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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알자] 지도자들의 결심과 새로운 상처

정회주 전문위원 승인 2023.03.13 23:43 의견 0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8년 방일 중 일본 국회에서 가진 연설을 통해 “양국은 1,500년 교류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관계가 불행했던 것은 400년 전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7년과 금세기 초 식민지배 35년간입니다.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 협력의 역사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한 장구한 교류의 역사를 쌓아온 양국 조상들에게, 그리고 미래 후손들에 대해 부끄럽고 비난받을 일이 아닐까요?”라고 했다.

1978년 중국 부수상인 ‘덩샤오핑’도 일본과 중국의 국교정상화를 앞두고 일본을 방문하여 기자들에게 한 말이 있다. “중국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때도 양측은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다... 우리 세대 사람들은 지혜가 부족하다. 이 문제는 결론이 나질 않는다. 다음 세대는 분명 우리보다는 현명해질 것이다. 그때는 반드시 서로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이처럼 정치 지도자들의 말은 국가 간의 관계를 잇기도 하고 끊기도 한다. ‘덩샤오핑’의 말은 후대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도 당시 경색국면의 한일관계를 회복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인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연설문을 두고 여야는 서로 극렬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매일경제 여론조사결과에서 “한일관계의 개선은 필요(67%)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강제징용의 해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37%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KBS 여론조사 결과(3.9)에서도 “잘못한 결정(53.1%)이며, 전범기업에 대한 구상권행사에 찬성한다(72.5%)”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2월 19일 일본 지지(時事)통신에 따르면 일본에 대해 호감이 간다고 답한 한국 사람의 비율은 전회 조사(2021년 11~12월 실시)보다 8.7%포인트 증가한 39.9%로 2015년 조사 개시 이후 최고였다. 또한 지난 1월중 방일자를 보면 젊은 층이 절반을 차지했다. 이들의 방일은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한 해외여행이 풀렸다는 것과 엔저의 영향도 있지만, 슬램덩크와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온 곳을 가보고, 산토리 위스키로 만든 얼그레이 하이볼을 현지에서 맛보고 싶어한다.

한편, 최근 일본 국회에서 육상자위대 출신인 사토 마사히사 참의원 의원이 기시다 총리에게 “역대 내각의 입장(무라야마 담화 등)을 전체적으로는 이어 가되 현시점에서 총리의 입으로 ‘반성’과 ‘사과’를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요구(3.6. 참의원 예산위원회)한 것은 우리에게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최근 공개된 ‘아베 회고록’에도 아베가 고노 담화를 언급 못하게 했다는 사실이 공개된 바 있다. 이처럼 일본은 그들 스스로가 과거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수치의 역사(恥の歴史)’를 숨기고자 '반성'과 '사죄'는 앞으로도 직접적으로는 언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글로리>시즌2에서 주인공 동은의 조력자 여정은 “상처를 치료하려면 상처 위에 더 깊은 상처를 내야 해요. 새살이 차오르도록...”이라고 말했는데, 최근 한일관계를 지켜보니 새살이 차오르도록 새로운 상처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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