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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의시대(1)] 공공조형물 건립·지역브랜드 사업, 예산털기용인가?

요즘 뜨는 ‘로컬’! 그러나 정책 속에는 진정한 ‘로컬’이 없다

윤준식 기자 승인 2020.01.13 06:25 | 최종 수정 2020.05.21 20:49 의견 0
서울 남영역 인근 '열정도'의 <콤콤오락실> 전경. 레트로 열풍은 이런 외관을 허름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힙'하다고 느낀다. 지자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간판정비 사업은 노후된 간판이 낙하해 시민안전을 위협하는 일을 예방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었지만, 획일화된 규격과 모양으로 인해 지역과 점포의 개성과 정체성을 저해하기도 한다.  (사진: 윤준식 기자)

“노후된 도시를 살리겠다고 공무원들이 찾아왔어.
 지역을 살리겠다며 여기에 영화관을 짓고,
 복합문화공간을 짓겠다는 거야.
 당황스럽더라고...”

이 이야기를 듣는 필자 역시 당황스러웠다. 이곳은 노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노령화된 지역을 살리는 방안이 복합문화공간이라니? 그런 건물이 들어선다고 해서 젊은이들이 북적대는 곳으로 바뀔 수 있을까? 문화의 주 수요자들이 젊은 층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상관관계일 뿐, 인과관계라고 볼 수는 없다. 복합문화공간을 세운다 해도 젊은이들이 올지, 안 올지는 기계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 지역 주민의 의견을 청취하러 나왔다고는 하지만 발상부터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모습이다.

최근 ‘로컬’이라는 키워드가 뜨며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방향성을 정확히 잡지 않은 채 예산만 쏟아 붇고 있어서다. 랜드마크 컨셉의 공공조형물과 지역 리브랜딩 등에 국민의 혈세만 대거 소모되고 있다. 물론 공공조형물과 리브랜딩 사업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충분한 연구와 고민이 되지 않아 목적이 불분명한 조형물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yqFvbNQtT5I

(▲영상출처: 연합뉴스TV 유튜브채널)

시 승격 60주년을 맞이한 경북 포항시가 2009년 3억 원을 들여 설치한 ‘은빛풍어’는 과메기 홍보를 위해 커다란 꽁치가 땅에 박혀 꼬리를 내놓은 형상의 조형물로, 꼬리크기만 자그마치 가로 11m, 높이 10m에 달한다.

문제는 이 조형물이 포항공항 입구에 설치되었는데, 마치 비행기가 추락한 것 같은 인상을 주며 흉물논란에 휩싸였다. 몇 차례의 시민공청회를 거쳐 뒤늦게나마 매각에 나섰고, 예술적 가치가 없다는 감정평가로 1,420만원에 고철로 매각되었다. (한국일보 기사참고: 포항 3억짜리 꽁치꼬리 조형물, 결국 고철 값에 ‘땡처리’)

세종시가 정부세종청사 국세청 건물 앞에 설치했던 조형물 ‘흥겨운 우리가락’도 저승사자를 연상케 한다는 민원으로 인해 결국 철거 후 창고신세가 되었다. (서울경제 기사참고: 세종시의 ‘골칫덩이’ 1억원짜리 조형물 결국 폐기처분 수순)

관광객 유치 목적의 공공조형물 논란은 더욱 많다. 알파고를 이긴 유일한 바둑기사 이세돌의 고향 전남 신안군은 100억 규모의 예산으로 황금바둑판 상징물을 제작하려 했으나 혈세낭비 논란이 일며 무산되기도 했다. (조선일보 기사참고: 신안군, 금 189㎏녹인 '100억대 황금바둑판' 제작 취소)

