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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한잔(07)]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 『콜레라 시대의 사랑』

- 우리는 여전히 주술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3.03.14 02:09 의견 0

시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대학에 다녔던 시기에는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보다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인기가 더 많았다. 그런데, 코엘료를 제2의 마르케스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르케스의 작품을 찾아서 읽었다.

도저히 한 번 읽어서는 족보조차도 이해되지 않는 『백년의 고독』, 이어서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에 처음 출간 된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에 선물로 많은 사람이 주고받는다는 『콜레라 시대의 사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등을 내리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후에도 마르케스의 여러 글을 읽었고, 그와 피델 카스트로와의 친분관계도 알게 됐으니, 꽤 관심 가지고 찾아 읽은 작가 중 한 명이다. 마르케스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활용하는 대표적인 작가이며, 대부분 작품은 정치·사회·문화 등을 비판하고 있다.

본 작품도 제목만 본다면, 콜레라 시대를 극복한 연인의 사랑을 다룬 소설로 오해할 수 있겠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50년 넘게 첫 사랑을 기억하고 기다려 온 한 남자의 순수한(?) 사랑이 주요 스토리지만, 작품은 ‘콜레라’라는 선(line)을 그어놓고 이전과 이후를 정치·사회·문화적으로 구별하고 있다. 근대와 주술의 마지막 대결이라고 해야 할까?

아버지와 어머니의 실수로 태어난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우연히 거리에서 본 ‘페르미나 다사’를 사랑하게 된다. 둘은 우여곡절 끝에 연인관계로 발전하지만,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페르미나 다사 아버지의 사위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기에 둘은 결혼을 미뤄야만 했다. 의도적으로 둘을 떼 놓으려는 아버지의 술책이 성공한 것이었을까?

아버지의 강압으로 여행을 다녀 온 페르미나 다사는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의 모습이 과거와 같지 않았고, 그런 그를 사랑한 본인을 자책하며 연인 관계를 마무리한다. 이후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이별의 슬픔을 잊기 위해 수많은 여인들과 잠자리를 하면서도 페르미나 다사의 주변에 머물렀고, 페르미나 다사는 연인 관계를 종지부 지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전도가 촉망되고 지역의 최고 가문의 지성이라고 할 수 있는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의 끈질 긴 구애에 결혼을 승낙한다.

그리고 51년이 지나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가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 사건 당일, 순정남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다시 페르미나 다사에게 고백을 하고, 이후 2년간 둘이서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둘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여행을 계속 하기로 다짐한다.


◆콜레라의 의미를 이해하자

작품에 등장하는 콜레라는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첫째, 콜레라는 상사병이다. “상사병은 콜레라와 증상이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콜레라는 상사병을 상징한다.

둘 다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유사하며, 그만큼 사랑을 갈망하는 열병의 위력이 강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50년이 넘도록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페르미나 다사를 잊지 않고 사랑했으며, 다시 고백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페르미나 다사는 그런 고백을 받고 당황했으나, 다시 그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둘째, 콜레라는 죽음을 다하는 사랑이다. 50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린 남자, 그리고 그의 사랑을 다시 받아 준 여자. 이 둘이 함께 떠난 여행은 이제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사랑임을 암시한다. ‘플로렌티노 아리사에게는 53년 7개월 11일의 낮과 밤 동안 준비해온 대답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 목숨이 다할 때까지!”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지켜 온 사랑을 죽는 날 까지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여기까지 보면 정말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를 다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의 콜레라의 상징은 낭만적 사랑을 그리는 데만 사용된 게 아니다. 콜레라라는 경계를 두고 근대화를 선언한다. 그래서 세 번째 의미는 근대화 시작의 상징이다.

