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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의시대(3)] 뜨는 골목엔 이유가 있다

(기고) 비로컬 김혁주 대표 "뜨는 골목에는 로컬크리에이터가 존재한다"

비로컬 김혁주 대표 승인 2020.02.25 02:14 | 최종 수정 2020.05.21 20:53 의견 0
연트럴파크라고도 불리는 경의선 숲길  (출처: 서울관광재단 visitseoul.net)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연트럴파크. 원래 이름은 ‘경의선숲길’이지만 ‘연트럴파크’란 이름으로 더 유명한 골목이다.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 거리를 빗대어 ‘연트럴파크’라는 별명이 붙었다. 폐선된 철로라는 공간을 가로수와 잔디밭이 있는 도심 속 녹지대로 바꾸자, 거리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숲길을 양쪽의 이면도로를 따라 주택을 개조한 작은 상점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2015년 경의선숲길이 조성되면서다.

서울지하철 2호선, 공항철도, 경의중앙선이 모두 정차하는 홍대입구역 3번에서 연결되며 젊은 층과 외국인이 많이 모이는 홍대 상권에 연결되는 장소다. 그러다보니 이 거리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국적을 불문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다양한 문화가 소통하는 장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연남동 골목 속으로는 독특하고 카페, 술집, 음식점, 공방 등도 하나하나 자리 잡기 시작했고 ‘힙(hip)’한 동네의 대명사가 되었다.

연트럴파크만이 아니다. 뜨는 골목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골목길 상권은 1990년대 중반 무렵에는 홍대 정도를 꼽을 수 있었으나 방배동 서래마을, 신사동 가로수길 등이 가세했고, 2000년대 중반이 되자 골목상권들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연남동, 연희동, 부암동, 성수동 등 서울에서만 20~30개 골목길 상권이 부상했다. 최근엔 전주 한옥마을 부산 감천동 문화마을, 해운대 달맞이고개, 대구 김광석거리 등 지방 도시의 골목길도 손꼽히고 있다.

 속속 등장하는 O로수길, O리단길

매스컴으로부터 가장 많은 조명을 받은 건 신사동 가로수길이 아닌가 한다. 가로수길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건 곧게 펼쳐진 왕복2차선 도로를 끼고 양쪽에 가로수가 심어져있는 풍경으로 인해서인데, 건물들의 규모나 높이가 비슷한 편이라 가로수 사이사이로 보이는 스카이라인이 일정한 데다 갤러리를 중심으로 카페, 부티크 등이 자리 잡은 덕에 도시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가로수길이 명소로 꼽히기 시작하자 뜨는 골목에 붙이는 이름에 ‘-로수길’이 들어가기도 했다. 가로수길의 점포가 포화되고 임대료가 오르자 더 안쪽 골목으로 상권이 옮겨가며 발생한 세로수길, 서울 관악구의 서울대를 끼고 형성되었다고 서울대 교문의 형태인 ‘샤’자를 넣은 샤로수길 등이 그 당시 등장한 대표적인 골목길이다.

지금은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이 뜨면서 ‘-리단길’을 붙이는 것이 새로운 유행이 되었다. 서울 망원동의 망리단길, 잠실 송리단길, 부산 해운대 해리단길, 전라북도 전주 객리단길, 경상북도 경주 황리단길 등인데, 무려 20개가 넘어간다고 한다.

◇ 새로운 소비패턴의 등장: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이렇게 골목이 뜨기 시작한 것은 도보생활권을 중심으로 한 소비패턴의 변화로 인해서다. 특히 뜨는 골목들은 밀레니얼 세대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는 곳인데, 이는 밀레니얼의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뜨는 골목이 등장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이다. 상권이 발달하며 점포가 포화되면 임대료가 급상승하는데, 이는 상권을 확장시키거나 이동시키는 동기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홍대상권의 경우, 임대료를 피해 옮겨간 점포들로 인해 상권이 상수동, 합정동, 연남동, 창전동, 망원동까지 확장되었다. 연트럴파크나 망리단길이 이에 해당한다. 신사동 가로수길은 세로수길을 등장시키는 결과를 만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외되던 골목

원래 골목이란 건물 사이나 뒷면에 형성된 길이다. 큰 길에서 갈라져 나온 작은 길들을 통틀어 골목길이라 부르기도 한다.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도시 지역에 많이 나타나며, 거리의 폭이 좁아 보행자만 지나갈 수 있는 곳도 많다.

