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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대‘한심(寒心)’국] 5편: ‘갑’과 ‘을’

조인 작가 승인 2019.09.21 23:21 의견 0

한문에서의 갑을의 의미는 십간의 첫 번째인 갑, 두 번째인 을을 붙인 것이다. 법학적으로 보면, 불특정한 주체를 순서대로 나열할 때 십간을 순서대로 사용하면서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흔히, 계약서를 쓸 때 계약 관계에서 주도권을 지닌 쪽을 갑, 그 반대의 사람을 을이라고 적기도 한다. 그래서 갑을로 표현하면,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상하 관계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서양에서의 계약은 동등한 자격이 있는 자들의 서약을 의미하는데, 왜 우리나라 계약서는 위아래가 구분되는지 알 수가 없다. 

근로 고용법에는 근로자와 피 근로자 간의 계약서를 무조건 작성하게 돼 있다. “무조건”이라는 말은 절대로 지켜야 한다는 의미고 이를 어겼을 때는 법적인 처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법적인 조치에 대한 위협으로는 실질적인 갑을 관계를 바꿀 수 없다.

종종 유튜브를 시청하다 보면, 가게 사장과 알바들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대체로 사장의 갑질이 일반적이지만 종종 알바생들의 불성실함도 소재가 되기도 한다. 사람은 각자의 사정과 입장이 있는 법이니 어느 한쪽만 편들기 힘든 게 세상 이치다. 

이런 소상공인들의 갑을 관계는 그래도 귀여운 편이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회사의 대표나 근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강도가 따로 없다. 단가를 아주 후려쳐서 원가도 안 나오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러다 보니, 지 하청 업체에 똑같이 대우한다. 기업관계는 갑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갑을병정까지 내려가니, ‘정’의 입자에서 ‘갑’은 하느님과 다를 바 없다.

그래도 90년대 이전에는 중소기업에 다녀도 충분히 먹고 살고, 자긍심을 갖고 살았던 거 같은데, 2000년대 넘어서부터는 일류 기업에 대한 목매는 한류(한국 부류)가 부지기수다. 어깨도 펴고 싶고, 갑질도 하고 싶은 걸까? 

“그런데, 요즘 젊은 알바생들이 많이 사라졌는데, 넌 그 이유를 아니?”

평소에 궁금했던 부분이어서 편한 상대가 있을 때 물어봤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예요. 시급이 더 좋은 알바자리를 찾아서 나간 경우도 있고, 사장들이 제대로 알바비를 주지 않아서 나가기도 할거고요.”
“아니면, 너희들이 오래 견디지 못해서 나가는 건 아닐까?”
“그런 경우도 있겠죠.”

평소에 생각했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본은 아르바이트족이라고 해서 알바만 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들었다. 인건비 자체가 높으니 굳이 결혼할 거 아니면 정규직장을 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갑자기 <편의점 인간>이라는 일본 소설이 떠오른다. 편의점에서 일하다 보니, 다른 직종으로 옮겨 갈 수 없는 직업병에 걸린 여자. 결국, 편의점으로 돌아와 안식을 찾는다. 작가는 사회적 부속품으로 존재하는 현대의 새로운 인간 유형을 발견한 것이다.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게 사회 보편적 현상이라면? 비판할 까닭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시급을 이유로 떠나든 사장의 횡포로 떠나든 떠난 알바생들은 자유로운 인간의 한 유형임을 보여준 것일 수도 있다. 단, 아쉬움이 있다면 어디를 가도 현실은 비슷할 거라는 거.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그들은 포기할 게 너무나 많다는 걸 금세 깨달을 것이다. 

“그래, 알바 잘하고 나중에 밥 한 번 사줄게.”
“네. 꼭 사주세요. 저는 고기를 좋아합니다!”

고기를 외치는 사촌 동생의 얼굴에는 간절함이 가득하다. 의식주 문제가 충분히 해결된 한국이지만, 청년들한테는 간절히 먹고 싶은 게 꼭 있다. 그게 대부분 고기다. 이놈의 고기 때문에 대기의 질이 나빠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더 많을까? 아니면 적을까?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육식의 종말>에서 소와 돼지를 사육하는 땅이 인간이 사는 땅보다 넓으며, 이들의 똥과 그 똥에서 나오는 가스로 대기가 심각하게 오염된다고 한다. 자동차 매연보다 더 대기오염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하다. 그런데, 자동차 매연은 줄이기 위해서 전기자동차도 만들고 연비 좋은 자동차 생산에 매진하면서도 고기를 먹지 말자는 캠페인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당장 소와 돼지를 먹지 말자는 캠페인이 등장하면, 축산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삭발을 단행할지도 모른다.

