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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_이야기(35)] 읽고 쓰고 생각하라

4부: 청소년과 부모들을 위한 제언과 일곱 가지 아이디어 #03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2.12.16 17:00 의견 0


우선, 싫든 좋든 읽고 쓰고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참 듣기 싫은 이야기입니다. 좀 오랜 과거 시절 독서는 많은 사람이 손 쉽게 할 수 있는 취미활동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라디오가 생겼습니다. 이제 귀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이미 존재했던 작품들을 좀 더 실감 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알다시피 이후 TV가 등장했습니다. 독서는 새로운 전기 상자의 기세에 밀려났습니다. TV는 독서만 밀어낸 게 아니었습니다. 사회적 간접자본을 점점 줄어들게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꽉 찼던 인간관계를 듬성듬성하게 만든 것이죠. TV를 보느라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니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했던 활동들이 줄어들고, 그러면서 당연히 인간관계도 줄어들 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스마트폰이 생겼습니다. 잘 못 이해하면 스마트폰의 경쟁상대가 독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독서는 TV와의 경쟁에서 밀린지 오래됐습니다. 그러니 스마트폰의 경쟁상대는 TV입니다. 미간을 찡그리고 고개를 파묻고 봐야 할 정도로 작은 기계의 등장은 가족들이 드라마를 시청하기 위해서 TV 앞에 옹기종기 모이는 시간마저 빼앗아 버렸습니다.

새로운 기술의 발달로 탄생한 기기들은 읽고, 쓰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점점 줄어들게 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정점에 서 있는 기기가 바로 스마트폰이고요. 분명 생활의 편리를 느끼게 해주지만, 확실히 인간의 사고력과 인간관계의 질 향상에는 분명히 폐해가 있습니다. 간단히 책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책은 아날로그 시대의 대표적인 산물입니다. 간단한 삽화와 글로만 적혀 있어서 독자는 계속 생각하고 상상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콘텐츠는 눈과 귀를 자극합니다. 화면은 생각할 필요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직관적인데, 글은 거의 없습니다.

TV 드라마는 전체 줄거리라도 알고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데, 스마트폰 속 콘텐츠는 즉흥적입니다. 과거를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그야말로 ‘인스턴트’죠. 그리고 처음 접해도 어렵지 않습니다. 수용자는 노력하지 않아도 현재 즐기는 콘텐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책은 이해하기 위해서 독후 활동을 합니다. 독후감을 쓰기도 하고, 토론도 합니다. 개인의 생각을 잘 정리해야 가능한 활동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생각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고요. 그러나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콘텐츠는 피드백도 단순합니다. ‘좋아요’, ‘싫어요’가 대부분이며, 댓글을 적기도 하지만, 그 길이가 짧습니다.

간혹, 언론사 기사 아래 많은 댓글이 달린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내용을 훑어보면 거의 하수처리장을 연상케 합니다. 최근에 한 교수님과 대화한 적 있는데, 대학생들의 리포트도 댓글 수준으로 작성해서 제출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읽고, 쓰고, 생각한다는 것, 즉 사고 훈련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읽기! 정말 어렵습니다. 특히, ‘스압(스크롤 압박)’을 느끼는 청소년들한테 긴 글을 읽으라는 것은 곤욕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여도 인간이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읽고, 쓰고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기업 ‘아마존(AMAZON)’에서는 PPT(Power point)를 활용한 발표 방식을 글로 대체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발표자도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할 수 있고, 보고 받는 사람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추세는 확산돼 우리나라 일부 대기업(현대카드, 하나은행 등)에서도 적용하고 있고요.

대기업이 반드시 좋은 직장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일단 알만한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글쓰기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확보한 자료를 읽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설득하기 위해서 읽은 자료를 재구성한다는 의미이고요.

이런 추세 속에서 읽고, 쓰고, 생각하지 않는 청소년들은 새로운 직업을 찾을 때,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런 직업을 택하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유튜버처럼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거나 메타버스 내에서 새로운 일거리를 찾을 거라고 할 수 도 있고요. 다 좋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기계가 대체하지 않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기획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내가 선택한 일을 잘 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스스로 개발해야 하는데, 백지상태에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까요?