고도성장으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던 때는 차량이동이 중요했다. 다량의 물품을 구매하는 소비패턴은 차량을 필요로 했고, 차량으로 이동하다보니 차량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따라서 상권의 발달은 차량이동이 쉬운 큰 도로를 중심으로 했다. 주차가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이나 대형 쇼핑센터가 앞 다투어 등장했고 이들이 상권의 핵심이 됐다.

그러다보니 골목은 소외됐다. 대로변의 복합문화공간과 쇼핑센터가 소비자를 흡수해버렸고, 이면도로의 배후상권을 넘어서는 골목길을 찾는 사람은 없어졌다. 그런데 온라인 쇼핑과 SNS가 일상화되기 시작하자, 새로운 반전이 일어나며 골목길에 변화가 시작됐다.

젠트리피케이션: 도심의 낙후지역에 저렴한 임대료를 찾는 예술가 등이 몰려 이 지역에 문화적·예술적 분위기가 형성됨에 따라 지역가치가 상승하자 중상층·상류층들이 유입됨으로써 기존 거주민은 외부로 유출되는 현상이다. (출처: 서울도시계획포털)

◇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 새로운 골목에 새로운 점포가...

상권이 발달함에 따라 임대료가 오르자,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유통업체들이 주상권으로부터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영업방향을 온라인 판매로 바꾸고 기존 점포를 이면도로나 더 안쪽에 있는 골목길로 옮기며 새로운 상권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또한 임대료가 저렴하다는 장점은 창업에도 매우 좋은 장점으로 작용한다. 유통업체 뿐만 아니라 실험적 성격이 강한 공방이나 서비스 업종의 점포들이 골목길에 하나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들은 SNS를 이용해 소비자와 접촉하고 모객에 노력했다.

동시에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골목에 주목하고 골목을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차량이동보다 도보이동을 선호하게 되자 눈에 잘 띄지 않는 골목길에 숨어있던 점포를 발견해내기 시작했다. 제품과 서비스, 공간의 탁월함만으로 고객을 끌어 모으는 점포들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 SNS와 콘텐츠의 힘

SNS의 발달도 한몫했다. 골목에 숨어있던 점포는 더욱 널리 알려질 수 있었고, 이는 고객의 추가 유입으로 연결됐다. 방문한 이용자들의 후기와 반응이 쌓이며 명소가 되었고 숨겨진 골목 속으로 유동인구를 끌어당기는 앵커스토어가 하나씩 자리매김했다. 이는 뜨는 골목을 이루는 씨앗이 되었고 골목상권은 이런 식으로 커져갔다.

이렇게 뜨는 골목의 핵심은 골목이 갖고 있는 콘텐츠에 달려있다. 요즘 뜨는 골목들이 과거에는 문화의 변방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골목마다 고유한 콘텐츠를 통해 개성있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다. 여기에는 지역을 오랫동안 지킨 사람들과 그들이 공유해온 이야기, 문화, 신뢰 등 무형적 요소들이 그 골목만의 고유한 문화로 짙게 깔려졌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다. 50년 넘게 그 자리에서 장사하며 이웃과 더불어 지낸 삶을 어떻게 경제적 가치로만 판단할 수 있을까? 그런 골목 브랜드는 지역을 상징하는 형태로 소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런던의 골목길 (출처: 픽사베이)

◇ 골목의 개성이 상권을 형성한다

유니타스 브랜드에 따르면 “골목 속 가게는 개성이 뚜렷할수록 고객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소비자는 골목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자신이 원하는 ‘독창성, 전문성, 개성, 품질’을 찾을 수 있다.