근대의 상징적인 인물이 바로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이다. 그는 고향으로 귀향해서 질병, 위생 등과 같은 부분에 많은 신경을 쓴다. 하지만, 토속적 기운, 주술을 여전히 신봉했던 과거의 사람들은 박사의 제안을 무시한다. 결국, 박사의 진단과 처리 방법이 옳았다는 게 증명되면서 지역 구조가 바뀐다. 무속적 치유에서 과학적 진단과 의학적 치료로 이전하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근대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넷째, 근대화로 사회구조가 주술 중심에서 과학으로 넘어갔다면, 사랑에 있어서도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일흔이 넘은 남녀의 사랑에 대해서 페르미나 다사의 딸은 “우리 나이에 사랑이란 우스꽝스러운 것이지만, 그들 나이에 사랑이란 더러운 짓이에요”라고 이야기한다. 이후 이런 딸의 이야기를 들은 페르미나 다사는 딸을 배척하며 그녀의 집에서 추방하고 지역에서 떠나게 한다. 즉,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사랑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다섯째, 여성권의 신장이다. 50년 넘게 혼자 애타게 사랑한 사람은 남자 플로렌티노 아리사다.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 역시 페르미나 다사와의 관계 속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여자 주인공이 두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잠자리를 같이한 많은 여성들도 수동적으로 섹스를 하지 않는다. 적극적인 섹스 태도를 보이면서, 남성의 욕구 해소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섹스하는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政府)에 대한 불신이다. “어쨌거나 보건 당국이 기쁨에 넘치는 통계를 제시했지만, 콜레라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었다.” 여전히 코로나 시대를 보내고 있는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자. 코로나 종식을 외쳐도 수긍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그리고 현재 통계 자료를 신뢰하는 국민도 거의 없다. 가장 신뢰를 받아야할 정부 기관에 대한 불신은 콜레라 시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

2020년부터 코로나 시대가 시작돼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제 만 3년이 지났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처음에는 특별한 대처 방법도 몰라서 허둥지둥 됐다. 그러나 현재 전 세계는 코로나 엔데믹을 선포했고 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마스크를 얼굴에서 제거해 버렸다.

물론,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이 코로나로 입원하고 죽는다. 다만 그 수가 많지 않아 나이가 어린 사람, 건강한 사람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럭저럭 인류는 코로나를 극복한 듯하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우리는 여전히 주술적인 시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특정 종교는 기도로 코로나를 극복하려 했으나, 오히려 많은 환자를 양산했고, 방역 지침을 어기고 입국해 방역 당국을 당황하게 한 목회자도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선진 사회로 진입했다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주술적 판단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선진적이어야 할 정치 분야는 어땠을까? 우리는 코로나 시대에 여당이 국회의 60%를 점유하는 압승을 관전할 수 있었고, 이어서 역대 최소 득표비율 차이로 정권이 바뀌는 국면도 경험했다. 알다시피 전 근대적인 주술적 정치지도자를 매일 보고 있다. 꼭 무당굿을 해야만 주술이 아니다. 모르는 부분, 실수한 부분을 대통령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인정하지 않고, 옳다고 우기는 게 현대판 주술이다. 그런 주술에 현혹되는 정치인들을 보면, 과거 기우제를 지냈던 시대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작품은 콜레라를 경계로 달라진 사랑, 주술과 과학의 대립, 여성권 신장 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신뢰할 수 없는 정부의 통계에 대한 지적을 남겼는데,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결혼을 포기하는 청년과 인구절벽 상황, 그리고 여전히 주술적 사고가 만연한 현대, 여전히 세대간, 성별 등의 차이로 격렬해진 갈등을 목도하고 있을 뿐이다.

2022년 세계 민주주의 지수를 살펴봤다. 우리나라는 아슬아슬하게 8점을 넘어서 완벽한 민주주의 국가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2023년 지수는 더 떨어질 듯하다. 남이 판단하는 자료니 무시해도 되겠지만, 분명 대한민국의 국민 중 적어도 51%이상은 현재 상황을 주술이 판치는 시대로 이해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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