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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논단] 광복절을 맞아 다시 생각해보는 민족주의

칼럼니스트 이완 승인 2022.08.15 15:52 의견 0


77년 전 오늘 우리 민족이 독립했습니다. 대한 사람이라면 함께 축하해야 하는 날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런 민족주의(Nationalism)를 남용하거나 벗어나야 할 구태로 여깁니다. 찢겨나간 사회를 다시 통합하기 위해 모두가 오늘을 함께 축하하는 민족주의 정신을 되살려야 하지만, 누구도 민족주의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민족Nation은 '친족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회 집단'입니다. 사람들이 같은 조상과 고향, 역사, 언어를 공유할 때, 민족이 형성됩니다. 민족은 지금까지 인류가 결성한 가장 큰 사회입니다. 사람은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과 모일 때 '사회'를 형성합니다.

"사회를 (...) 모든 구성원이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정체성에 의해 명확한 소속감을 갖게 되는 특정 종류의 집단으로 인식해야 한다. (...) 한 사회의 구성원들은 서로 정기적으로 접촉하든 그렇지 않든, 서로 도울 의지가 있든 없든 정체성에 의해 단결된다." (인간 무리, 마크 모펫)

사람은 작은 사회인 가족에 속할 수도 있고, 보다 큰 사회인 기업에 속할 수도 있습니다. 민족 역시 그런 사회의 층위 중 하나입니다.

민족에서 친족 의식을 덜어내고 같은 정부와 제도를 강조하는 '시민적 민족' 개념도 있지만, 시민적 민족은 이상일 뿐 현실이 아닙니다. 모든 민족은 친족 의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같은 조상과 문화를 공유한다는 생각은 중요합니다.

"시민적 국가들이 순전히 시민성과 정치 제도의 공유에 기반한다는 순진한 이데올로기적 허구는, 좋게 말하면 관용에 대한 열망과 편견에 대한 거부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이고 나쁘게 말하면 ‘허위의식’에 깊이 물든 상태다. (...) 시민적 협력의 토대로서 친족-문화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의식에 의존하지 않는 민족은 드물다." (민족, 아자 가트)

친족 정체성을 넘어 한 대륙에 사는 사람이나 모든 인류가 같은 소속감을 공유하는 일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든 외계인 방어를 위해서든 인간 사회들이 서로 의지할 때라 해도, 차이점의 무게감이 감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전 세계 사람들이 인류 전체와 하나로 연결된 느낌을 가질 것이라는 범세계주의의 관념은 하나의 몽상에 불과하다." (인간 무리, 마크 모펫)

따라서, 인간이 결성할 수 있는 가장 큰 사회는 민족입니다.

넒은 의미의 민족주의는 자신이 속한 민족에 애착을 갖고 민족의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민족이 자신의 정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나 같은 민족끼리 결속해야 한다는 생각이 민족주의로 통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건전한 민족주의가 없습니다. 좌파 민족주의자는 같은 친족 국가인 북한과 연대하고 미국과 일본의 제국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합니다. 우파 민족주의자는 민족의 생존을 위해 한미일 동맹을 강조하고 북한과 조선족을 경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는 외국인과 다른 생각을 가진 자국민을 배척할 뿐, 나라를 결속하고 연대를 증진하는 건설적인 역할을 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아무때나,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풀지 않습니다. 생판 모르는 타인과 협력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인간은 주로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있는 사람, 애착감을 느끼는 사람, 같은 소속감을 공유하는 사람과 협력합니다.

"사회 구성원들 각자가 커다란 대가족의 일원이라고 느끼면서 서로에 대해 높은 신뢰를 갖고 있으면 소외되고 약한 동료 구성원을 돕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훨씬 더 기꺼이 지지한다."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 프랜시스 후쿠야마)

"만약 모든 사람이 나의 형제라면, 어느 누구도 형제가 아니다. 나의 감정과 자원은 다른 사람에게 나눌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차등을 둘 수밖에 없다." (엘리트에게 버림받은 사람들, 데이비드 굿하트)

민족국가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끼리 잘 협력하려면, 민족 정체성을 공유하고 서로를 대가족처럼 여길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이 민족으로 모여서 사는 한, 민족주의가 불필요해 지는 날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민족주의를 맹목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이 많지만, 민족주의는 아무때나 거둬 낼 수 있은 장식품이 아닙니다. 국제적인 활동에 익숙한 엘리트 계층은 민족 의식이 옅을지 몰라도, 대다수 사람에게 민족은 여전히 마음 깊이 자리잡은 정체성입니다. 심리학자는 인간이 감정과 생각을 억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수도 없이 확인했습니다.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잡은 민족 정체성을 부정한다면, 반드시 반동 현상을 낳을 것입니다.

반민족주의자는 민족주의가 혐오와 테러의 원인이라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민족주의가 반드시 민족사회주의(Nazism)처럼 광적인 배타주의로 흐르는 것은 아닙니다.

광적인 배타주의는 민족주의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이 우리 민족의 영역 안에 지나치게 빠르게 들이닥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준비 안 된 이민 개방과 난민 수용은 사람의 친족 정체성을 강하게 자극합니다. 배타적인 민족주의는 그 때 정치의 중심에 섭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민족주의는 온건할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관용적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민족입니다. 이런 의식은 중요합니다. 온갖 작은 정체성으로 분열되고 있는 나라에서는 사회적 공존도 복지국가 건설도 불가능합니다. 대한 사람 모두가 오늘을 함께 축하할 때, 우리나라는 보다 발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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