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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_이야기(27)] ‘좋은 공무원’이 되자!

3부: 미래 지방분권 시대의 주민은 청소년 #04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2.10.25 12:17 | 최종 수정 2022.10.28 17:05 의견 0

지난 정부는 공약을 통해 공무원 숫자를 늘린다고 했습니다. 공약만큼은 아니지만 실제 공무원 수도 확실히 늘어났습니다. 이런 공약은 선심성 공약이자, 포퓰리즘입니다. 디지털화가 정착했고, 전자 민주주의의 실현과 확대 발전을 추구해야 할 시대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그런데도 일자리 창출이라는 무거운 짐을 잠시나마 가려 놓기 위해서 억지로 추진했습니다. 현재 공무원 관련 문제는 인력 부족이 아니라 ‘사일로 현상’입니다. 당장 옆에 있는 공무원 한 명만 자리에 없어도 관련한 민원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필자가 관공서에 전화하면서 종종 들었던 이야기가 “담당자가 자리에 안 계셔서요” 혹은, “담당자가 출장(휴가) 중이어서요”등이었습니다. 민원인이 아무리 급해도 담당자가 없으면, 전화를 대신 받은 공무원이 할 수 있는 말은 위의 내용이 전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을 늘린다는 것은 국세 낭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물론, 분야에 따라 인력 부족 현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족한 인력도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의 자세가 변화된다면 어느 정도 해소되리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사무실에 앉아서 유휴 시간이 남는 공무원이 있다면, 가가호호를 방문하는 일에 투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공무원의 정년은 보장됩니다. 그러다보니 진급에서 밀리고 퇴직이 가까울수록 수동적으로 변합니다. 정년까지 문제없이 버티기만 하면 안정적으로 연금 혜택을 누릴 수 있으니까요. 모든 공무원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수동적인 분위기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아울러 지방단체장들이 인사권을 갖고 있으니, 진급하기 위해서 종종 과도한 충성심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다가 단체장이 바뀌면 태세를 전환하거나, 아니면 좌천을 감수해야 합니다. 공무원은 정치 중립의 원칙을 지켜야 하나, 완벽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현재 직업으로써 공무원은 주식으로 치면 상한가를 치고 있습니다. 최근에 다소 선호도가 떨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높은 경쟁률을 보입니다. 우상향한 그래프가 쉽게 내려올 기세를 보이지 않습니다. 수많은 청년이 공무원 시험을 치르면서 경쟁률이 높아진 것이죠. 그러다 보니, 우수한 인재를 선발할 가능성도 높아졌습니다. 좋은 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좋은 인재가 활약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밭을 제공하고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현재 시군구 단위 공무원 체계는 단체장 산하에 여러 국장이 있고, 국장 아래 여러 과가 있습니다. 과 산하에는 팀이 있고 아래에 담당자들이 있습니다. 여기 열정적으로 일하는 공무원 A가 있습니다. A는 국가와 지역에 헌신하려고 불철주야 노력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당장 처리해야 할 업무는 A의 창의성을 드러낼만한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어렵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 상관에게 보고하면 눈총받기 일쑤입니다. “누가 책임 질 건데?” 이 한 마디에 A의 열정은 찬물이 뿌려진 모닥불처럼 수그러듭니다. 현재 시스템 속에서는 천재적인 수준의 실력을 발휘하지 않는 한 진급은 연차별로 이뤄지고,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공무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전부 누릴 수 있습니다.

실력보다는 구태의연한 체계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조직이 바로 공무원 조직입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청소년이 미래 직장으로 공무원을 서슴지 않고 적어내고, 많은 청년이 공무원시험에 목을 맵니다. 이렇게만 따지면, 결국 ‘좋은 공무원’의 등장은 요원해 보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취재과정에서 훌륭한 공무원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들은 달랐습니다.

증평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늦게 자치지역으로 편성된 곳입니다. 괴산군에서 떨어져 나와 생성됐고, 처음에는 수년 안에 사라질 지역으로 인식됐던 곳입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좋은 공무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무원을 중용했던 단체장도 있었고요.

‘좋은 공무원’은 지역의 현실을 잘 알았습니다. 애매하게 다른 지역을 좇으려하지 않고 지역에 필요한 일을 먼저 수행했습니다. 지역의 ‘랜드마크’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증평군이 작지만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신 개념 도서관을 설립했고, 인재 양성을 위해 장학제도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지역의 정신을 찾기 위해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역사인물을 발견하고 계승하기 위한 사업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존폐의 기로에 놓였던 지역이 전국에서 가장 살고 싶은 네 지역 중에 하나로 선정됐고 지역 고등학교에서는 장학사업 3년 만에 국내 최고 대학 입학생을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증평읍내에 인구가 집중돼 있는 점을 적극 활용해서 도서관을 복합문화 시설로 설계해서 부족한 문화 콘텐츠를 공급했습니다. 그 결과 충북에서 가장 큰 도시인 청주시 와 연결되는 큰 도로가 생기자 인구 유출이 아닌 인구 유입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참고로 증평읍은 전국에서 읍단위에 ‘스타벅스’가 위치한 정말 보기 어려운 사례를 지닌 지역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좋은 공무원’의 등장은 제도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열정과 에너지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증평군의 공무원들이라고 해서 좋은 조건에서 시작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증평군의 존폐를 걱정했을 정도니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더 열악한 환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수 공무원의 열정과 단체장의 비전이 상보하면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죠.

‘좋은 공무원’이 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무사안일’을 추구하는 흔히 말하는 ‘철밥통’ 공무원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솔직히 대부분 공무원은 첫 봉급을 받으면 허탈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적은 봉급에 그동안의 고생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이죠. 공무원은 상대적인 안정을 택하고 부(富)를 포기한 직업입니다.(싱가포르와 같은 일부 국가는 공무원의 봉급이 높습니다).

그러니 금전적인 부분을 고려하면 공무원이 되는 길을 접어야 합니다. 아울러 진급도 빠르지 않으니, 성취감을 크게 느낄 수 있는 직업도 아닙니다. 따라서 ‘지역 일꾼’이라는 언어를 머리와 가슴에 깊게 새기고 ‘봉사하겠다’라는 각오를 항상 머리에 떠올리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물질적 인센티브보다 지역 발전이라는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어야 ‘좋은 공무원’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지역 주민과 계속 소통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상관의 명령에 잘 순응하는 게 괜찮은 공무원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주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지역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아이디어를 토대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공무원이 ‘좋은 공무원’입니다. 우수사례로 꼽히는 지역의 공무원들은 대부분 주민과 정기적으로 소통하면서 지역에 꼭 필요한 일들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셋째,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일반적으로 공무원들은 사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집니다. 조직 특성상 실패는 좌천이라는 공식에서 탈피할 수 없습니다. 공무원 조직이 ‘패일 패스트(Fail Fast)’를 중요하게 여기는 스타트업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시도조차 가로막는 현 상황은 역으로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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