.kdemo.or.kr/isad/view/0070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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