인천 남동구는 소래포구 5부두에 전망대 목적의 공공조형물 ‘새우타워’를 건립하겠다고 나섰다. 경남 함양군은 삼봉산에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980억의 예산을 편성해 ‘변강쇠와 옹녀 테마공원’을 조성중이었으나 비판여론에 부딪혀 예산을 축소했다. 태권도의 고장 전북 무주군도 향로산 정상에 높이 33m의 ‘태권브이’ 동상을 건립하기로 했다가 주민 반발로 재검토에 들어갔다. (연합뉴스 기사참고: 변강쇠·옹녀공원, 산꼭대기 태권브이…논란 부르는 공공조형물)

산청딸기 박스디자인과 딸기 캐릭터  (산청군 제공)

예산이 소모되는 건 공공조형물만이 아니다. 지역을 홍보하기 위한 브랜딩 작업과 홍보물에 대한 투자도 만만치않다.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BI, CI 작업이나 캐릭터 사업을 여러 번 시행해 왔기에, 요즘은 지역 특산물의 리브랜딩 사업이 눈에 띄고 있다.

딸기가 특산물인 경남 산청군은 산청딸기의 명품화를 위해 포장용 상자 디자인을 통합하며 딸기 캐릭터를 선보였다.디자인 통합과 ‘산청딸기’라는 아이덴티티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성과에 만족할는지 모르나, 아쉽게도 딸기를 구매하는 소비자에 대한 고려가 부족해 보인다.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경남 산청은 충남 논산, 공주, 부여, 전남 담양 등을 비롯한 딸기 산지로 유명한 곳 중 하나에 불과하다. 소비자에게는 ‘맛있는 딸기’면 산지가 어디든 상관없다. 따라서 ‘산청딸기’를 선택해야 할 이유가 스토리텔링의 형태로 캐릭터에 담겨야 한다. 그러나 포장용 상자 한 군데에만 캐릭터를 적용한 것으로는 딱히 스토리텔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보여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Zgga4kEjkXA

(▲영상출처: 유튜브 충주씨 채널)

충북 충주시는 농산물 통합브랜드로 ‘충주씨’를 선보였다. 한편 ‘충주씨’는 충주시를 상징하는 수달 캐릭터의 이름이기도 하다. 예부터 충주 달래강은 수달이 많이 살아 ‘달천강(獺川江)’으로도 불렸다. 충주시는 충주시 농산물 통합브랜드인 ‘충주씨’를 ‘우주 최초 충주시 수달공무원’으로 의인화하고 농업정책국 농정과 영업서기보 직급으로 임용하기까지 이른다.

원래 충주시는 탁월한 SNS 홍보역량을 자랑하는 곳이다. ‘B급 감성’, ‘미친 드립력’ 등으로 여러 차례 화제가 되었으며, 페이스북 좋아요 3만 명, 유튜브 구독자 수 7만 5천 명 등 다른 관공서나 공공기관 채널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특유의 아스트랄한 감성의 콘텐츠가 밀레니얼 세대들의 호응에 힘입으며, 3조 원 규모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충주씨’ 브랜드는 이런 성과와는 별개로 충주시와 단절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별도로 생성된 페이스북은 1천명 가량, 유튜브 채널은 220명 가량의 구독자를 확보한 것으로 나온다. 물론 ‘충주씨’가 등장한 지 1개월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런 정량적 성과를 함부로 논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충주시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채널에 등장해 인사조차 하지 않는 건 부정적인 상상을 하게 만든다. 게다가 요즘 뜨는 ‘펭수’를 흉내내는 수달공무원 캐릭터가 얼마나 파급력을 가질까? 충주 농산물 통합브랜드로서의 독자적 정체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

'서울의 해몽'이라는 주제로 DDP 진행된 대형 미디어 파사드 쇼 '서울라이트'  (서울시 제공)

이는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서울 DDP에서 진행된 ‘서울라이트’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의 ‘Vivid Sydney’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힐 정도로 큰 의미를 부여한 대형 미디어 파사드 쇼였다. 그러나 이 쇼는 서울시민들에게 생각보다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고, 쇼를 관람했다는 서울시민도 많지 않았다. 오히려 서울시가 낸 보도자료에서 국내외 관광객 100만 명이 참석했다 밝히고 있어 깜짝 놀랬다. (문화일보 기사참고: 서울시 겨울빛 축제 ‘서울라이트’ 관람객 100만 명 대박)

