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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규정되지 않은 불안함의 미학 - 연극 <까마귀의 눈>

김혜령 기자 승인 2019.10.23 22:46 의견 0
연극 <까마귀의 눈>  (국립극단 제공)

국립극단이 연극 <까마귀의 눈>을 공연 중이다. 11월 3일까지 공연이지만 이미 전석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번 공연은 당대 파격적 작품을 선보인 작가 이상의 시집 <오감도>의 제1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두 작품이 무슨 상관이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감도>는 한자로 ‘烏瞰圖’. 새가 하늘에서 내려다 본 시선으로 그려낸 건축물의 완성도인 ‘조감도(鳥瞰圖)’를 활용한 언어유희로 ‘오감도(烏瞰圖)’는 까마귀의 시선으로 내려다본 그림이란 의미로 조감도를 비꼰 제목이다. 연극의 제목은 이상의 제목을 한글로 풀어냈고, 장르를 초월해 시를 연극으로 풀어냈다.

연극 <까마귀의 눈>  (국립극단 제공)

배우들은 장면에 몰입해 자신이 지닌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덕분에 소극장 판은 배우들이 내뿜는 아우라로 가득 찬다. 공연시간은 70분 정도로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극이 끝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다.

충격적인 건 극 자체가 뭐라고 정해져있지 않다는 점이다. 모든 형식과 경계선이 파괴되며 무대인 공간과 무대가 아닌 공간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심지어 관객의 좌석도 정해져있지 않다. 공연 순간순간, 관객은 배우 옆에서 극의 일부에 포함되기도 하고 극의 외곽에서 관찰하는 관찰자도 된다. 중요한 것은 극 일부가 되건 극의 관찰자가 되건 선택은 관객 마음이다. 극을 보는 중에 자리를 옮겨 다니는 것 역시 관객 마음.

이 연극은 정해진 대본도, 대사도, 연출도 없다. 그날 분위기에 맞춰 모든 것이 즉흥으로 진행될 뿐이다. 연극 내용 역시 마치 이상의 오감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연극인지 행위예술인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 극이 마무리된다. 뭐든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불안함이 담긴 시. 시에 담긴 정서를 무대에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원작의 재해석이라 볼 수 있지만 실은 원작을 아주 잘 표현한 작품이다.

극은 연출자 마음대로 흘러간다. 연출자는 무대 위 모든 것을 지배한다. 배우들의 몸짓, 대사, 행동 심지어 무대 조명과 음향까지도 그날 기분, 상황, 분위기에 따라서 바꾼다. 매일이 새롭게 태어나는 극이다.

연극 <까마귀의 눈>  (국립극단 제공)

극 중 배우들은 <오감도>를 욕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상의 시를 낭독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대사를 읊조리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오감도>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상을 감싸기도 한다. 특정 행동을 시도하려다 멈칫거리기도 하고, 의미 없는 대사를 읊조리기도 한다. 마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지은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같다. (시사N라이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리뷰 참조)

맞다. 이상의 시 역시 문법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문장, 전혀 의미 없는 단어들을 나열해 기존 언어체계를 모두 무시하는 글을 쓰곤 했다. 그 자체로 한편의 행위예술을 글로 표현한 느낌이다. 그렇지만 이런 의미 없는 문장들이, 알 수 없는 단어 조합이 무의미하진 않다. 그 모든 것들이 조화되어 마음속에 울림을 주기도 한다.

연극 <까마귀의 눈>  (국립극단 제공)

그런 의미에서 재창조된 공연 <까마귀의 눈>와 함께 보는 이상의 <오감도>는 현대인의 삶과 무척이나 닮았다. 우리 모두가 의미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뒤돌아보게 만든다.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삶,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으면서 영화, 책, 강연 등 ‘자아를 찾는 여정’이라는 이름의 콘텐츠를 소비하러 다닐 뿐이다. 정작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면에서 찾지 못하고 의미 없는 단어들을 찾아 바깥으로 돌아다닌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함. 우리는 모두 정의내릴 수 없는 자신을 불안해한다. 작품은 그 어느 것 보다 이런 지점을 잘 표현하고 있다. 아무것도 규정할 수 없어서 두려운 마음을 말이다. 그래서 극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아름답게 느끼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당대 모두가 거부했던 이상의 시가 현대에 와서 엄청난 가치로 재평가되는 것처럼, 아무것도 규정되지 못해서 불안한 자기 자신이 언젠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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