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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거버넌스(7)] “새 술은 새 부대(負袋)에”-거버먼트에서 거버넌스로 (하편)

조연호 전문위원 승인 2019.09.09 08:45 의견 0

◇ 거버넌스 등장의 두 번째 이유: 세계화

두 번째는 세계화다. 우리나라처럼 ‘세계화’에 목숨 건 국가도 없을 것이다. 모든 지자체는 모든 행사의 접두어로 “국제”라는 표현을 써야 했고, 실제로 “국제”가 포함되지 않은 행사는 제대로 지원받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실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외국인 참여가 부족한 경우에는 한국 외국인 유학생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세계화를 시도하면 세계화에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세계화의 실질적인 의미는 정치적으로는 각 국가가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예를 들어 세계적인 생태계 파괴나 기후 변화, 이주 노동과 같은 문제 등을 다루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협의 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리고 인권 문제도 유엔 차원의 인도주의적 개입이 필요했다. 아울러 경제적으로도 초국적 기업의 막강한 힘의 존재와 영향력은 국가의 경계를 허물었고, 이러한 경계의 소멸은 국가 주권 개념을 변화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특히, 경제적인 분야에서의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와 함께 짝을 이뤄서 전파됐는데, 덕분에 세계화에 대한 의미가 진보주의자들한테는 부정적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세계화는 국가 중심의 거버먼트를 벗어나 세계적인 다자간 협의가 가능한 거버넌스를 추진하는 게 본 목적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이해하면 강대국 중심의 세계 구조를 보다 민주적인 세계로 조성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아울러 국가관에도 변화가 일어났는데 “국가의 발전이 곧 개인의 발전”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에서 이제는 국가의 발전이 반드시 개인과 공동체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국민이 알게 됐다.

국경을 넘어선 정치·경제·사회 활동이 늘어나면서 국외 문제나 사건이 개인이나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력도 점점 커지게 됐고, 변방이라 여겼던 우리나라도 한류를 통해 수많은 국가에 문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세계화는 스스로 떠돌면서 그 영향력을 확장한 게 아니다. 이 역시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기술과 함께했는데, 바로 인터넷이다. 정보는 세계화와 더불어서 더 많이, 더 넓게, 더 빠르게 확산했다.

당시 인터넷과 정보화를 통한 세계화의 바람이 어느 정도였냐면, 그동안 귀하게 간직했던 국민개념이 갑자기 등장한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에게 “곧 자리를 양보할지도 모르겠구나”라는 착각이 들게 했다. 이제 개인은 설 자리를 잃고 세계화라는 거대한 태풍 속에서 세계시민이 될 것처럼 느껴졌다. 국가 역시 거버먼트의 한계를 느끼며 스스로 거버넌스를 대안으로 제시하기 시작했다.

◇ 거버넌스 등장의 세 번째 이유: 지방화

마지막은 지방화로, 지방화는 세계화와 함께 이해해야 한다.

자칫 잘못 생각하면, 세계화와 지방화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 이해할 수 있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영역만 다를 뿐,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파생한 이유는 같기 때문이다.

세계화가 전 지구적인 문제를 몇몇 국가들이 모여서 해결할 수 없는 한계에서 등장했다면, 지방화는 국가라는 큰 덩어리가 미처 다루기 어려운 미시적인 문제들로 인해 등장했다. 예를 들어 한 지방에 필요한 다리 건설이나, 공원 건설 등과 같은 문제, 혹은 출산율에 따른 육아 지원과 같은 부분 등 국가가 일일이 세밀하게 관여하기 힘든 부분인데, 이런 문제들이 점점 더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게 전적으로 위임하는 추세다.(단,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지방정부라 부를 수준이 아니라는 점은 짚고 넘어간다. 말 그대로 지방자치단체일 뿐이다).

동시에 자치 역량 강화라는 과제를 줘서 모든 지역의 동사무소가 “주민자치센터”로 이름도 바꾸게 된다. 주민자치 회의가 정기적으로 개최되기 시작했고, 크진 않지만 예산부문도 주민들이 직접 예결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 시작했다.(주민자치예산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지방자치제도는 잘 정착한 수준은 아니다. 여전히 지역 토호세력이 나눠먹기식 예산편성을 진행하고 있고, 규모가 큰 행사, 축제, 이벤트는 지방의 기득권을 획득한 단체나 개인이 큰 경쟁없이 이권을 유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제는 지역의 문제를 국가 수준이 아니라 지역 거버넌스로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좀 더 먼 미래에는 결실이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세계화와 지방화 추세는 국가가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작고,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엔 너무 큰 존재임을 극명하게 증명해 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거버넌스는 거버먼트의 한계를 극복, 혹은 보완할 수 있는 개념으로 등장했다. 과거에는 거대한 물리력을 가진 국가가 일일이 모든 부분을 책임지고 진행했다면, 이제는 국내외적으로 초국가·지역적 합의나 연대 등이 새로운 협의의 개념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즉, ‘새 술’(정보화, 세계화, 지방화 등)을 ‘새 부대’(거버넌스)에 담을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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