유튜버, 메타버서 등 우리가 생각하는 새로운 직업은 모두 콘텐츠가 필수입니다. 창업하는 데 있어서 콘텐츠가 전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일을 혼자서 혹은 몇몇이 모여서 시작할 때, 콘텐츠 없이 시작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요? 답은 아이작 뉴턴(Sir Isaac Newton)이 말했습니다.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을 이 책에 맞게 의역해 보겠습니다. 누군가가 써 놓은 책을 읽고,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어야 콘텐츠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다양성을 존중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인간은 편견의 동물입니다. 자신이 속한 문화 환경에 따라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페어(Unfair)』에서는 가장 객관적이어야 하고, 그럴 것만 같은 판사, 검사들도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살게 될 지방분권 시대는 자칫 잘못하면 지역주의로 변질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활하는 시공간과 언어(방언)가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본인이 거주한 지역이 성장하고 발전하면 그렇지 못한 지역은 ‘틀렸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나라는 여전히 지역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20대 대선과 8회 지방선거 투표 결과도 여전히 지역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입니다),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라고 생각했던 유럽이나 미국도 이민자나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이 적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유럽의 여러 국가가 다문화 정책은 실패했다고 선언하면서 이민을 제한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청소년들이 살아야 할 시대는 더 세계화된 시대입니다. 물리적 발자국은 지역 내에 머무르겠지만 디지털 발자국은 세계 이상을 여행할 것입니다. 메타버스를 이용하면 우주나 해저까지도 쉽게 진출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우주 시대의 주역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 바로 ‘다양성 존중’과 ‘개방적인 자세’입니다.

‘다양성 존중’은 서로 다른 문화, 인종, 성별, 외모, 출신 등과 관계없이 존중한다는 의미입니다. 말은 쉽지만, 사람의 뇌는 주변의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받아서 나와 다른, 혹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어 합니다.

결국, 훈련이 필요합니다. 20대 대선 여론 조사를 보면, 청소년들과 가장 가까운 세대인 20대의 후보 지지율이 바람에 갈대 흔들리는 듯 오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양대 정당의 이념·정책적 차이가 크지 않으니 후보 선호도에 따라서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편견 하나가 크게 영향을 주는 듯한데, 바로 ‘페미니즘’과 관련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공약에서 정점을 찍었고요. 당시 제1야당에서 페미니스트 운동가를 영입하자(조금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보수 정당에서 페미니스트를 영입했다는 사실이. 그만큼 우리나라 정치 스펙트럼이 좁다는 의미이고, 아마도 다른 정당에서 제안을 했더라도 페미니스트 운동가는 입당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청년층 지지율이 썰물 빠지듯 빠졌는데 여성가족부를 폐지한다고 하니까, 다시 지지율이 회복됐습니다. 그저 말잔치에 불과한 공약임에도 쉽게 지지 후보를 바꾼 것이죠. 실제로 투표성향을 보니 20-30대 남성들은 야당 후보를 지지했고, 반대로 여성들은 여당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투표행위만 가지고 ‘다양성이 없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분명, 다양성 존중이라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청년들과 청소년들이 시청하는 많은 동영상은 시청자들의 다양한 관점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동영상은 시청자의 관심을 고려해서 유사한 영상을 계속 제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극단적인 내용물의 영상까지 제안합니다.

극단적인 성향의 영상들은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하지도 않고 왜곡도 서슴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시청자들에게 사실과 다른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잘못 된 인식을 심어주기도 합니다(20대 대선이 한참 진행 중일 때 필자가 운동하는 산책로에서 나이가 있는 여성분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전 문재인 대통령의 아내 김정숙 여사의 의상 비가 1조 원이 넘는 다는 황당한 내용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다양성 존중’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훈련을 해야 합니다. 다양한 영상을 보고, 서로 다른 채널의 기사도 검색해서 읽어야 합니다. 다행히 청소년들의 두뇌는 계속 성장하고 발전할 것이어서 노력의 여하에 따라서 분명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어서 ‘개방적인 자세’입니다.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폐쇄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개방적인 마음을 지니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리를 들어야 가능합니다. 즉, 다양성과 개방성은 상보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주변 환경에 영향 받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열린 자세를 취했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정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극보수적 성향의 기독교인들은 아무리 인권의 소중함을 말해도 성 소수자들을 위한 인권 보호를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같은 인간으로 보기 전에, 그들의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을 ‘죄(sin)’로 규정합니다. 나이가 어리고 많음에서 편견이 생긴 게 아니라, 그들이 살아 온 환경의 영향으로 이런 편견이 생긴 것이죠.

그러나 이런 부분도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야 합니다. 그것이 개방적인 자세의 첫걸음입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청소년들의 마음이 폐쇄적이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폐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방분권은 중앙정부의 물리적 시공간을 나눠서 시민들의 복지 등에 실질적인 혜택을 주자는 것이지, ‘우리끼리만’이라는 울타리를 더 높고 견고하게 만들자는 게 아닙니다. 따라서 개방적인 자세가 없다면 지방분권은 현재보다 더 심각한 지역 이기주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다소 추상적인 제언이었다면 청소년들이 주역이 될 지방분권 시대를 위한, 즉 청소년들을 ‘좋은 시민’으로 성장 시킬 수 있는 일곱 가지 아이디어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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