보도자료 내용 속에 서울라이트 기간 중 DDP 전체관람객 숫자를 866,603명으로 명시하고 있어 100만 관람객은 이 숫자를 포함해 통계를 낸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여기서 전년도 DDP 전체관람객 숫자를 543,513명으로 밝히고 있으니 ‘서울라이트’ 쇼로 인해 DDP에 유입된 방문객 숫자는 323,090명으로 20일 간 50만 명을 끌어 모았다고 보는 편이 보다 보수적 판단이 아닐까? (관점에 따라 청계천이나 동대문 거리를 지나며 DDP 외벽을 바라본 사람들도 관람객으로 간주한다면 100만명 이상으로 집계할 수도 있겠다.)

대체 이런 행위들이 ‘로컬’과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연관성이 아주 없다고 부정할 순 없다. 지역을 대표할 만한 요소들로 조형물, 브랜드, 축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로컬’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영어사전에서 ‘local’을 검색하면 “①(현재 얘기되고 있거나 자신이 살고 있는 특정) 지역의, 현지의 또는 ②(특정 지역에 사는) 주민, 현지인”이라는 의미로 나온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지만, 그 지역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은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에 두고 바라보기 보다는 지역특산품, 관광, 문화적 도시재생의 일환으로만 보는 듯하다.

특히 문화적 도시재생 차원에서 하는 사업들의 대부분은 노후화된 거리를 ‘힙’한 거리로 바꾸겠다는 작업들이다. 거리 정비를 겸해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든다는 미명하에 노후화된 간판을 개선한다든가 전봇대를 없애고 전력선을 지중화하는 사업이 한창이다. 우선 시민들의 안전을 배려한다는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사업임에는 분명하다.

<걷고 싶은 거리>사업의 일환으로 전력선 지중화가 이루어진 전남 어느 소도시의 거리. 인구절벽 위기 속에서 대체 누가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고 싶었는지 묻고 싶다.  (사진: 윤준식 기자)

그러나 정비가 완료되어 깨끗해지고 새로워진 거리를 들렀더니 지역정서나 개성을 찾을 수 없는 경우를 종종 마주친다. 거리의 성격을 깊이 있게 고려하지 않고 획일화된 정비사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지역 도시의 거리들은 지역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발전해왔는데, 정비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 거리의 풍경이 어딘가와 똑같은 기성품 모습처럼 되어버린다면 이만큼 서글픈 일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간판 정비사업을 하기 전, 오래된 간판이 즐비한 상태가 거리의 색채에 맞는지도 모른다.

‘서울라이트’ 쇼에서 느끼는 아쉬움도 ‘로컬’의 특징을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유명 디자이너 레픽 아나돌과 함께 AI와 딥러닝 기술을 적용해 서울과 DDP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미지로 담아낸 미디어 파사드라 설명하고 있지만, 화려한 영상과 웅장한 사운드 속에서 이번 쇼의 주제 ‘서울의 해몽’을 찾고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이런 괴리감들은 ‘(좁은) 지역’, ‘(중앙에서 떨어진) 지방’으로 ‘로컬’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나타나는 시행착오들로 보여진다. 랜드마크 조형물이 “지방을 중앙처럼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실패했고, 미디어 파사드는 “지방이 아닌 중앙”으로서 ‘서울이라는 지역’은 고려하지 않고 ‘수도 서울’의 관점에서 진행된 축제였다. 지자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수많은 브랜드 사업들도 ‘(좁은) 지역’의 의미만 담고 있지, 확장된 문화적·경제적 생태계의 의미까지 다다르지 못했다.

<로컬의시대> 2편에서는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로컬’의 의미를 보다 깊이있게 다루어 보고자 한다.

▲위 기사는 로컬트렌드 미디어 <비로컬>과 인터넷신문 <시사N라이프>가 공동기획·취재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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