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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알자] ‘불난 집에서 도둑질하는 자’(火事場泥棒)과 헌법 개정

정회주 일본지역연구자 승인 2021.05.24 14:25 | 최종 수정 2021.05.24 19:11 의견 0

일본에서는 화재의 혼잡을 틈탄 도둑, 즉, 혼잡한 틈에 부정한 이익을 얻는 자를 ‘불난 집에서 도둑질하는 자’(火事場泥棒)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19로 인한 혼란과 중국의 태두를 틈타 불난 집에서 도둑질하듯 헌법개정을 추진중이다.

일본 헌법은 전후 패전에 의한 징벌적 조항이 포함된 평화헌법이었다. 이것을 정치인 자신들의 잘못된 위기대처 혹은 외교적인 화해보다는 오히려 혼란을 이용하거나 부추기는 가운데 법적 허들도 낮추고 있다.

◆헌법 개정을 위한 허들을 낮추는 노력(국민투표법·개정안)

앞서 언급한 현행 헌법은 징벌적 조항이기 때문에 개정하려면 ①국회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개정 발의, ②국민투표에 의한 과반수 찬성이 되어야 하는 등 상당히 높은 허들을 만들었다. 때문에 자민당은 당의 기본방침(黨是)인 헌법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징벌적 조항이라는 부분은 빼고 미군이 만들어준 것이기 때문에 자주적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일환으로 국민투표법과 그 개정안을 3차에 걸쳐 추진하였는데, 여기서 눈에 띄는 부분이 아베 전 총리와의 관계이다. 아베 전 총리는 점령하에 만들어진 헌법을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지 않는 한 진정한 독립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①총리 시절인 2007년 5월 헌법개정의 절차를 정하는 국민헌법개정투표법을 통과시켰고, ②그 일부를 개정하는 법률을 2014년 6월 공포·시행하였으며, ③아베정부의 허수아비 정권인 스가정권에서 2021년 5월 11일 중의원을 통과하여 6월 중순 국회 회기말 통과할 예정이다.

이로서 투표연령을 만 18세 이상으로 낮추고, 찬성 투표수가 투표 총수(찬성 및 반대)의 과반수 이상으로 하였으며, 투표율 향상을 위해 역 및 대형 상업지역 등에서 쉽게 투표토록 하는 등 장기간에 걸쳐 부단하게 허들을 낮추었다.

◆위협 조장을 통한 헌법개정 추진

전후 일본에서는 끊임없이 헌법개정 관련 논의가 진행되어 왔으며, 특히 아베정권 취임 이후 현행 헌법으로는 북한의 핵 · 미사일, 중국과의 센카쿠문제, 코로나19 등 새로운 위기에 정부가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분명 중국의 권위주의에 의한 역내 불안정요인을 확산시키는 행위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일본의 현재의 모습에도 문제가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코로나19 확산을 조장한 아베 및 스가 정부는 조성된 위협을 의도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한다면서 GoTo Travel을 확산시키면서 방역을 소홀히 하거나, 의료붕괴를 막는다면서 PCR 검사를 제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 때문에 ‘도쿄 올림픽’을 수개월 앞두고 3번째 발령한 긴급사태 선언도 다시 연장하였는데, 최악인 것은 지금 오사카는 코로나19에 걸려도 10명 중 1명 밖에 입원할 수 없는 상황이며, 1만 6,000여 명이 자택에서 입원을 대기 중이다.

워싱턴대 보건계량분석 연구소(IHME)는 일본의 코로나19 사망자가 공식 통계치가 10,390명 이지만, 실제로는 무려 10배를 넘는 108,320명이 숨졌을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이런 지경 속에서 여당은 헌법 때문에 정부가 대처를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둘째, 선동하는 측은 대중의 불만을 이용한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하게 되면 일본 정부가 한반도 위기설을 유포하고 지자체에 대한 대피훈련을 권장하였다. 이로서 북한 미사일 발사체가 추락하면 바닷물을 오염시킨다든지, 미사일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농사짓는 농부들도 밭에서 엎드려 대피해야 한다는 등 터무니 없는 내용이 일반화되었다.

자민당은 2017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 중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이를 입증하듯 아소 부총리도 “분명하게 북한 도움도 있었을 것이다”고 언급(2017년 10월 26일)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일본과 중국과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면, 2010년 일본은 GDP 2위를 중국에게 내 주었다. 이후 2010년 9월 7일 어선 충돌사건,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거치면서 자존심이 땅에 떨어진 일본 정부는 극우세력의 주장에 밀려 센카쿠 국유화(2012년 9월)를 선택하였고, 양국 국교 정상화 때 서로 건드리지 말자고 합의했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서 영토문제가 본격화되었다.

센카쿠 국유화가 촉매가 되어 중국에서는 반일 집회와 무역 보복, 일본여행 취소 등의 조치와 함께 함정과 항공기에 의한 센카쿠 상시 진입 등이 이루어지게 되고 일본도 국민 7할이 ‘타국으로부터 공격위험이 있다’고 인식(2013년 8월)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아베정권 이후 일본과 중국간의 갈등은 평화적 해결보다는 일본회의 등 극우 정치 극우세력들의 주장에 의해 강경노선을 선택하면서 자신들의 씨름판에 미국도 끌어 들였다. (오노데라 이츠노리, 국가기본문제연구소 세미나, 2014년 10월 19일)

◆‘2장의 혀’(二枚舌)

일본인들은 앞뒤 말이 다른 모순되는 상황 즉, 각각의 상황에 따라 말이 다른 것을 ‘2장의 혀’(二枚舌)라고 한다. 지금 일본이 추진하는 헌법개정이 ‘2장의 혀’이다.

대중국 전략인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이 2016년 8월 아베 전 총리가 케냐 TICAD VI에서 행한 기조강연에서 제창되었는데, 이와는 달리 북한의 불법 해상 환적 활동을 방지 한다는 목적으로 미국, 영연방 국가들과 함께 역내에서 공동 감시활동을 확대하여 군사적 입지를 확대하는 한편, 센카쿠 문제 해결을 위해 대만문제를 야기하고 중국의 반발을 부추기고 있다.

아사히 신문 종군기자이면서 100세의 현역 언론인이었던 고 ‘무노 다케지’도 2015년 텔레비전 아사히의 인터뷰에서 2차대전 때를 상기하면서 우선 “적국이 아닌 자신의 국민들을 속인다”고 했는데(TV 아사히, 2015년 8월 13일) 지금 일본은 미중 갈등을 완화하려는 외교적 노력보다는 대외적 위협과 국내정국을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국민투표법을 개정하고, 헌법개정을 차근차근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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