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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_이야기(38)] 미래를 향해!

4부: 청소년과 부모들을 위한 제언과 일곱 가지 아이디어 #06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2.12.23 21:18 의견 0

여섯째, 청소년 정치 참여 기회 확대입니다. 이제 선거권도 있고, 후보로 등록하고 선거에 나가서 당선되면 지역을 위해서 일(정치) 할 기회도 생깁니다. 하지만 성인과 비교했을 때 여러 모로 부족해 보이는 청소년들이 입후보 한다고 해서 바로 선출되지는 않을 듯합니다. 제 아무리 용기가 가상하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경력을 보고 밀어줄 유권자가 얼마나 있을까요? 아울러 기존 정치인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당선 가능성도 높지 않습니다.

아마도 정치권에서는 청소년 쿼터제를 도입해서 상징적으로 당선인을 배출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여성의 정치 참여를 돕기 위해서 여성 쿼터제를 도입한 것과 마찬가지죠. 정치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분명 공정한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존 롤스(John Bordley Rawls)의 『정의론』은 이런 공정과 관련한 문제를 잘 다룬 책입니다. 단, 능력 검증과 평가는 또 다른 영역입니다. 실력이 없으면, 당연히 비판받고 다음 선거에서는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당선 됐다면 책임감으로 무장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서 애써야 합니다. 청소년 정치인의 등장과 성장을 바란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정치 참여 기회를 줘야 합니다.

현재 중・고등학생의 정치 참여는 학내 학생회장 선거 외에는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투표를 경험하지만, 후보가 아닌 다음에야 크게 신경 쓰는 행사가 아닙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당연히 다음 세대 주역으로 인정해서 정치 참여(훈련)를 보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지역 내 사업에 청소년 고문단을 편성해서 그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다양한 거버넌스 모임에 참석해서 지역의 현안 문제를 보고, 듣고, 논의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기성세대의 좋지 않은 모습 –이권 다툼 등–을 볼 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이성적 동물이 아니기에, 이상과 현실의 다름을 미리 경험하는 것도 좋은 학습입니다.

아울러 현실 정치 활동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는 의회에 참석하게 해주고, 심화된 정치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당연히, 고교학점제가 실행되면 졸업하는 데 필요한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요. 그래야만 더 많은 학생이 관심 가질 테니까요. 투표하라는 표어와 홍보물이 세상을 가득 채우니까, 정치는 때가 되면 알아서 한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투표 행위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피에르 망데스(Pierre Mendès France)는 “민주주의란 이따금씩 투표용지를 투표함 속에 넣고, 권력을 한 명이나 여러 명의 선량들에게 위임한 다음 5년 동안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투표만을 위한 정치는 기득권을 위한 정치지, 정치 혁신과는 거리가 멉니다. 특히, 중앙정치를 중심으로 대부분 정치행태가 이뤄지는 대한민국의 정치 분위기에서 투표는 내편과 네 편을 가르는 칼날과 다를 바 없습니다. 결국 알지도 못하는 후보에게 투표하고 잠시 동안의 기쁨 혹은 실망을 느끼면 끝입니다.

하지만 지역에서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하는 정치라면 어떨까요? 청소년들이 참석하고 경험하고 후보가 되고 선출돼 지역을 위해서 일한다면, 분명 현재 정치의 모습과는 다르지 않을까요? 최근에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라는 표현을 자주 접합니다. 많은 상품이 등장하고 소비자들의 선택폭이 넓어졌기에 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 경험을 홍보합니다. 입어보고 반품도 할 수 있고, 사용해 보고 반품할 수도 있습니다.

대형 마트의 시식코너도 이런 경험 마케팅의 일종입니다. 그런데, 정치 분야는 왜 경험이 제한될까요? 좀 더 적극적으로 청소년들을 정치 경험의 장으로 초대해서 정치의 소중함을 몸소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부분이야말로 지방분권 시대에 더 적극적으로 실행할 수 있지 않을까요? 교과서에서 배우는 기본적인 정치구조 외에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습니다. 빙산의 일각만을 학교에서 가르쳐주고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정치 활동하게 한다는 것은 복권에 당첨될 확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곱 번째, 미래학을 가르쳐줘야 합니다. 역사가 과거 이야기라면, 미래학은 내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역사는 주로 결과에 대한 원인을 찾습니다. 완벽한 인과관계는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원인이 중첩되고 작용해서 하나의 사건으로 파생하는 것이죠. 물론,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반성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게 역사의 공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학자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가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꼭 그대로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듯이 똑같은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보면, 과거를 돌아 볼 여유도 없이 현재를 살아가는 게 대부분이며, 미래에 대한 기대(꿈) 따위는 저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의 현재는 기성세대의 삶의 자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그늘 아래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기성세대는 과거 콤플렉스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통해 대리 만족하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학수고대하는 마음입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면 부모는 만족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저당 잡힌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니 막상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앞이 깜깜할 수밖에요. 아무리 언론에서 새로운 기술, 새로운 세대, 새로운 문화 등을 선전해도 과거의 늪에 빠진 부모들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청소년들도 당장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니, 역시 미래를 생각할 겨를이 없고요.

역사는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는 읽는 게 아니라 예측하는 것입니다. 미래학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미래학자들의 예견 대부분이 틀렸다고 말합니다. 바로 1초 후의 일도 모르는 게 인간이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는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것인가?』에서 미래 예측 훈련을 통해서 조금 더 정확한 미래 예측이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더라도 미리 미래와 관련한 학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교하면, 여러 면에서 유리할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는 현재를 바탕으로 예측하는 것이어서,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역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곡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구(舊)지정학적 관점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강대국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바른 역사의식을 견지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시・공간을 다른 국가에 침탈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 이상으로 중요한 게 미래입니다.

공간은 달라도 비슷한 시간을 살아가는 동아시아 지역을 상상해 봅시다. 차이는 있겠지만, 청소년 세대의 감수성은 유사할 거로 생각합니다. BTS(방탄소년단)의 인기가 전 세계적이고, 한국, 중국, 일본 할 거 없이 스마트폰을 활용한 온라인거래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폐쇄적이어서 페이스북 등과 같은 개방적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제한하고 있지만, 다른 국가는 그렇지 않습니다. 장려까지는 아니더라도 제어할 합법적인 방법이 없습니다.

역사는 분명히 다르지만, 과거와 비교할 때 현재는 훨씬 유사하게 살아갑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더 빈번한 교류(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를 하고 있으며, 한 국가의 문제가 다른 국가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는데, 전쟁이 미치는 영향은 국지적이지 않고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반전(反戰)이라는 공감대가 전 세계적으로 형성돼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부부가 되면 닮아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더 자주 만나고 교류하다 보면, 더 유사해질 것입니다.

과거의 표준은 국가, 민족 등의 추상적 개념 아래 지리적인 경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면, 미래는 국가, 민족 대신 세계라는 개념이 더 설득력을 얻을 것이며, 물리적 경계보다는 문화차이, 세대차이가 더 중요한 경계선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학을 학습하는 것은 미래를 온전히 예측한다는 의미 보다는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우리 지역에 청소년들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 – 공간, 프로그램 등 – 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청소년들이 직접 지역 일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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