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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일기(26)] 3월 29일(화) 헤비메탈과 클래식은 닮은 점이 있습니다

조연호 작가 승인 2022.06.14 14:00 의견 0


원래 운동하고 돌아온 다음 날은 일어날 때, 몸이 조금 무겁습니다. 운동의 효과입니다. 운동을 했으니 당연히 어딘가 뻐근하고 불편한 게 당연하죠. 사실 그런 느낌이 없으면 운동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후유증이 있다보니 그 수준이 달랐습니다. 일어나니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힘이 없었습니다.

‘더 누워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다가는 회복이 더 느려질 것 같아 바로 일어나 거실로 나갔습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과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저도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했습니다. 일어난 지 5분도 안 돼서 밥을 먹는 건 쉬운 일은 아니라고들 하지만, 저한테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언제 먹어도 맛있게 먹는 복을 받았으니까요.

적당히 먹고 첫째와 같이 나갔습니다. 저는 4킬로미터 걷기운동을 위해 출발했고 안아는 학교에 갔습니다. 산책길에는 항상 헤드폰을 쓰고 나갑니다. 음악은 대체로 신나는 음악을 듣습니다. 최근에는 정통 헤비메탈 음악을 찾아 들으면서 걷는데, 사운드에 보폭을 맞추면 힘든 줄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덧 숨은 헐떡이고 몸에는 땀이 흐릅니다.

헤비메탈 음악은 호불호가 있는 음악이고, 최근에는 거의 매니아들의 음악이 됐습니다. 시끄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듣다보면 클래식과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여러 악기가 조화를 이뤄 연주하고 보컬이 다른 악기의 커다란 음향을 뚫고 노래를 합니다. 클래식도 여러 악기가 하모니를 이뤄 좋은 음악을 연주하듯이 헤비메탈도 악기가 다르고 소리가 다를 뿐이지, ‘하모니’라는 의미에서는 유사합니다.

아무튼 다른 소리는 전혀 들을 수 없는 음악을 들으면서 저만의 거리를 걷습니다. 활짝 핀 꽃도 보고, 대구를 종으로 가로지르며 흐르는 신천도 잠시 훑어봅니다. 하루하루 다르게 꽃은 자기만의 자태를 드러내고 봄은 절정에 이른 듯합니다. 세상은 모두 제 자리를 찾아가는데 왠지 저만 저만치 동 떨어진 느낌입니다.

운동 후 간단히 씻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피곤했습니다. 잠시 쉬어야 했습니다. 쉬고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서 독서도 하고 새로 온 책들을 정리합니다. 최근에 출간한 책에 간단히 서명도 합니다. 개인적인 사인이 있긴 한데, 책에는 그냥 ‘조연호 드림’이라고 씁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제 고마움의 표시일 뿐입니다.

조금씩 활동량이 늘고 있고, 기침도 많이 줄었으니 분명히 회복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루 종일 지쳐있다는 느낌, 정말 싫습니다. 그래서 뭔가를 새롭게 해야겠다고 생각에서 아이들과 놀이공원에 놀러 가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의 일정을 마치고 부지런히 가면 몇 시간은 놀 수 있었으니까요. 저녁 5시 30분이 넘어서 놀이동산에 도착했고, 이래저래 처리할 걸 처리하고 입장하니 6시 정도 됐습니다.

“7시 30분까지만 놀고 집에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조금 짜증이 났습니다. 아이들이 조금씩 서둘렀다면, 더 오랜 시간을 놀 수 있었을 텐데 조그마한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서 평일 놀이공원 찬스를 덜 누리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아이들 타는 걸 봐주느라 즐길 게 없었죠. 아빠란 존재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이럴 수밖에 없는 존재인 듯합니다.

큰 딸한테는
“아빠같은 아빠 없단다! 아냐?”
“은근히 많거든요!!”
“이렇게 자주 놀이공원 데리고 다니는 아빠는 거의 없다니까?”

생색내기를 시전해도 큰 딸은 수긍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봤자 본인한테 유익한 게 없을 텐 데도요. 정말 저녁 7시 30분까지 놀았습니다.

중간에 안아한테는 회오리 감자를 사줬고, 주아한테는 에이드를 한 잔 사줬습니다. 저도 핫도그 한 개와 감자 칩을 저녁으로 먹었습니다. 체력도 달린 상태에서 아이들과 놀려고 하니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바짝 긴장하고 잘 마무리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피트니스에 가기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무리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더 늘어져서는 정상으로 돌아가는 데 더 시간이 걸릴 듯해서 지친 몸을 이끌고 몸을 단련하러 갔습니다. 당연히 평소처럼 운동할 수는 없었지만, 충분히 땀을 빼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샤워를 하고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었습니다. 『스노 크래시』 라는 책이었는데, 1992년에 나온 소설입니다. 이 책이 유명해 진 이유는 ‘메타버스’의 부상과 맞물립니다. ‘메타버스’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소설이죠. 솔직히 소설로서는 부족한 게 많았습니다. 플롯도 엉성하고, 작가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책인 듯했습니다.

특히, 성경과 관련한 부분을 고고학적으로 연구해서 제법 반영했는데, ‘메타버스’와의 연관성은 쉽게 찾기 힘듭니다. 이 책은 현재 ‘메타버스’를 다루고 있는 책이라면 모두 언급하고 있는데, 대체로 작가들이 문학적 감성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스노 크래시』 에 등장하는 메타버스의 의미는 다루지 않고, 1992년에 ‘메타버스’를 상상한 작가를 칭찬할 뿐이었습니다.

역시 세상은 “아는 게 힘이다!”라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이 진리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이니 말입니다. 솔직히 ‘메타버스’라는 언어의 기원으로 『스노 크래시』 라는 책을 인용했지만, 인용자가 제대로 읽어봤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렇게 체력이 닿는 데까지 읽고, 여전히 격리된 공간에 홀로 누웠습니다.

‘이번 주까지만 여기서 자자.’

솔직히 제대로 깔고 덮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에 잠을 자면 잘수록 피곤한 듯했습니다. 역시 잠자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를 통해서 깨닫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아 다시 《메트릭스》를 봤습니다. 역시 명작은 명작이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다 보니, 어느 덧 새벽 한 시. 그리고 영화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메타버스와 관련한 책을 읽고, 역시 메타버스와 관련한 영화를 봤습니다.

책과 영화와 같은 세상이 되려면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하겠죠. 적어도 이동통신망이 6G(Generation)는 돼야 한다고 하니까요. 막연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도 금물이고, 반대로 부정적인 디스토피아와 같은 세상만을 생각하는 것도 피해야 할 듯합니다. 어쨌든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니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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