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뉴디지털화 시대를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앞으로 직업은 더 많이 사라질 것입니다.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L. Friedman)은 『늦어서, 고마워』에서 자신의 딸을 예로 들면서 직업을 찾는 시대가 아니라 스스로 직업을 만들어야 할 시대가 올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과거에는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했을 때, 대부분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직업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인공지능이 등장하니 화이트칼라의 직업도 사라질 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망됐던 흔히 말하는 ‘사(士)’자 돌림 직업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의료계에서는 ‘왓슨’이 등장해서 의사들을 긴장하게 했고, 법조계도 인공지능 판사나 변호사가 등판할 기회를 시시각각 넘보고 있습니다. 예술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의력의 끝판이라고 할 수 있는 작곡, 소설 등에서도 인공지능의 선전이 대단합니다.
경제적 대변환(전환)기에 항상 등장하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요세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의 말인데, 새로운 경제전환기에는 기존 경제 질서가 무너져서 혼란이 오지만 그 시기가 극복되면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된다는 의미입니다. 주로 기업가의 창의성과 혁신성에 방점을 찍은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적인 입장에서 비판하자면 경제 현상에 관련한 소수 부르주아를 위한 이해 방법일 뿐, 대다수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해석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처럼 계급을 나누고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를 억압과 착취관계로만 해석하는 것도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나, ‘창조적 파괴’가 분명 소수 엘리트주의를 위한 해석 방법인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실제로 새로운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 할 때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계층은 하위 노동자 계층이었습니다. 그나마 과거에는 새로운 직업교육을 통해 재취업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 것도 쉽지 않습니다. 사회의 변화가 너무 빨라서 쉽게 적응하기도 힘들고 이제는 옆에 있는 인간이 경쟁자가 아니라 기계, 디지털 휴먼 등과 경쟁해야 하니,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가 없게 된 것이죠.
이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기존 산업혁명은 역사(과거)를 훑어보고 설명한 산업혁명이라면, 4차 산업혁명은 예측 혁명입니다. 즉, 과거 산업혁명과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이전 산업혁명은 하드웨어에 비중을 둔 산업혁명이었다면, 새로운 산업혁명은 소프트웨어가 중심입니다.
역사를 반추(反芻)해서 미래를 대비하는 것, 분명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과거에만 연연해 미래를 제대로 준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미래학자가 ‘1인 기업’을 말하고, ‘메이커 시대’를 전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엔비디아(NVIDIA)의 CEO 젠슨 황("Jensen" Huang)의 “메타버스가 오고 있다. 미래에는 메타버스가 인터넷의 뒤를 잇는 가상현실 공간의 주류가 될 것이다.”라는 말이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중에서 혹시 생소한 말이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이 있다면, 빨리 찾아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현재를 열심히 사는 이유는 바로 내일을 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만을 위해 산다면 내일이 됐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겠죠?
필자는 청소년들을 위한 ‘메이커 센터’, ‘청소년 창의 도서관’ 등을 설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여러 도시에 메이커 센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물리적인 공간과 하드웨어만 있을 뿐이지, 실제로 그곳을 작업실로 활용하는 시민은 별로 없다는 것이죠.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우선, 기성세대는 관련자가 아닌 이상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심적 거리가 멉니다. 코딩을 강조하면서 청소년들이 실제로 활동할 수 있는 시공간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영어 교육을 10년 이상 받았어도 일상 대화조차 어려워하는 기성세대와 뭐가 다를까요?
다음은 청소년 도서관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현재 전국에 수많은 도서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청소년 전용 도서관은 얼마나 있을까요? 어린이 도서관은 지역마다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는데 ‘청소년 도서관’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남양주시 ‘이석영(독립 운동가) 도서관’이 새로 증설되는데 청소년 전용 도서관이라고 합니다. 아마 도서관이라고 하니까, 책으로 가득한 서고와 책장 넘기는 소리마저 조심해야 하는 열람실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최근 도서관은 책을 읽기 위한 시공간이 아닙니다. 증평군의 도서관은 주민 복합문화 공간이었고, 부천시의 도서관은 시민들의 일상 문화공간이었습니다. 남양주시 정약용 도서관은 시민들의 쉼터였고요.
그렇다면, 청소년 도서관은 당연히 청소년들이 원하는 활동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K-pop 댄스도 배우고 유튜버가 될 수 있도록 지원받으며, 3D프린터를 사용해서 실제로 상품을 만들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혹은 HMD(Head Mounted Display, 머리 부분 탑재형 디스플레이)를 지원해서 메타버스 세계에 빠져보게 해야 합니다. 과거 도서관은 시험 기간에만 잠시 들러서 시험 준비했던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일상 속에서 개인이나 공동체가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청소년들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고 기성세대와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에 관련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음은 청소년들 스스로 준비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계속)
<저작권자 ⓒ시사N라이프> 출처와 url을 동시 표기할 경우에만 재배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