사람 때문에 삭발하는 정치인들 자주 보는데, 소와 돼지 때문에 삭발식을 한다면? 과거 구제역 때문에 수백만 마리의 소와 돼지를 매장했다. 그 당시 이러한 결정에 통곡하면서 삭발한 주인은 없던 걸로 기억한다. 인간은 참 특이한 개념의 동물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수백만 마리의 가축의 죽음은 조국 한 명보다 못하니 말이다.

인간의 교만과 우월의식은 살아있는 생명체에 대한 존엄을 상실하게 만든다. 이런 상실은 곧 가진 자의 ‘난 척’으로 곧 갑질로 표출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오늘 고기 먹는 약속이 잡혀있다. 이 모순적인 현대인의 삶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사촌 동생과 만나고 난 후 며칠 후 자주 가는 GS25시에 들렸다. 마침 짙은 화장의 눈 큰 점장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요즘에는 자주 못 뵀네요.”
“저야, 자주 오는데 점장님이 안 계신거죠.”
“호호. 그런가요?”

웃기 전에는 잘 보이지 않는 눈가의 주름은 짙은 화장으로 완전히 가려지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굴곡을 잘 구분해 줘서 더 깊은 주름을 보여준다. 우유도 하나 사고 나서,

“요즘 핫 한 건 뭐예요?”
“아, 거기 있는 빵이 잘 나가요.”

그러면서 일본식 카스테라를 보여준다. 가격도 편의점에서 파는 것 치고는 꽤 비싼 편이다. 

“맛있어요?”
“네. 반응 좋아요!”

하기야 요즘 편의점 음식은 일반 음식점보다 나은 제품도 있다. 도시락만 하더라도 도시락 계를 대표하는 한솥 도시락보다 푸짐한 상품이 있고, 빵이나 햄버거도 가성비를 고려하면 파리바케트나 맥도널드 수준보다 낫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패스트 푸드에서 제품을 받는 시간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솥에서 아무리 빨리 도시락을 준비해 준다고 해도 3분 이상 걸린다. 그러나 편의점 도시락은 전자렌지에 1분 30초만 돌리면 그만이다. 버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빨리 만들어 주는 맥도널드도 30초 안에 제품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이미 만들어져 있는 제품이라면 콜라를 따라 주는 시간과 상품을 주는 시간 다 합해도 30초가 되지 않겠지만. 패스트 푸드의 속도를 넘어서는 편의점은 기존 구멍가게와 경쟁했던 게 아니라, 멀리 떨어진 패스트 푸드와 대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의 언어>는 클레이턴크리스텐슨과 여러 학자가 함께 저술한 책인데, 과거에 존재했던 언어가 대체되는 현상은 곧 그 일이 대체되는 거라고 말한다. 즉, 패스트 푸드를 떠올리면 맥도널드가 떠올랐는데, 이제 편의점이 그 자리를 대체하면 일을 하는 주체가 달라졌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편의점은 새로운 패스트 푸트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규모가 있는 편의점은 간이 카페 수준으로 좌석을 구비 하기도 한다. 가성비로만 따지면, 편의점은 어떤 식당, 카페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 게다가 할인 상품도 많아서 대형 마트보다 저렴하게 상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혹, 조금 값이 비싸다 하더라도 이동시간과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편의점이 마트보다 우세하다. 그리고 장점이 하나 더 남았는데, 바로 24시간 문이 열려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그리 많지 않다는 거다. 역시 갑을 관계가 큰 원인일 것이다. 아무리 많이 팔아도 본사에 넘기고 나면, 남는 건 먹고살 수 있는 만큼?

점장이 권해준 빵을 집어 결제 테이블에 올려놓고 포인트 카드로 할인과 적립 받으면서 구입했다. 구입 하자마자, 포장지를 뜯어서 아이보리색 빵에 흰색 크림이 가운데 동그랗게 박혀 있는 빵을 한입 가득 밀어 넣었다. 조금 느끼했지만, 식감도 나쁘지 않고 크림도 후지지 않았다. 

“괜찮네요.”

점장의 추천에 간단히 고마움을 전했더니 역시 짙은 주름을 보이면서 웃는다. 

“참, 낮에 오니까, 일했던 알바생 대신 아주머니가 계시던데.”
“네. 바뀌었어요. 애들이야 오래 하나요. 다른 일자리 생기거나 하기 싫음, 그만하죠.”
“그렇긴 한데, 아주머니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좀 달라요. 일단, 일하는 기간이 길어요. 그리고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해서 일 욕심도 있고요.”
“그렇군요. 시급 가지고 따지진 않아요?”

시급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살짝 굳어진다. 웃을 때 보였던 주름마저 군대 의장대가 오와열을 맞춰 차렷 자세를 취하듯 바로 사라졌다.

“왜 아니겠어요. 시급이 오른다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알바애들은 은근히 기대하죠. 그러면 뭐해요. 올려 줄 수가 없는데.”

더는 묻지 않았다. ‘당신도 육천 원 주죠?’라고 물어본다면, 하얀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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