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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거버넌스(6)] “새 술은 새 부대(負袋)에”-거버먼트에서 거버넌스로 (상편)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19.09.03 16:28 | 최종 수정 2019.09.03 16:30 의견 0

성경에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을 읽을 때면, 왜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으면 안 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후에 이유를 알게 됐는데, 생각보다 간단했다.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으면 헌 부대와 새 술의 화학 작용으로 인해서 헌 부대가 터진다는 것이다. 복잡한 화학식은 모르겠으나, 같은 성분의 헌 술과 새 술이라고 하더라도 발효라는 부분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이해서 그동안 ‘역사’(헌 술)의 주체였던 ‘거버먼트’(헌 부대)가 ‘새로운 시대’(새 술)에는 새로운 주체 ‘거버넌스’(새 부대)로 변화해야만 한 것이다.

◇ 국가가 주인공이었던 시대

복지 국가의 위용으로 국민을 책임지는 국가 ‘거버먼트’에 대한 신뢰는 베스트팔렌 체제(1648년) 이후에 공고해져 온 것이 사실이다. 현재까지도 국가의 존재는 국민을 보호하는 데 여타 기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힘이 있다.

(*주: 표면상 신교와 구교의 갈등으로 빚어진 30년 전쟁은 유럽 전역의 국가들이 총력을 동원한 전쟁이었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중부 유럽에 국가 주권 개념에 기반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고 이를 베스트팔렌 체제라 부른다.)

티머스 스나이더는 저서 <블랙 어스(Black Earth)>를 통해 2차 세계대전 중 서슬 시퍼런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에서도 유대인이 보호받을 수 있었던 건,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보여진 ‘쉰들러’같은 자비로운 사람의 역할도 있었지만 이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가장 강력한 보호망은 ‘국가’였다고 설명한다.

주권을 잃은 국가의 유대인은 전멸에 가까울 정도로 목숨을 잃었지만(실제로 목숨을 잃은 유대인의 3분의 2가 주권을 잃은 국가에 거주하던 유대인이었다.), 주권을 유지했던 국가의 국민이라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유대인은 생명에 큰 위협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히틀러라 하더라도 주권 국가의 국민은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세계대전 이후 냉전까지 이어진 이원화된 세계의 흐름 속에서 국민을 보호하고 평화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조직은 국가뿐 이었다. 당시, 세계는 두 가지 변수로 단순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두 가지는 안보와 경제였다.

그러나 역사 속에 영원한 제국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러한 냉전 기류도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새 술이 빚어져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평화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평화 공존론) 초강대국(미국, 소련) 간의 전쟁 발발 위험이 없다고 판단되자, 1952년 프랑스의 인구통계학자 ‘알프레드 소비(Alfred Sauvy)’에 의해 고안된 ‘제3세력’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양쪽에 속하지 않는 세력이 본격적으로 출현하고 발전하며 세계는 다원화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단어가 “정보(information)”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한 장면. 국가의 주권이 국민을 보호해 왔다.  (출처: 네이버 영화)

 

◇ 거버넌스 등장의 첫 번째 이유: 정보화

거버넌스 등장의 첫 번째 이유는 정보화지만, 아무리 정보가 많아도 접근할 방법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었다. 고급정보는 모두 중앙 어디선가 비밀리에 논의되고 다시 차디찬 금고 속으로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그런 정보 존재의 유무조차도 알 수 없었다.

‘앨빈 토플러’는 대표적인 정보화 전도사였다. 그가 쓴 『제3의 물결』이 1980년에 출간된 걸 볼 때, 정보에 대한 그의 예측은 꽤 정확했고 한국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1995년에는 현대전자가 광고 모델로 토플러를 기용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보의 현현(顯現)은 좀 이른 감이 있었다. 다들 “정보”를 말하지만, 그 흔한 정보를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를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 도래했는데, 바로 인터넷의 등장이 정보화를 가능하게 해줬다. 정보가 원료라면, 인터넷은 운송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도 이를 관심 자에게 연결할 수 있는 도구가 없다면, 활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한 가지 공식이 만들어진다. 즉, <콘텐츠+기술=변화>다. 이 공식에 대입한다면 콘텐츠는 정보이고, 기술은 인터넷이다. 이러한 결과로 나타난 변화는 ‘정보화 시대’ 그리고 조금 더 악센트를 줘서 말한다면 ‘정보화 혁명’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콘텐츠와 기술은 동시에 결합할 때 파급력에 시너지효과가 생긴다. 둘 중에 하나라도 없거나, 미약하다면 그 결과는 미비하다.

정보화 시대에 이르러 국가와 시민사회는 쌍방으로 소통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정보를 여러 가지 채널을 통해, 그리고 간단한 방법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확대 적용되었다. 이런 장점은 이전 사회의 절대적 기준이었던, 시·공간을 상징적으로나마 무너뜨렸다.

언제, 어디서라도 접속만 할 수 있으면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관심 있는 분야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런 접속의 시대에 제러미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에서 “나는 접속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제시했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예스24 제공)

사실, 이 명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나는 죄를 짓는다. 그러므로 은혜로 살아간다”에 이어서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명제에 뒤이은 것이다. 이 명제들만 훑어봐도 역사가 어떻게 변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신(God)’에서 시작해서 ‘인간(Human)’을 거쳐 ‘기술(Technology)’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접속이 존재의 원인이라는 명제를 체득하기라도 했는지 수많은 시민이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이러한 적극적인 소통방법에 정부도 전자정부를 출현시킨다. 이제는 정말로 정보화가 거버먼트를 거버넌스로 이행하도록 하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시·공간을 철학적으로 절대화했던 칸트가 정보화 시대를 겪었다면, 어떻게 그의 철학을 재정립했을지 궁금하다. 어쩌면 칸트에 의해 거버넌스의 철학이 정립되었을지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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