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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60주년(9)] 정통성과 정당성으로 돌아보는 민주주의(下)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20.06.10 01:10 의견 0

◇김영삼 정권

수십 년 만에 군인이 아닌 민간인 대통령이 선출됐다. ‘금융 실명제’, ‘역사 바로 세우기’ 등으로 개혁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었다. 집권 초기에는 정치적 정통성과 사회적 정당성을 모두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민주주의 선거 절차로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했으며, 이후 지지율이 90% 이상을 얻을 정도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 말미는 알다시피 경제적으로 IMF라는 국가 부도 사태를 겪어야 했고, 이를 빌미로 최초로 정권이 교체될 수 있었다. 90%가 넘었던 지지율은 거의 0에 가까운 수준으로 폭락했다. 대통령 자신은 칼국수를 좋아한다는 서민적인 발언을 했지만, 그의 아들은 그렇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정권 말기에는 사회적 정당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권

당시 여당 이회창 후보와의 대결에서 아슬아슬한 결과로 당선됐고, IMF를 극복한 대통령이자 최초로 정권 교체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성공한 결과물로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타이틀도 얻었다.

정치적 정통성은 확보했으며, 사회적 정당성도 집권 초기에 무리 없이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권 말미에는 대중영합적 권위주의로 일컬어질 만큼 민주주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햇볕 정책’으로 일관하여 정상회담이라는 쾌거를 거뒀으나, 현금 퍼주기라는 비판을 받았고, 북한의 최초 핵실험으로 남북 화해 분위기의 진정성이 의심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권의 사회적 정당성은 낙제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가 정권이 교체되지 않고 유지됐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

대통령이라는 직위와 서민은 원래 어울리지 않는데, 여전히 서민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정치적 정통성은 문제없으며, 사회적 정당성은 시종을 따져봐야 한다. 정권 초기에는 사회적 정당성에 큰 문제가 없었다. 당시 야당에서는 탄핵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그 역풍으로 다수당이라는 상징마저도 여당에 넘겨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핵에서 그를 지켜줬던 국민도 끝까지 노무현 대통령을 선호하지 않았다. 당시 여당의 후보 정동영에 대한 기대가 일천했던 까닭도 있지만, 경제 성장을 구호로 내세운 MB가 거의 더블 스코어로 당선됐기 때문이다. 투표율이 63% 수준밖에 안 될 정도로 낮았던 이유도 여론 조사에서 압도적으로 MB가 높았기에 다른 후보에 대한 기대치도 낮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

경제 성장 7%를 내세워 경제 대통령 이미지로 당선됐다. 현대 건설 CEO, 드라마 ‘야망의 세월’의 실제 인물로 샐러리맨들의 우상이자 새로운 경제 코리아의 대통령으로 유감없는 능력을 발휘해 줄 거라 기대했다. IMF 이후 대한민국의 최우선 화두는 언제나 경제였기에 실제로 경험이 많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추진력을 보여줬던 MB는 대선에서 여유있게 승리했다.

이후 전 노무현 대통령을 압박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고, 서민보다는 대기업과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 독재 시절 보다 더 독재 같다는 이미지 등을 만들면서 사회적 지지를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대선의 승리는 야당 쪽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MB 정권의 끝을 좋게 평가할 수는 없다. 정권 교체의 실패는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야당이 못했기 때문이다. MB 정권부터 야당의 정권 심판론은 유권자들에게 설득력을 잃었다. 이미, 10년이라는 집권 기간을 경험한 야당의 수준을 국민이 파악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명박 정권은 정치적 정통성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사회적 정당성을 유지하는 데는 실패했다.

◇박근혜 정권

한국 정치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속담을 떠올릴 정도로 말미가 좋지 않았다. 정치적 정통성 부분에 있어서 일탈적인 부분은 없다. 치열한 접전 끝에 당선됐다. 이전부터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선거에 강했고 어린 시절부터 정치적 야망도 강했는데, 여기에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을 더해 당선될 수 있었다.

임기 중 북한에 대한 강력한 대응으로 지지율을 반등시켰던 적도 있었으나, 결론은 탄핵이었다. ‘비선 실세’, ‘문고리 3인방’ 등과 같은 말을 유행시키고, 과거 사이비 종교와의 관계(최순실의 아버지가 최태민이다)가 재조명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온 국민들 사이에서 팽배했다.

이후 청문회 과정에서 ‘블랙 리스트’, 재벌(삼성)과의 유착 등이 밝혀지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한참 후퇴시켰다. 결론적으로 사회적 정당성은 87년 이후 최악의 수준이었다.

◇정치적 정통성에 대한 문제 제기

지금까지 정통성과 정당성 기준으로 살펴본 한국 현대정치는 87년 이후로 정통성은 회복했으나 정당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전 정권(박근혜)은 민주주의의 발전경로를 역행하는 퇴행과 기행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 87년 이후 정치적 정통성에 관련한 합의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헌법 체제가 요청되는 시점이다. 혹자는 잦은 헌법 개정에 대한 부담을 토로하지만,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헌법 내용은 신중하게 판단해서 개정해야 한다. 과거 정치적 경험을 토대로 독재를 막기 위해 5년 단임제를 30년 넘게 이어오고 있지만, 4년 중임제에 대한 타당성이 논의 중이다. 아울러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사전 투표까지 진행해 선출하는 국회의원도 지방분권 시대를 고려하면 재고해야 한다.

이런 의문에 따라 정통성 부분을 검토하면 2000년대 이후 정권에 대한 정통성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겠으나, 개선에 대한 문제의식은 항상 있어 왔다. 현 대통령제는 새로운 독재의 가능성도 보이면서 탄핵까지 이르렀다. 현재는 ‘좌파 독재’라는 표현이 등장해서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수준이다.

이런 정통성에 대한 합의의 균열은 다양한 집단과 공동체들의 네트워킹으로 이뤄진 현대 사회의 정당성을 얻기에 무리가 있다. 다시 말해서 시대착오적인 정치적 정통성으로 사회적 정당성까지 얻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마치 ‘깨진 독에 물 붓기’와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정당성을 채우려 해도 균열이 있는 정통성으로는 정당성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균열이 심해지면 언제라도 탄핵과 같은 봉기가 일어날 수 있기에 정국은 불안해진다.

대통령 중심제의 장점이 정국 안정인데, 현재 상황을 보면 항상 어수선한 느낌이다.

◇금이 난 독은 깨질 수밖에 없다

‘4·19’ 60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5·18’ 40주년이기도 하다. 특히, ‘5·18’은 신군부의 불법성을 호소한 것으로 신군부의 득세가 오래가지 못함을 예단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당장 물리력을 동원한 쿠데타 세력의 힘이 쉽게 무너질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한 번 금간 독은 언젠가는 깨지듯 정권도 마찬가지다.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구멍 뚫린 독은 곧 담고 있던 물도 다 쏟게 되고, 결국 깨질 수밖에 없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생각해야 한다. 미완의 혁명이라 불리던 ‘4·19’ 그 날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은 많이 진화했다. 이제 그 진화를 받아 낼 새로운 그릇이 요청된다.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여러 정권이 등장했지만, 모두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거나 유지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게 그 증거다. 이미, 균열한 것을 알고도 새로운 독으로 바꾸는 데 주저한다면, 어떤 정권이라도 항상 탄핵을 근심하면서 소신 정치를 실행하기보다 눈치 전략으로 5년을 버틸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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