가로수길은 1980년대부터 자연스럽게 들어선 20여개의 갤러리와 화랑들로 인해 시작됐다. 당시 서울의 중심가였던 종로구 인사동의 갤러리가 신사동으로 옮겨오며 지금과 같은 거리가 형성되었고, 예술가와 예술의 수요자들의 발걸음이 골목 콘텐츠를 형성했던 것이다.

홍대 상권도 마찬가지다. 과거 종로에 몰려 있던 출판사들이 홍대 앞으로 이동해 왔다. 출판뿐 아니라 음악, 미술,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도 홍대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인디밴드의 거리공연, 클럽들이 형성되며 본격적인 문화의 거리로 자리매김하며 오늘날의 홍대 상권의 기틀을 다졌다.

◇ 골목탐방의 재발견: 연희걷다

이와 같은 골목의 발견은 ‘골목 탐방’이라는 새로운 콘텐츠를 등장시키며 로컬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 도시콘텐츠 기업 <어반플레이>가 기획한 <연희걷다>다.

서대문구 연희동, 마포구 연남동의 소상공인과 다양한 로컬크리에이터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로컬 페스티벌이다. 연희동 <사러가마트>를 출발점으로 서대문소방서 가는 길목에 있는 카페와 베이커리, 작은 전시장들이 탐방코스를 구성한다. 연희동 주민센터 쪽으로 돌아서서 보이는 안산과 백련산, 저 멀리 인왕산과 북한산 풍경도 좋은 볼거리가 되어 준다.

<어반플레이>는 <연희걷다>를 단순한 골목 탐방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연희동과 연남동 지역의 개성있는 스토리와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100가지의 상점, 브랜드, 로컬크리에이터를 조합한 <연연백화점>으로 재구성해 냈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과 방문객, 지역 소상공인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고, 이런 상호작용이 골목을 새롭게 경험하게 하도록 하며 ‘로컬’이 부각되도록 공헌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vV4UQ1nQX8

◇ 골목의 재해석에서 새롭게 창출되는 '로컬'

여기까지의 이야기만 듣고도 “오, 뭔가 힙하군!”이라고 감탄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어반플레이>가 일으킨 혁신은 이를 넘어선다. 기존의 공간인 ‘골목’을 재해석해 새로운 공간인 ‘로컬’을 탄생시켰다는 데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어반플레이>는 수년간 반복한 <연희걷다>를 통해 ‘연남연희’라는 ‘로컬’을 창출해냈기 때문이다.

서대문구 연희동과 마포구 연남동은 행정구역 상으로도 서로 다르지만, 연희는 신촌문화권의 변방, 연남은 홍대문화권의 변방으로 소외되던 장소였다. 연희는 신촌상권의 쇠퇴와 함께 잊혀지던 골목이었고, 연남은 홍대상권의 확장에 따라 발견되기 시작한 골목이다.

연남연희가 행정구역이나 상권으로 분단되어 있었던 건, 경의선과 연희고가차도라는 지리적 구조물에 의해 물리적으로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동교동삼거리 북쪽으로 뻗어나가는 연희로가 연남연희를 연결하고 있지만, 차량으로 이동하다 보면 불과 몇 분만에 지나치게 되어 연남연희를 하나의 ‘로컬’ 공간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후미진 골목길로 파고들면 연남연희는 떨어진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로컬로 봉합된다.

<어반플레이>가 연남연희에서 오랫동안 해왔던 작업은 해체와 재구성을 통한 ‘로컬’의 재구성이라는 혁신을 보여주었으며, 동시에 ‘로컬크리에이터’가 ‘로컬’에서 어떤 일을 하는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업적이기도 했다.

▲위 기사는 로컬트렌드 미디어 <비로컬>과 인터넷신문 <시사N라이프>가 공동기획·취재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제공하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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